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라는 비경이 아니라 소설가라는 풍경을 바라본다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제목처럼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한 몇 가지 테마를 다루고 있는 산문집이다. (별도의 청탁에 의해 작성된 것이 아니고 그 자신이 내켜서 썼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한 신생 잡지사의 원고 의뢰에 이 글들을 보냈다고 한다.) 소설 혹은 소설가란 무엇인가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삼십여 년 이상 소설가를 직업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는 자기 자신의 경험을 스스럼없이 토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 소설을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내적인 충동drive. 장기간에 걸쳐 고독한 작업을 버텨내는 강인한 인내력. 이건 소설가라는 직업인의 자질이자 자격이라고 딱 잘라 말해버려도 무방할 것입니다... 소설 한 편을 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뛰어난 소설 한 편을 써내는 것도 사람에 따라서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간단한 일이라고까지는 하지 않겠지만, 못할 것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소설을 지속적으로 써낸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려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특별한 자격 같은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거 아마도 ‘재능’과는 좀 다른 것이겠지요.” (pp.29)
물론 몇몇 산문집에서 자신의 소설 쓰기 작업에 대한 생각을 피력한 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산문집은 좀더 본격적이다. 산문집에서 그는 소설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소설가가 되는 과정의 자기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문학상이나 문학 교육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한다. 이와 함께 소설을 쓰는 과정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몇 가지 사항들과 독자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소설가를 둘러싼 주변의 테마를 나름 골고루 다루고 있다. (산문집의 마지막 챕터는 조금 다른 이야기 한 편이 실려 있기는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렇다는 얘기입니다만, 특정한 표현자를 ‘오리지널’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조건이 채워져야 합니다... (1) 다른 표현자와는 명백히 다른 독자적인 스타일(사운드든 문체든 형식form이든 색채든)을 갖고 있다. 잠깐 보면(들으면) 그 사람의 표현이라고 (대체적으로) 순식간에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2) 그 스타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버전 업 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의 경과와 함께 그 스타일은 성장해간다. 언제까지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그런 자발적 · 내재적인 자기 혁신력을 갖고 있다. (3) 그 독자적인 스타일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일반화하고 사람들의 정신에 흡수되어 가치판단 기준의 일부로 편입되어야 한다. 혹은 다음 세대의 표현자의 풍부한 인용원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많든 적든’이라는 범위 안에서 이 세 가지 항목을 만족시키는 것이 ‘오리지널’의 기본적인 조건이 될 것입니다.” (pp.97~98)
머리 아파 하지 않으면서 전체 글을 읽을 수 있다. ‘오리지낼리티에 대해서’라는 챕터의 내용은 의미심장하기도 하다. 작가가 첫 번째 소설을 쓸 당시의 이야기와 겹치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는 일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첫 번째 소설을 쓰면서 이런 방식을 취했다고 한다. 먼저 일본어로 쓴 소설을 영어로 다시 옮겨 적었고, 그 영어로 된 버전을 다시 일본어로 바꿨다. 그의 번역투 문장은 이렇게 만들어졌고, 아마 이런저런 욕도 많이 먹은 것 같지만, 어쨌든 지금 그 문장들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스타일이 된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따금 독자에게서 아주 재미있는 편지가 날아오기도 합니다. ‘이번에 나온 신간을 읽고 크게 실망했습니다. 유감스럽지만 나는 이 책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음 책은 꼭 살 거예요. 열심히 해주세요’라는 편지입니다. 솔직히 말하겠는데, 나는 이런 독자를 정말 좋아합니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틀림없이 ‘신뢰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나는 ‘다음 책’을 제대로 써야지, 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책이 그/그녀의 마음에 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단,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할 수는 없는’ 일이라서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p.284)
하루키는 산문을 쓸 때 유지하는 유머러스함을 이 산문집에서도 잃지 않는다. 그야말로 쿨 하기 그지없는 하루키는 독자에 대해서도 고색창연한 작가로서의 권위 같은 것을 내세울 생각은 없는 듯하다. 물론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자존심도 쿨 하게 유지한다. 그러니 책의 대부분은 술술 잘 읽힌다. (현재 문학을 꿈꾸는 이라면 뭐야 이건, 하면서도 받아들일만한 구석이 꽤 많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느낌이라서 확실한 근거나 예증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역사적인 연표와 대조해가며 살펴보면 세계적으로 각 나라의 사회 기반에 뭔가 큰 동요(혹은 변용)가 일어난 뒤에 내 책이 널리 읽히는 경향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내 책이 급속히 팔리기 시작한 것은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라는 거대한 지반 변혁이 일어난 뒤였습니다... 또한 베를린의 동서를 가르는 장벽이 극적으로 붕괴하면서 독일이 통합 국가가 딘 얼마 뒤부터 내 소설이 독일에서도 서서히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p.304)
사실 우리 시대의 격변기,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 무라카미 하루키를 두루 읽기 시작했다. (무라카미 류도 비슷한 시기에 읽혔고, 우리는 이들을 TWO 무라카미, 라고 부르고는 했다) 그에 대한 생각에 부침이 있기는 하였지만 출간되는 그의 책을 여전히 읽고 있다. (까페 여름의 형은 이 책을 구매한 나를 보며 아직 하루키를 읽어? 라고 물었고 나는 예 뭐 그냥, 이라고 얼버무리며 답했다) 나는 어쨌든 멈추지 않고 소설을 비롯한 다양한 글을 써내는 일을 삼십 년이 넘게 지속하고 있는 작가에게 일종의 경외감을 지니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 양윤옥 역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職業としての小說家) / 현대문학 / 335쪽 / 2016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