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트 하루프 《축복》

어쩌면 우리의 삶은 쉽사리 흘려보내선 안 되는 이야기들로 가득한...

by 우주에부는바람

책을 읽는 동안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떠올랐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이나 <아침 햇살>과 같은 작품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미국의 일상을 그림으로 그리고 있는 것처럼 켄트 하루프의 소설은 미국의 일상을 글로 적고 있다. 그것들은 매우 간결해 보이지만 그만큼 사실적이다. 굳이 복잡하게 삼차원임을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단순하기만 한 그림에 오래 시선이 가는 것처럼, 소설 속 수수하고 일반적인 캐릭터들에게로 향한 시선을 쉬이 거두어들일 수 없다.


“8월 어느 날 밤의 일이었다. 대드 루이스는 그날 새벽 세상을 떠났고 이웃집 어린 소녀 앨리스는 저녁에 길을 잃었다가 어둠 속에서 마을의 가로등 불빛을 보고 집을 찾았다. 그렇게 그 아니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서 날씨는 차가워지고 나뭇잎이 졌으며, 겨울이 되자 산맥에서 바람이 불어왔고 홀트 카운티의 고원지대에는 밤새 폭풍이 불고 사흘 내리 눈보라가 쳤다.” (pp.462~463)


예고된 대드 루이스의 죽음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언제나처럼 홀트에서... 홀트를 떠올리면 오래전 알고 지냈던 선배의 강릉이 떠오른다. 그는 서울에서 수학하다 가끔 강릉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어느 날 그는 터미널에서 내려 곧바로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였는데, 어머니로부터 등짝을 맞아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버스를 기다리며 보도에 침을 뱉었는데 그것을 본 어머니의 친구가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고, 그 전화가 그 선배보다 먼저 집에 도착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홀트는 바로 그런 곳이다.


"어떤 일도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그냥 일어나는 법은 없어요..." (p.43)


그러니까 홀트는 내 기억 속 선배의 강릉 같은 곳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그렇다. 하지만 그곳에 자리 잡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가상의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과 비교되면서 더욱 실제적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태어나고, 떠났다가 돌아오거나 그러지 못한다. 그곳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그곳에 흘러들어온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도 있지만 다시 떠나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얘야, 넌 좋아질 거야.

어떻게 좋아질까요?

좋아진다니까. 모든 것이 다 좋아진단다.

어떻게요?

얼마 후에는 잊게 돼. 그리고 통증과 고통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할 거다. 고관절대치술도 생각하게 될 테고. 시력도 떨어지지.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게 돼. 행동반경도 전보다 좁아지고 그러다 다음달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그만두게 된단다. 목숨을 끌어가며 살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거야.』 (p.89)


대드 루이스는 이제 소생의 기회가 없다. 그의 아내 메리, 그리고 죽어가는 아버지를 돌보기 위하여 돌아온 딸 로레인이 그를 바로 곁에서 지켜본다. 이 가족은 각자의 방식으로 홀트를 떠난 프랭크를 생각한다. 대드 루이스의 앞집에는 버타 메이와 손녀딸 앨리스가 산다. 윌라와 그의 딸 에일린도 대드의 아내 메이를 위하여 그 집에 들르고는 한다. 이들은 교회를 함께 다니고 목사 라일은 대드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한다.


“아까 상점 앞에서 내가 울었던 것 말이오. 나로 하여금 울음을 터뜨리게 한 그 일 말이오. 거기서 내가 보고 있던 것은 바로 내 인생이었소. 어느 여름날 아침 앞쪽 카운터에서, 나와 다른 누군가 사이에 오간 사소한 거래 말이오. 몇 마디 말을 주고받는 것. 그냥 그뿐이었소. 그런데 그게 전혀 쓸모없는 일이 아니었던 거요.” (p.182)


많은 등장인물에게는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고, 그것이 소설 전체를 통하여 조금씩 흘러나온다. 특히나 대드가 젊은 시절 내쫓았던 직원 클레이턴과 그의 아내 타니아가 속해 있는 이야기는 최근 부임한 목사 라일의 설교 내용과 겹치면서 소설에 도드라지는 스크래치를 내기도 한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 인생은 쉽사리 흘려보내면 안 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였던 것인지 모른다. 그저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할 뿐...



켄트 하루프 Kent Haruf / 한기찬 역 / 축복 (Benediction) / 문학동네 / 471쪽 / 201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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