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 년 전 미국과 오버랩되기에 충분한 지금 여기의 야단법석이라니...
*2017년 5월 3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지금 여기에선 한 바탕 난리법석이 지나가고 또 다른 야단법석이 진행 중이다. 일주일도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하루가 남은 사전투표를 앞두고, 그나마 낫다고 여기던 민영 방송은 엉뚱한 뉴스를 뱉어내더니 그걸 다시 주워 담느라 헛구역질을 해대고,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였던 여권의 인사들은 자신의 당의 대통령 후보를 남겨 두고 제 살길을 찾아 들락거리느라 여념이 없다.
“네가 지지하는 후보는 민주당의 백악관 진출을 가로막을 뿐이야. 그 때문에 공화당이 이기면 이 나라는 큰 고통에 직면하게 될 거다...” (p.56)
필립 로스의 소설을 읽고 있는데 그 풍광이 지금의 여기와 묘하게 겹쳐져 씁쓸하다. 필립 로스의 소설의 배경이 되는 것은 미국의 어느 한 시기, 매카시 열풍이 미국을 휩쓸던 1940년대 말에서 1950년대이다. 지금으로부터 칠십 년 전의 이야기인데, 거기에 대한민국의 현재가 박제되어 있다. 그러니까 거기엔 보수적인 공화당 후보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하여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아버지와 그런 이유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할 수는 없으며 보다 진보적인 인사를 지지해야 한다는 아들이 있다.
“내 생각에는 전후 십 년간, 그러니까 1946년에서 1956년 사이에 개인적인 배신행위가 미국을 휩쓸었던 것 같아. 미국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심했을 거야. 이브 프레임이 저지른 짓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어서 그랬든 어쩔 수 없다고 느껴서 그랬든, 당시에 난무했던 수많은 역겨운 행위 가운데 아주 전형적인 거였네... 애국자인 양 배신을 하면서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는 시대, 성적 쾌락에 가까운 만족을 취하면서도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는 시대였어. 쾌감과 약함, 공격성과 수치가 묘하게 뒤섞인 만족이었지. 음험한 파괴의 만족이었어. 사랑하는 사람을 파괴하고, 경쟁자를 파괴하고, 친구를 파괴하는 만족, 배신이란 원래 사악하고 부당하고 파편적인 쾌감과 한편이라네. 그렇게 흥미롭고, 조작되고, 은밀한 쾌감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호소력이 있지.” (p.440)
보다 정확하게는 탄핵 국면 우리의 블랙리스트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는, 그만큼이나 조작적이었고 광범위하였으며 허깨비로 가득하였던 공산주의자들의 리스트가 있다. 그렇게 소설의 중심에 아이라 린골드가 있다. 이란에 파견 중에 오데이에게 영향을 받은 얼치기 공산주의자였던 아이라 린골드, 연상의 유명 배우 이브 프레임과 결혼하였던 아이라 린골드, 소설의 화자인 어린 네이선 주커먼에게 영향을 끼쳤던 열정적인 아이라 린골드가 있다.
『“... 이브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한 게 아닐세.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갈망한 남자와 결혼한 거야. 그게 녀석을 분노에 빠뜨리고 혼란에 빠뜨리고 파멸로 이끌었지. 아이라는 자신에게 맞는 삶을 쌓아올릴 줄 몰랐어. 터무니없이 잘못된 노력만 기울여지. 하지만 사람의 오류는 항상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안 그런가?”
“이 모든 게 오류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게 이거 아닌가요? 삶 자체가 오류다. 여기에 세계의 본질이 있다. 아무도 자신의 인생을 찾지 못한다. 그게 인생이다.” 내가 말했다.
“이보게. 난 경계를 넘고 싶진 않네. 오늘은 그 말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마하지 않겠네...”』 (pp.532~533)
그리고 결국 아이라 린골드는 파멸한다. 아내였던 이브가 (아마도 공산주의자 리스트에 영향을 끼치기에 충분한 인사들인) 그랜트 부부와 손을 잡고 쓴 책인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의 발간과 함께 결정적으로 린골드는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여겼던 많은 것들로부터 물러설 수밖에 없게 된다. 열정적으로 살았지만 바로 그 열정 탓에 스스로를 불태워버리기에 충분하였던 인물, 아이라 린골드는 그렇게 사그라진다.
“머리 선생님을 보며 나는 인간의 불만족이 임자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불만족을 뛰어넘었다. 선생님에겐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야 남는 것, 스토아철학의 단련된 슬픔이 있었다. 서늘함이 있었다. 삶에서 모든 것은 오랫동안 뜨겁고 강렬하다,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열기가 새어나가 서늘해진 뒤 재로 변한다. 책과 겨루는 법을 내게 처음으로 가르쳐주었던 사람이 돌아와 지금은 내 앞에서 노년과 겨루는 법을 보여주고 있다... 그건 놀랍고 숭고한 기술이었다. 그 어떤 것도 강인한 인생을 살아낸 것보다 노년에 대해 더 잘 가르쳐줄 수 없기에.” (p.138)
격정적인 역사의 한 켠을, 그만큼이나 격정적이었던 인물 아이라 린골드를 통해 충실히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러나 그 소설을 이끌어가는 것은 이제 아흔 살이 된 아이라의 형 머리 린골드이고, 그에게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것은 이제 칩거의 삶을 살고 있는 노년의 작가가 된 나 네이선 주커먼이다. 열정의 시기가 지난 후 바로 그 열정의 시기를 정확히 살아간 이의 입을 통해 다시 읽어내는 열정의 시기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더욱 빛이 난다.
필립 로스 Philip Roth / 김한영 역 /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I Married a Communist) / 문학동네 / 538쪽 / 2013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