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호흡으로 게속되는 세 가지 이야기의 작용과 반작용...
전통적인 의미에서 소설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기에 최근 읽은 켄트 하루프의 소설들은 꽤나 적절하였다. 내가 머물고 이끄는 공간과 시간을 잠시 잊고 작가가 머물고 이끄는 시간과 공간에 빠져들기에 좋았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여기를 잠시 잊은 채 (소설을 읽는 중간 중간 지금 여기를 소환하는 즐거움은 바로 이 잊음에서 비롯되는 것이겠지만) 작가의 그곳에서 그 사람들에게 온전히 숨어들 수 있었다.
“무릇 소설은 긴 호흡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소설가들이 바라는 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면서, 모두들 긴 호흡이 어쩌고저쩌고하며 떠든다. 나에게는 갓난아이와 중간 아이가 있다. 두 아이들 때문에 숨 쉴 틈조차 없다. 내 글은 모두 짧은 호흡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니, 그래야 한다. 숨이 가쁘다.” (p.15)
《무중력 사람들》은 어쩌면 이렇게 숨어들었던 내가 고개를 다시 내밀고 또 다른 시선으로 호기심을 갖도록 만드는 소설이다. 어떤 이야기에 찬찬히 빠져들게 만드는 친절함 같은 것은 찾을 수 없는 소설이다. 하지만 그러한 불친절함을 우리 독자들은 이해하고 감내해야 한다. 소설의 화자는 두 아이를 둔 엄마이고, 남편은 집안일에 그리 헌신적인 편이 아니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은 하나의 긴 호흡이 아니라 틈틈이 토해내는 짧은 호흡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돌보다가도 여유만 생기면 언제나 소설을 쓴다. 다만 소설의 얼개에 빈틈을 군데군데 남겨놓아야 한다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야 나중에 다시 작품에 돌아오더라도 머물 곳이 있을 테니까. 그러려면 필요 이상으로 많은 내용을 집어넣거나 더하지 말아야 하고, 또 과도하게 꾸미려 해서도 안 된다. 다만 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놓아야 한다. 그리고 벽을 세운 다음 과감하게 무너뜨려야 한다.” (p.27)
화자는 이러한 사실을 숨기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에게 환기시킨다. 크게 세 줄기로 이루어진 소설의 한 줄기는 바로 이 생활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렇게 중력이 작용하는 현재, 멕시코시티의 그녀의 생활은 교묘한 방식으로 소설 속 다른 두 줄기의 이야기와 관계를 맺는다. 그것은 일종의 작용과 반작용과도 같다. 현실로 끌어내려가려는 그녀 중력에 이끌리는 그녀가 있다면 오히려 그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무중력의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이 널찍한 집에서 우리 식구들은 가끔 숨바꼭질 놀이를 한다. 그런데 보통 숨바꼭질과는 놀이 방식이 좀 다르다. 일단 내가 숨으면, 다른 식구들이 찾아야 하는 식이다. 숨바꼭질 놀이는 때로는 몇 시간씩 걸리기도 한다. 나는 벽장 안에 숨어 다른 삶, 그러니까 나의 것이되 동시에 나의 것이 아닌 어떤 삶에 관해 장문의 글을 쓴다...” (p.190)
그렇게 그녀의 현실에 대한 반작용으로 툭 튀어나오는 두 가지의 이야기는 모두 뉴욕을 거점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하나는 (소설 화자인 나의) 1970년대를, 또 하나는 (1970년대의 내가 발견하는 멕시코 작가 힐베르토 오웬의)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작가는 ‘수직으로 이야기하는 수평적 소설’ 또는 ‘수평으로 이야기하는 수직적 소설’이라는 짤막한 논평을 소설 속에서 드러낸다. 그러니까 현재와 1920년대와 1970년대라는 시간, 그리고 뉴욕과 멕시코시티라는 공간은 작가의 짧은 호흡 속에서 씨실과 날실처럼 직조된다.
“... 나는 나의 유령들을 흉내 내려고 한다. 다시 말해, 그들이 말하는 식으로 글을 쓰는 것, 소리를 일절 내지 않고 환영과도 같은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나의 목표다.” (p.29)
읽기가 쉽지는 않은 소설이다. 세 개로 나뉜 시간과 공간을 (교묘하게 맞물려 있기는 하지만) 넘나드는 것도,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북미와 중남미의 작가들이 수시로 튀어나오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소설 속 등장인물들, 그러니까 작가에 의하면 유령과 같은 사람들을 어떤 힘에도 이끌리지 않는 (그렇게 무중력 속의) 사람들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들이 가능해지는 공간, 그러니까 꿈과 같은 혹은 이 소설과도 같은 무중력의 공간에서는 말이다.
발레리라 루이셀리 Valeria Luiselli / 엄지영 역 / 무중력의 사람들 (Los Ingrávidos) / 현대문학 / 327쪽 / 2017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