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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20. 2024

은희경 《중국식 룰렛》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설명의 방식이 불편하지만...

  「중국식 룰렛」

  “천사들은 술을 가리지 않아요. 모든 술에서 공평하게 2퍼센트를 마시죠. 사람의 인생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증발되는 게 있다면, 천사가 가져가는 2퍼센트 정도의 행운이 아닐까요. 그 2퍼센트의 증발 때문에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군요.” (p.44) K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술집을 운영하는 K만의 방식도 특이하다. K는 서로 다른 술 세 종류를 손님에게 건넨다. 손님은 그 중 한 가지를 선택하게 되는데, 그렇게 선택한 다음에는 무조건 그 술을 마셔야만 한다. 세 종류의 술은 가격에서 큰 차이가 날 수도 있는데, 어떤 술을 선택하든 같은 가격으로 마시게 된다. 좋은 술을 싼 가격에 먹을 수도 있고, 그리 좋지 않은 술을 비싼 가격에 마시게 될 수도 있다.


  「장미의 왕자」

  “... 나는 나를 반기지 않는 세상에 태어났고 투명인간이 되는 도장도 발명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정작 나를 바라봐주기를 바랐던 단 한사람은 나를 투명인간처럼 대했다. 오늘 찻집 앞 사거리에서 우연히 당신과 마주쳤다. 당신도 나도 혼자였다.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춘 나의 곁을 당신은 무사히 지나쳐갔다. 그동안 당신의 웃음이 향한 곳은 내가 아니라 내가 걸친 찻집 에이프런과 쟁반이었다. 그것이 나의 장미였다.” (pp.77~78) 제목인 ‘장미의 왕자’가 가리키는 곳 아니 가리키는 것이 모호하고 속물적이다. 내가 머물고 있는 장소와 그곳을 공유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수첩을 놓고 간 여인이나 Y 또한 실체가 불분명하다. 사실 모호하거나 불분명한 것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 장소들이 사람들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대용품」

  “... 불빛이란 게 이렇게 요란한 줄 몰랐네. 축제 같다. 근데, 남의 축제. 내 축제일 리가 없어. 남의 축제에 왜 왔는데? Jㅏ 말했다. 몰랐지. 내가 이 삶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걸. 그녀는 다시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는 모든 게 다 진짜였는데. 그건 다 어디로 갔을까.” (p.105) 그는 소년 시절 절친이던 작은 소년과 함께 서울로 올라오다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그 사고로 작은 소년이 죽었다. 그때 뒤바뀐 적이 있는 신발, 어쩌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는 그 죽은 소년의 신발의 대용품을 신고 다니는 것일 지도 모른다.


  「불연속선」

  “여기까지가 그의 이야기이다. 이제부터는 나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p.130) 소설은 이렇게 화자를 바꾼다. 그와 나의 가방이 뒤바뀌고 그렇게 인생에 어떤 변곡점이 발생한다. 변곡점이라고 생각했던 어떤 지점을 제치고 또 다른 포인트가 생기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이 모든 것들이 불연속선에 위치한다. “담고 옮기고 꺼내는 것 중에 그릇과 사진 가방이 있다. 이따금 그것들은 불연속선의 끝에 자리 잡아 화살표처럼 방향을 가리켜보인다. 그때에 우리는 그것들이 가리키는 쪽으로 무심히 고개를 돌릴 것이다.” (p.137)


  「별의 동굴」

  “... 중심으로부터 일정한 거리 밖에 물러나 있기를 자청한 것은 욕망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패배자가 되기 두려웠던 것이다. 전략적이지 못했을 뿐 타협도 했다. 힘있는 자들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 애썼고 명백한 오류임을 알면서도 그들이 주도하는 방향에 따랐다. 싸움이 벌어질 때는 아무 입장도 취하지 않음으로써 중간자의 이득을 취했다. 경쟁이 될만한 상대에게서 약점을 찾아내기 위해 예민했고, 그에 대한 험담이 나오면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침묵으로 그 오해를 부추겼다. 유리한 위치에 있을 때는 충분히 이기적으로 굴었다. 불안해서 비겁했다.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거만하거나 초탈한 척했다. 수긍한 게 아니라 회피한 것이었다. 자기를 변명하고 합리화하는 논리도 익혀갔다. 그 논리란 권위를 추종하고 인기를 탐내면서 아닌 척 자신을 기만하는 기술이었다...” (p.163) 마흔이 넘어 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 주인공이 스스로를 평가하는 대목에서 잠시 멈췄다. 오랜 시간 공부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지닐 법한, 지식인이라 할 사람들 거개가 가지고 있을 법한 자기 고백의 욕망을 작가가 대신해주고 있는 것만 같다.


  「정화된 밤」

  다니엘의 부모는 성당에서 만났다. “그녀는 호기심과 감상을 갖추었으며 거기에서 생겨나는 욕망과 공상 또한 충분히 갖고 있었다. 그러나 추진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계획단계에서부터 갖가지 오류와 염려를 발견하는 데에 열심인 나머지 마치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데에 재능이 있어 보일 정도였다. 그 때문에 그룹에서 그다지 환영 받지 못했고 눈총을 받는 일도 있었다...” 다니엘의 엄마인 젬마는 이런 사람이었다. 젬마는 성당에서 가브리엘을 좋아하였으나 어느 크리스마스 날 요셉과 함께 잠자리를 했고 다니엘이 태어났다. 그들이 성가곡으로 부른 <정화된 밤>이라는 곡과 그러한 곡을 부르고 있을 때조차 많은 이들이 보여주었던 위선이 소설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은희경 / 중국식 룰렛 / 창비 / 214쪽 / 20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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