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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21. 2024

기타무라 가오루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

매일매일 일을 하고 매일매일 술을 마시고 그러한 와중에도...

  술과 관련된 일화로 말하자면 나 또한 천일야화 마냥 목숨 질기도록 가지고 있다. 실제로도 질긴 목숨이어서 한창 마시고 다닐 때에는 그러고도 살아 있는 것이 용하다, 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나의 어두운 술 역사를 알고 있는 많은 이들은 지금의 나를 아주 대견하게 여긴다. 다만 나의 어두운 술 역사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아내만큼은, 너무 직접적인 당사자여서 그런지, 한 달에 세 번 정도 집에서 조용히 마시는 나의 술자리에 조차 의구심 속에 기필코 참견한다.


  “... 미야코는 병째 들이켜도 흐물어지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토하거나 뻗는 추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와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는 걸 알았다... 전에 없이 격해진다. 그리고 기억을 못한다.” (p.20)


  오래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술 이야기가 나오면 나를 떠올리는 지인들이 많고, 나도 술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면 한 번 더 눈길이 가기는 한다.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이건 뭐지, 손길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소설 속 주인공은 코사카이 미요코, 미혼 여성이며 출판사의 잡지 파트 편집인인 그녀의 술과 관련된 이런저린 기행들을 피식 거리며 읽었다.


  『“코사카이 씨.”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흰 커버를 덮은 둥근 의자에 앉아 의사와 마주했다. 의사의 첫 마디.

  “정직한 사람이군요.”

  놀랄 일이다. 자기가 생각해도 사실 위장, 속임, 거짓말은 적은 편이라 생각한다. 허나 병원 의사의 소견으로 듣기엔 이게 뭔가 싶었다. 조심성 없다, 멍청하다, 라는 말을 들으면 차라리 그러려니 할 상황 아닌가. 술 취해 다쳐서 병원에 왔는데 어째 도덕적인 칭찬을 듣는 거지? 미야코는 절로 고개가 외틀렸다.

  의사는 말을 이었다.

  “여자들은 대개 이런 상황에서 ‘넘어졌다’고 씁니다.”

  그러면서 문진표에 다치게 된 경위란을 톡톡 쳤다.

  흰 종이에 꾹꾹 눌러쓴 글자. ‘술이 떡이 돼서.’』 (pp.155~156)


  소설은 그렇게 술과 관련한 이런저런 일화들로 채워져 있다. 주인공이 일하는 곳이 어느 정도 규모를 가진 출판사이다보니 출판과 관련된 이런저런 사건들, 거개가 편집인과 작가 사이의 일들이 배경에 깔려 있기는 하다. 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주인공과 그 주변인물들이 함께 하는 술자리이다. 직장인들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그러니까 딱히 무슨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으레 어쩌다보니 만들어지는 술자리가 내내 소설의 배경이 된다.


  “불평이란 모름지기 듣기 불편한 법이다. 미야코는 특히 낫살이나 먹은 남자의 불평은 딱 질색이었다... 뭐가 구시렁이고, 뭐가 불평인가. 그 기준점은 명확히 정의할 수 없다. 하지만 전자에 약간의 유머와 여유가 있다면, 후자는 오로지 암흑의 구렁텅이 같은 이미지다.” (p.59)


  이렇게 매일매일 연속되는 술자리는 매일매일 연속되는 일이나 거듭되는 사랑 혹은 우정을 품고 있다. 비슷한 연배의 여성들로 채워져 있는 직장이다 보니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때때로 결혼에 가닿기도 하고, 한 직장의 또 다른 인물들을 향하고 있기도 하다. 별스런 이야기들이 아니라 그저 매일매일 지속되는, 벌어지고 수습되고 또 벌어지고 수습되는 일상의 이야기들이다.


  “우리 신랑이 나한테, ‘당신한테는 당신이 모르는 좋은 점이 있어.’라고 말해줬어. 그게 뭐냐고 꼬치꼬치 묻지는 않았지. 그냥 그렇게 생각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내 값어치를 높이는 길이란 것쯤 알거든. 내게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결혼은 자연스레 성사돼.” (p.260)


  그리고 우리네 인생사가 그렇듯이 그처럼 소소한 술자리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어떤 사소한 진리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뭔가 그럴듯하고 거창해 보이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우리들 주변에서 숱하게 발견되는, 그러니까 예를 들어 주변인들과의 술자리에서도 발견하게 되는 무엇, 그러니까 일과 우정과 사랑에 대한 아주 사소한 풍경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아주 가볍게 읽을 수 있다, 때때로 우리 삶이 그렇듯...



기타무라 가오루 / 오유리 역 /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 (飮めば都) / 작가정신 / 415쪽 / 201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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