문학의 쇠락과 나의 쇠락이 변형된 데칼코마니처럼 펼쳐지며...
필립 로스에게는 주커먼 시리즈 혹은 ‘미국 3부작’이라고 불리운 《미국의 목가》(1997),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1998), 《휴먼스테인》(2000)이 있다. 이 소설들에서, 주인공의 곁에서 화자의 역할을 하였던 네이선 주커먼이 이번 소설 《유령 퇴장》을 통해 전면에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제 나, 주커먼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암으로 전립선 절제술을 받았고, 그 여파로 요실금에 시달리고 있으며 발기불능의 처지이다.
『... 두 사람은 샴페인으로 나를 위해 건배했고, 나에게 선물하려고 아테나에서 산 적갈색 램스울 스웨터를 주더니 일흔이 된 소감을 말해보라고 청했다. 나는 그들이 선물한 스웨터를 입고 식탁의 상석인 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에게 말했다. “짧게 말하지. 서기 4000년을 생각해보게.”』 (p.57)
나는 작가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지만 살해 위협을 받은 이후 뉴욕을 떠나 시골에서 칩거 생활을 시작한지 오래이다. 내가 다시 뉴욕을 찾은 것은 전립선에 생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으로 받았던 시술에 문제가 생겨서이다. 하지만 그 시술은 완전한 것은 아니었고, 성공적이지 못하는 경우 몇 차례를 더 받아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시술을 위해 뉴욕으로 나갔지만 나는 그저 제이미라는 서른 살의 젊은 여인을 만날 수 있었을 뿐이다.
“제 어떤 점에 그토록 끌리시는 거예요? ... 자네의 젊음과 아름다움. 우리가 소통에 들어선 속도. 자네가 말로 만들어내는 에로틱한 분위기.” (p.178)
나는 우연히 뉴욕의 집과 시골의 거처를 일정 기간 교환하여 사용하길 희망한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간 곳에서 제이미를 만났다. 젊은 작가 부부인 제이미와 빌리에게 나는 자신의 시골 거처를 제공하기로 한다. 대신 나는 이제 뉴욕에서 생활할 작정이다. 나는 제이미와 오래 전 잠시 만난 적이 있고, 그것을 떠올린다. 제이미 또한 나를 기억하고 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 사람이 불러줬거든요. 그 글은 그 사람의 말이에요. 그는 말했어요. ‘책을 읽는/글을 쓰는 사람들인 우린 끝났어. 우린 문학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 걸 목격하고 있는 유령이야. 이걸 받아 적게.’ 난 그가 말해주는 대로 썼죠.” (p.245)
하지만 소설은 이렇게 나이든 소설가인 내가 새롭게 품기 시작한 연정에 기대고 있지는 않다. 나는 제이미의 옛 연인이라고 여겨지는 전기작가 클리먼에게 도전적인 제안을 받는다는 또 다른 설정에 시달린다. 한때 내가 존경하였던 작가인 로노프, 그 로노프의 근칭상간이라는 비밀이 숨겨진 자서전을 쓰는데 도움을 달라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로노프가 아내를 버리고 마지막을 함께 하였던 젊은 제자 에이미 벨레트, 이제는 나이가 들고 병들어 뇌도 온전치 않은 에이미 벨레트까지 만나게 된다.
“... 리처드 클리먼의 들뜬 정신은 자신의 심장, 무릎, 두뇌, 전립선, 방광조임근 등 그의 모든 것이 불멸하며, 자신은, 자신만큼은 세포들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믿는다. 스물여덟 살짜리들에겐 그런 믿음이 원대한 꿈이 아닌 것이다. 자신들을 향해 위대함이 손짓하고 이다고 믿는다면 더더욱. 그들은 온갖 능력을 잃고, 조절력을 잃고, 수치스럽게도 스스로에게서 추방당하고, 늙은이를 상대로 육신이 벌이는 조직적 반란의 경험과 상실로 특징지어지는 ‘더이상 아무것도 아닌 자들’이 아닌 것이다. 순식간에 상황이 바뀐다는 걸 전혀 모르는 ‘아직은 아닌 자들’이다.” (p.335)
문학의 시대의 종말, 그러나 아직 그 전시대의 유물인 문학으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나, 네이선 주커먼이 이미 유령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그 거추장스러운 육체를 벗어던지지 못한 나는 로노프라는 또다른 유령에게 휘둘리고 있다. 거추장스러운 육체는 젊은 제이미를 자신의 글에 끌어들여 상상을 이어가지만, 로노프라는 유령을 젊은 자서전 작가 클리먼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해야 하는 책무도 버리지 못한다.
‘최후는 너무도 장대하고, 그 자체로 시가 된다. 수사修辭는 필요치 않다. 그저 평이하게 말하라.’ (p.201)
로노프가 한 말이라고 여겨지는, 그러나 이미 온전치 않은 뇌를 가지고 있는 에미이 벨레트로부터 전달되는 로노프의 최후의 말이라고 여겨지는 문장에 기대어 소설을 읽어낸다. 문학의 현재와 과거(그러나 미래는 없는), 그리고 문학에(만) 온전히 기대어 살아왔던 한 남자의 쇠락이 변형된 데칼코마니처럼 페이지마다 펼쳐진다. 나는 로노프가 폭로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그 최선과 같은 크기로 자기 자신을 폭로하고 있는 것만 같다.
필립 로스 Philip Roth / 박범수 역 / 유령 퇴장 (Exit Ghost) / 문학동네 / 381쪽 / 2014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