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면서도 속살이 깊은 이야기가 끊임없는 심상을 유지시키는 단문에 실려
작가의 문장이 무척 마음에 든다. 작가의 문장은 작가의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적확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작가의 단문은 작가가 하고 있는 평범한 이야기와 어울린다. 평범하면서도 속살이 깊은 이야기는 단문이되 끊이지 않고 심상을 유지하게끔 해주는 작가의 문장과 만나 파고든다.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멈추지 않고 그 끝까지 유려하게 독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든다.
“... 다시 복도로 나오자 방에서 아이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가늘고 맑은 목소리로 한 명씩 띄엄띄엄 얘기하며 뭔가를 논의 중이었다. 이른 아침, 어른이 옆에 없을 때 어린 남자아이들이 내는 단조로운 목소리였다. 거스리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p.9)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 이웃주민 같은 인물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커다란 사건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것들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이다. 병은 일상의 병이고, 임신과 출산은 일상 속의 일상과 출산이며, 사랑 또한 그렇고 이별이나 죽음 또한 그렇다. 도드라지는 사건이 없는 (작가의 소설 속) 인물들은 (현실의 우리들처럼) 그 안에서 성장을 하고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쇠락을 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야기가 낡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 작가의 인물들만큼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어가는 (혹은 이미 나이가 든) 인물들을 본 적이 없다. 어쩌면 그것은 이 작가가 마흔 한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첫 단편을 발표하고, 쉰다섯 살의 나이가 되어서야 유명한 작가가 되는 (바로 이 작품 《플레인송》으로 인하여) 작가의 인생 역정과 관계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가 거친 무수한 직장과 직업 또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소설은 작은 챕터들로 나뉘어 있고 각각의 챕터는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책임진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톰 거스리, 거스리의 두 아들인 아이크와 바비가 한 축을, 열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한 빅토리아 루비도와 그러한 빅토리아를 자신들의 집으로 받아들인 맥퍼런 형제가 다른 한 축을 이루어 소설은 만들어지고 있다. 아이들의 엄마인 엘라, 빅토리아를 돕는 매기 선생님은 각각의 이야기들에 참여하는 감초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두 이야기를 엮는 고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모든 챕터의 제목이 등장인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마지막 챕터의 제목만큼은 ‘홀트’이다. 이 인물들이 살아가는 작은 도시이다. 콜로라도 주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로 (그 도시의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 큰 도시로 움직인다면 그곳은 덴버이다. 덴버는 콜로라도의 주도이다.)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작가의 모든 소설은 바로 이곳 ‘홀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 엘라가 아이들을 들인 뒤 문을 닫자 거스리는 시카고 스트리트를 운전해갔다. 좁은 땅 위에 작은 집들이 서 있었고 앞뜰의 잔디는 겨울이라 모두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집 안에는 저녁 불빛이 켜졌고, 사람들은 부엌 의자에 앉아 저녁을 먹거나 거실에서 텔레비전 뉴스를 보았다. 물론 벌써부터 침실에서 말다툼하는 집도 있었다. 거스리도 그 사실을 잘 알았다.” (p.159)
그러니까 작가는 실재하지 않는 도시를 무대로 하여 가장 실제와 닮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나는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익숙하고 평범한 이야기라고, 작가의 소설을 말하였지만 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 모두에게 삶이란 가장 보편적인 순간에도 별 수 없이 매우 특별한 것일 수밖에 없다. 작가의 이처럼 소소한 이야기들이 이토록 깊숙하게 침투할 수 있는 특별한 힘은 거기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켄트 하루프 Kent Haruf / 김민혜 역 / 플레인송 (Plainsong) / 한겨레출판 / 407쪽 / 2015 (1999)
ps. 플레인송 Plainsong 은 ‘고대부터 기독교 교회에서 쓰인 단선율의 성가, 단순하고 꾸밈없는 멜로디 혹은 분위기’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