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니라 그가 곧 이야기였으므로...
책에 기록된 첫 번째 글은 1991년 8월 28일의 것이고, 마지막은 1993년 2월 27일에 작성된 글이다. 찰스 부코스키가 태어난 것이 1920년이니 우리 나이로 치자면 일흔 두 살에서 일흔 네 살 사이에 작성된 글들이다. 그리고 찰스 부코스키는 이듬해인 1994년 3월 9일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 그의 삶의 막바지에 작성된 글들인데, 그때까지도 찰스 부코스키는 여전히 시니컬하기 그지없다.
“꽃이 피어나는 것이 애도할 일이 아니듯, 죽음도 애도할 일이 아니다. 끔찍한 건 죽음이 아니라 인간들이 죽기까지 살아가는 삶, 또는 살아보지 못하는 삶이다. 인간들은 제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제 삶에 오줌을 싸댄다. 제 삶을 똥 싸갈기듯 허비한다. 멍청한 씨댕이들. 그들은 씹질, 영화, 돈, 가족, 그리고 또 씹질, 따위에 너무 몰입한다. 그들 머릿속엔 솜만 꽉 찼다. 그들은 하느님을 아무 생각 없이 꿀꺽 삼키고, 국가도 아무 생각 없이 꿀꺽 삼킨다. 그러다 금방 그들은 생각하는 법마저 잊어버리고, 생각도 남들이 대신 하라고 내맡긴다. 골통엔 솜만 꽉 찼다. 그들은 생긴 것도 추하고, 말하는 것도 추하고, 걷는 것도 추하다. 수세기 만에 한 번 나올 법한 위대한 음악을 틀어줘도 들을 줄을 모른다. 대다수 인간들의 죽음은 짝퉁이다. 죽을 게 남아 있어야 말이지.” (p.17~18)
무수히 많은 직업을 거쳤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음,,, 그에게 의미가 있는 만남은 주로 여자들에게로 국한되는 것 같지만 어쨌든...) 무수히 많은 책을 썼고 (대략 장편 소설 여섯 권, 시집 서른세 권, 단편집과 소책자 열세 권, 논픽션과 서간집 등 아홉 권을 썼다) 이제 드디어 칠십대에 이르렀지만 작가는 여전히 남의 눈 따위 안중에 없고 자신의 세상 바라보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당연한 듯도 하지만 어찌보면 이상하기도 하다.
“... 난 그저 하나의 외딴 돌덩어리일 뿐이다. 그 돌덩어리 속에 훼방 없이 머물고 싶다. 애당초부터 그런 식이었다. 부모에게 저항했고, 그다음엔 학교에 저항했고, 또 그 다음엔 건전한 시민이 되는 것에 저항했다. 내가 어떤 인간이었던 간에, 말하자면, 애당초부터 난 그런 식이었다. 어느 누구건 내 그런 면을 집적대는 걸 난 원치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p.31)
칠십대에 이르러 변한 것이 있다면 이제 더 이상 여자들을 향한 관심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 정도일까. 사실 이 부분도 의심스럽기는 하다. 책은 작가의 사후 그의 아내의 주도하에 출간된 것이다. 어쩌면 취사 선택되었을 수도 있다. 물론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찰스 부코스키는 이때 이미 백혈병 진단을 받은 상태였고 자신의 죽음을 어느 정도 의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여자보다는 죽음, 관심사가 정말 변했을 수도 있다.
“완전 탈진. 이번 주엔 며칠 밤 술을 마셨다. 예전처럼 빨리 회복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쳐서 제일 좋은 건 (글을 쓰면서) 거칠고 어리석은 선언을 남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버릇이 되지만 않는다면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글은 제 앞가림부터 하는 게 우선이다. 그거만 되고 나면, 글은 자동적으로 읽을 맛이 나고 흥미진진해진다.” (p.69)
찰스 부코스키는 이때까지도 여전히 하루에 한 시간에서 네 시간 사이의 시간동안 (이때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글을 쓰고 있다. (하루에 다섯 시간을 글을 쓴다고 떠드는 다른 작가를 헐뜯기는 하지만 말이다.) 컴퓨터를 이용한 글쓰기가 타자기를 이용한 글쓰기보다 속도 면에서 빠르다는 사실에 그는 기뻐하기도 한다. 사실 책의 많은 부분은 경마 이야기인데, 술은 줄었고 여자들을 찾아다니지 않지만 경마만큼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우린 종잇장처럼 얇다. 우린 갖가지 확률 속에서 운에 따라, 잠정적으로, 살아나간다. 시간적 요소, 그게 삶에서 가장 좋은 부분이자 가장 나쁜 부분이다. 시간은 우리가 어째볼 수 없다. 산꼭대기에 앉아 수십 년 명상을 한들 그 사실을 바꿀 순 없다. 그냥 받아들이는 쪽으로 우리 마음을 바꿀 수도 있겠지만, 그거 또한 잘못된 선택일 수 있다. 어쩜 우린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덜 생각하고 더 많이 느껴라.” (pp.101~102)
죽음에 거의 다다랐을 이때까지도 그는 여전히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여겨진다. 그는 생각하기보다 많이 느끼라고 말하는데, 어쩌면 이것은 생각과 느낌이 분리되지 않는 그의 글쓰기 방식과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는 내내 자신의 삶과 분리되지 않는 글쓰기를 했는데, 이처럼 삶과 글이 연결된 그의 문학에서 그의 느낌은 곧 그의 생각이 되고 마는 것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그에게 남은 이야기가 있었다기보다는 그가 곧 이야기였으므로 그의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찰스 부코스키 Charles Bukowski / 로버트 크럼 그림 / 설준규 역 /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 언더그라운드의 전설 찰스 부카우스키의 말년 일기 (The Captain Is Out to Lunch and The Sailors Have Taken Over The Ship) / 모멘토 / 194쪽 / 2015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