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컬한데도 차갑지 않은 이런 어색한 온도가 재미있어서 여전히...
하루키의 여행 산문집이다. 미국의 보스턴 그리고 오리건 주 포틀랜드와 메인 주 포틀랜드, 아이슬란드, 그리스의 미코노스 섬과 스페체스 섬, 뉴욕, 핀란드, 라오스의 루앙프라방 그리고 일본의 구마모토가 여행지들이다. 하루키는 그곳들을 최근에 혹은 오래 전에, 아니면 오래 전에 갔다가 최근에 다시 방문한다. 정말 여행처럼 그곳에 들르기도 하고, 아니면 그곳에서 잠시나마 삶을 꾸리며 머물기도 하였다.
“작가회의에 대해서는 별로 할 얘기가 없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작품 낭독과 단상 공개 인터뷰, 신문 인터뷰 두 건, 아이슬란드 대학에서의 강연(비슷한 것), 서점 사인회, 그리고 개회 리셉션 참석과 칵테일 파티에서 다른 작가들과 대화를 나눈 정도다. 익숙지 않은 일을 하자니 역시나 피곤하더군요. 정말로. 그래도 아이슬란드의 젊은이들과 무릎을 맞대고 얘기한 시간은 매우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옆자리에 앉은 싹싹한 아주머니와 잠깐 잡담을 나누고 기념품을 받았는데, 나중에 들으니 그분이 다름아닌 아이슬란드 전직 대통령이었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거드름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p.27)
일반적인 여행 산문집처럼 여행지의 풍광을 향하여 이런저런 묘사를 부과한다거나 그곳에서의 자신을 떠올리며 떠올린 사색으로 책을 채우고 있지는 않다. 그는 주로 아주 가볍게 그곳에서의 어떤 상황을 떠올리고, 그것을 특유의 허허실실한 태도로 기록한다. 아무것도 아닌 양 하지만 그곳에 있던 작가에게 빙의하여 그 순간을 떠올리면 저절로 웃음 짓게 되는 그런 장면들로 내용을 채우고 있다.
『“포틀랜드는 미국에서 인구당 레스토랑 수가 가장 많은 도시예요.”라고 이곳 사람은 말한다. “또 인구당 독서량이 가장 많고, 그리고 큰 소리로 말할 순 없지만, 교회에 나가는 사람이 가장 적은 도시죠. 하하하.”
어떤가? 당신은 이 도시가 마음에 들 것 같은가? (큰 소리로 말할 순 없을지 몰라도) 나는 마음에 쏙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레스토랑만 드나들다가는 뚱뚱해지지 않을까? 괜찮습니다. 걱정마세요.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윌래밋 강변에 무척 아름다운 조깅 코스가 마련되어 있답니다.』 (pp.74~75)
하루키의 시니컬한 유머들은 그의 산문집에서 진가를 발휘하기 마련이다. 하루키의 산문은 하루키의 소설과 비교해도 더욱 가벼운데, 그것이 싫지는 않다. 항상 그런가보다 하고 읽는다. 까페의 선배는 여태 하루키를 읽느냐며 의아해하는데, 그게 그러니까, 어쩌면 하루키가 자신의 여행지 곳곳에서 그저 달리기가 좋아서 달리는 것과 비슷한 것도 같다.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습관이 되어버린, 하루키를 읽는 습관 같은 것이랄까...
『그건 그렇고, 세계 어디를 가나 출판사 사람을 만나서 “요즘 경기는 어떻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하아, 장사가 너무 잘돼서 큰일입니다”라는 대답을 들어본 예가 없다. 보통 다들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그게 말이죠. 책이 잘 안 팔려서......” 하는 푸념을 쏟아낼 뿐이다. 핀란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원자력발전이나 지구온난화만큼 심각한 문제는 아닐지언정 해가 갈수록 책이 안 팔리는 현상 또한 세계적인 고민거리인 것 같다. 흠, 우리의 지구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p.147)
전세계적으로 책이 안 팔리고 있는 상황에 대한 하루키의 이 가벼운 터치를 보면서는, 이봐요 하루키 씨 이런 한가한 소리 하지 말아요, 게다가 당신의 책은 대한민국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잘 팔리고 있다고요, 라고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하지만 꾸역꾸역 읽는다. 뭐 책이 잘 안 팔리는 상황에 대한 볼멘소리를 책을 잘 팔고 있는 하루키를 향해 던지는 것도 어색하기는 하고...
“.. 토피어리가 (나무를 동물 모양으로 깎는 원예기법) 늘어선 광경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차를 세우고, 내친김에 가게에 들러 옥수수를 사먹는 관광객이 한둘이 아니니(우리도 다름아닌 그 일원이었다), 영업 면에서도 토피어리 무리는 아주 유익하다고 단언해도 좋을 것 같다. 이것을 ‘예술’이라고 부르기는 아마 어렵겠지만, 적어도 ‘성취’라고 부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넓은 세계에는 비평의 개입을 허락지 않는 수많은 성취가 존재한다. 그런 성취 혹은 자기완결 앞에서 우리는 그저 놀라고 감탄하는 수밖에 없다.” (p.250)
하루키의 소설을 문학의 최고봉으로 여기기는 어렵겠지만 하루키의 전체적인 문학 활동이 가지고 있는 어떤 성취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기도 하다. 소설과 논픽션과 산문을 아우르는 이 전방위적인, 그리고 끊어짐 없는 글쓰기를 성취가 아니면 무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어쨌든 어깨에 힘 뺀 이런 하루키의 글을 많이도 읽었고 아무래도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 / 이영미 역 /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ラオスにいったい何があるというんですか?) / 문학동네 / 262쪽 / 2016 (2015)
ps. 산문집의 대부분의 문장은 ~이다, 라는 어법으로 되어 있는데, 중간중간 갑자기 ~입니다, 라는 어법이 튀어나온다. 미묘하게 느낌이 다른데, 그게 거슬리지 않는 걸 보면, 이런 차이를 하루키가 잘 이용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