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크 다큐를 보듯 그렇다치고 읽어내는 중세 이탈리아의 시식시종 이야기.
제목인 ‘시식시종’은 한자어 ‘試食侍從’으로 적어 놓고 보는 것이 낫다. 시식은 음식의 맛이나 요리 솜씨를 보려고 시험 삼아 먹어 봄, 이라는 뜻이고 시종은 고용되어 일하는 남성, 정도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까 소설 ‘시식시종’은 지체 높은 이에 의하여 고용되어 고용주가 음식을 먹기 전에 미리 음식을 먹어보는 일을 하는 남성에 대한 이야기, 라고 잠직하면 된다.
”... 페데리코한테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결코 진실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사람들은 굳이 그 안에 숨은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어쩌면 요나도 고래한테 먹힌 것이 아니라 반대로 고래를 잡아먹은 것인지도 모른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살아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셔서 동굴에 숨은 것인지도 모르고, 소크라테스도 농담을 하면서 독배를 마신 게 아니라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p.136)
다만 문제는 시식시종을 고용한 이가 다른 사람에 의하여 독살을 당할 위험이 다분한 인물이라는 데에 있다. 시식시종은 매번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음식을 먹어야 한다. 음식을 먹지 않을 수는 없다. 고용주인 페데리코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전임 시식시종의 혀를 잘라서 개에게 먹으라고 던져준 이다. 전임 시식시종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우고는 전임의 말로를 보았고 어떤 경우에서든 시식을 거부할 수 없다.
“... 그 많은 하인들 중에 하루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씩 목숨을 내거는 자가 시식시종 말고 또 누가 있을까? 말이 났으니 말인데, 시식시종은 가장 용감한 기사보다도 용감하다.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달아나는 기사들도 많다는 말을 들었는데, 시식시종은 달아나지 않는다...” (p.210)
《시식시종》의 주인공이면서 이를 직접 쓴 우고 디폰테는 1500년대 중세 이탈리아 코르솔리 지방에서 양치기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자신을 낳은 엄마가 죽고 큰아들만은 편애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래도 나무꾼의 딸인 엘리사베타를 만났고 잠시 행복하였다. 하지만 엘리사베타는 딸 미란다를 낳다가 죽었고, 우고가 시식시종으로 딸과 함께 성으로 들어갈 때까지 두 사람은 겨우겨우 먹고 살았다.
“살아오면서 나는 성경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가 사실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글로 적혀 있으니 당연히 사실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막 내가 적은 글을 읽고 있자니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일을 사실인 양 속이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알게 되었다.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고, 비통하게 만든느 것이 얼마나 쉬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재능은 이 세상에 있는 금과 은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귀중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는 자는 자신의 세계에서만큼은 신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p.253)
죽음을 지척에 두어야 했지만 우고는 딸과 함께 페데리코의 성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미란다는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하였고 우고는 몇 번의 죽음의 위기를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우고는 페디리코의 신임을 얻었고, 페데리코는 우고의 딸인 미란다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기로 한다. 이렇게만 보면 양치가에서 왕비의 아비라는 지위까지 수직 상승하는 이야기인가 싶지만 과연...
“... 시간은 앞으로 나아갈 뿐 절대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지나간 일은 결코 돌이킬 수 없다. 따라사 페데리코는 미란다와 결혼할 것이고 나는 더 이상 시식시종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정해졌으니 그렇게 될 것이고, 만약 톰마소가 그 일을 방해하려 든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수염에 걸고 나는 녀석의 불알을 끊어놓고 말리라!” (p.364)
《시식시종》은 우고 디폰테라는 중세 이탈리아 시식시종이 직접 쓴 수기이다, 라고 이 필사본을 직접 번역한 피터 엘블링은 밝히고 있다. 그래서 책은 우고 디폰테 지음, 피터 엘블링 영역이라고 설명된다. 그런데 이 또한 과연... 일종의 페이크 다큐, 라고 보면 비슷한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탈리에서 수기를 발견했고 이를 자신이 직접 영어로 옮겼다는 피터 엘블링의 말이 거짓말인 줄 알지만 그렇다 치고, 읽으면 된다.
우고 디폰테 / 피터 엘블링 영역 / 서현정 역 / 시식시종 (The Foodtaster) / 베텔스만 / 419쪽 / 2003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