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에 부스케 《달몰이》

육체와 정신, 이 이분법의 이율배반, 그 비밀스런 내막에 아주 가깝게..

by 우주에부는바람

*2016년 12월 31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스무 살에, 나는 포탄을 맞았다. 내 몸은 삶에서 떨어져 나갔다. 삶에 대한 애착으로 나는 우선은 내 몸을 파괴하려 했다. 그러나 해가 가면서, 내 불구가 현실이 되면서, 나는 나를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상처받은 나는 이미 내 상처가 되어 있었다. 살덩이로 나는 살아남았다. 살덩이는 내 욕망들의 수치였다.

나라는 존재는 절단으로 이미 축소되었는데, 날 죽여야겠다는 결심은 추억처럼 되살아났다. 불행이 제아무리 많아도 불행을 느낄 감각조차 없으면 고통스럽지 않다. 감각적 쾌락을 좇는 내 영혼 탓에 나는 내 협소한 삶 안으로 더 깊이 들어오고 말았다. 감각이 없어지게 되었으나 생각하는 대신 느꼈다. 남자로서의 내 삶은 폐허가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내 불구를, 나를 구했다. 나는 여자처럼 살았다. 정신을 잉태했고, 정신을 내 감각들로 젖 먹이었다.“ (p.11)


저자인 조에 부스케는 1897년생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916년 1차 세계 대전에 자원 입대하였다. 그리고 1918년 5월 27일의 전투 중 척추를 관통당하는 총상을 입었다. 그리고 하반신 불구가 되었다. 그는 나머지 삶을 카르카손에 있는 자신의 집 침실에서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병상에서 당대의 예술가들과 교류하였다. 폴 엘뤼아르, 막스 에른스트, 우리 아라공 르네 마그리트 등이 그들이다. 그리고 1950년 사망하였다.


『어느 날,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친구들의 눈 속에 나는 없었다. 나는 한 버려진 남자의 분노를 느꼈다. 효과적인 구조 활동을 절대 할 수 없는 남자. 위험에 처한 의식을 가서 도와줄 수 없는 유약한 개체. 나는 그런 자였다. 내가 만들어놓은 형국 때문에 경험을 심화할 수 없어 몹시 불행해진 나는 속으로 말했다. “나는 다 포기했으나 포기만큼은 포기하지 못했군.” 자유롭다는 느낌에 나는 절망했다. 건너갈 대안 앞에서도 내 정신은 아주 무심했고, 이런 나는 심각한 선고를 받은 것 같았다.』 (p.13)


《달몰이》는 1946년에 출간되었다. 저자는 이미 삼십여 년을 침실에서 보낸 상태였을 것이다. 이십대와 삼십대와 사십대 대부분의 시간을 그렇게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육체가 만신창이가 된 이후에도 그는 정신으로의 헌신을 통해 인간으로의 복구를 꾀하였다. 그것이 대단한 것은 그 복구의 성공 여부가 온전히 저자 자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구도 그것을 판단할 수 없다, 이 책을 모두 읽어도 마찬가지이다.


『... 문이 열렸고 젊은 소년 하나가 서서 그림을 보고 있다. 그림이 매우 아름답다고 소년은 생각한다. 그리고 붉은 한 점에 놀란다. 항아리에 진 그림자에서 별처럼 반짝이던 그 붉은 점, 바로 거기서 붉은 색깔이 생겨났다. 소년은 화가에게 이 점으로 그의 그림 한 점이 완성될 것이라고 어떻게 짐작하게 되었는지 묻는다. 화가가 대답한다. “그림 그리는 게 내가 아니게 될 때까지 나는 그림을 그리지.”』 (p.28)


책을 읽는 동안 문득 한 쪽 눈을 사용할 수 없고, 그래서 다른 쪽 눈도 무용지물이 되었던 잠시의 시간 동안 내가 겪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나는 겨우 삼일 정도를 병실에 머물렀고 각종 검사 장치들을 들락거렸다. 많은 의사들이 나를 에워쌌고 나는 새우등을 만들어 내 척수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그 짧은 기간 동안, 그 중의 어느 한 순간도 정신이 명징해지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 투명한 물은 하늘만큼이나 고요하다. 그 잔물결은 속눈썹 달린 거울이다. 내가 그 유사함을 느낀 건 내가 온통 자유의 순간일 때다... 내 손가락은 물 진주들과 장난을 치고, 건들면 너무 부드러워 인상을 쓰며 잠에서 깨어난다. 꿈 때문에 그런 거겠지만 피부가 따끔거린다. 자지 않으면서 자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조금 전 가슴 위에 큼직한 하얀 염소가 올라 앉아 있는 것처럼 가슴이 무거웠다. 그 짐승의 자리에 올리브 열매들처럼 붉고, 굵은, 물 많은 열매 피라미드 더미가 올라 앉아 있는 것 같더니 소나무 바늘들이 찌르르 내려오면서 땅 위를 굴러갔다.” (p.73)


《달몰이》에는 저자 자신이 겪어 온 시간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다. 그 활동은 때로 처참해 보이지만 그만큼이나 아름답게 표현된다. 그는 억지로 힘을 내지 않는다. 억지로 힘을 냄으로써 오히려 힘이 빠지게 될 수도 있음을 잘 안다. 그는 육체와 정신, 힘과 힘 없음, 선과 악과 같은 이분법의 이율배반, 그 비밀스런 내막에 아주 가깝게 접근한다.


“올바른 사람들은 고통받는다. 힘이 법을 만든다... 힘은 자신이 선하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우릴 설득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힘의 약함이며 힘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힘은 정의를 흉내 낸다. 벽은 포스터들로 뒤덮인다. 자신에 대해 그렇게 확신이 없는 줄은 몰랐다. 옛날에는 힘은 선을 몰랐다... 그러나 이제 힘은 선이 되고자 하며 따라서 패배한 것이다.” (p.95)


그의 글은 그 무엇도 고려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주 많은 것을 생각할 때 고려할 수 있다.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어서, 이제 몇 시간 남아 있지 않아서 그의 글을 다시 상기하는 일이 더욱 기껍게 느껴진다. 권력의 승리가 완전히 고착되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고 여겨 포기하였을 즈음, 그러니까 2016년 10월 이후 시작된 힘의 균열과 파열을 목도한 나로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 시선이 우리 삶을 빛 한가운데서 찾지 않아야 한다. 우리 삶은 우리 눈의 그림자 아래서 음험하게 만들어진다. 우리 날들은 태양의 높이를 가지고 있지 않고, 그 날들이 만든 우리의 존재감은 그다지 크지 않다. 일상의 행위들을 하나로 모으고 지배할 만큼은 아니다. 존재란 안에 찬 것, 안에 샘이 흐르는 것이다... 삶은 네가 기대한 대로가 아니다. 네가 그 삶을 명명할 때, 너는 그 삶을 꿈꾸는 것뿐이다. 삶은 네가 듣는 말들 속에서만 진행되고, 이 보이는 윤곽들, 그 특징들 속에서 너를 관찰한다. 그것이 너의 사랑이 될 것이다. 네가 그걸 너무 의식하지 않으면 말이다. 네가 너와 같다고 믿는 세계를 망각할 때 그 망각이 발산하는 향기 속에 네 삶은 있다.” (p.131)


조에 부스케의 기록들은 아마도 어두운 침실, 더욱 혹독한 침대 위에서 또렷하게 희미하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글을 읽을 때의 감정을 혹은 감동과 비슷한 것을 나는 느낀다. 그를 읽으면서 계속 나로 수렴하고 또 확장되려고 한다. 나에게 집중함으로써 오히려 내가 희미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나의 의식이 희미해지면 희미해질수록 그가 더욱 또렷해진다. 하지만 그는 이미 희미해져 있으므로 또렷하다.


“세계는 세계 속에서보다 내 속에서 더 크다. 그러나 나는 내 가슴속에서 펼쳐지는 현실로부터 몰려나왔다. 나는 내게 나타나기 위해 축소된 우주의 한 부분이다.

그런 것이 나의 자유다. 나는 거기 기꺼이 난파한다. 만일 육체가 영혼의 먹이가 아니라면 그것은 영혼의 감옥이며, 죽음이다.“ (p.164)


이제 나의 기록을 정리해야 할 때이다. 언제나 끝은 시작과 맞물려 있으니 그리 상심하지 않는다. 아내는 휴일의 낮잠으로 거나하고, 고양이 들녘은 그 품안에 있다. 고양이 용이는 내 발치를 우왕좌왕 하지만 무언가를 바라는 것 같지 않다. 아내가 깨면 나는 잠시 후 광화문을 향하게 될 것인데 올해의 마지막 외출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올해에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고 어쩌면 다음해에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조에 부스케 Joë Bousquet / 류재화 역 / 달몰이 (Le Meneur de Lune) / 봄날의책 / 217쪽 / 2015 (1946, 197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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