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 대신 나의 부자지간에 집중하고 말았지만...
*2016년 8월 9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보름 전쯤 어머니의 몸에 (어쩌면 마음에) 문제가 발생했다. 어머니는 머리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하셨다. 가스렌지가 점화되는 순간의 타,타,타,타,타 하는 소리가 머리 안에서 들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소리가 잦아들라치면 어지럼증이 동반된다고 하셨다. 다니시는 병원에서 몇 가지 검사를 하였지만 물리적인 이상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 머리 안에서 들리는 소리를 두명이라 칭하며, 그것이 이명의 일종이라 설명하고 있는 한의원을 발견하여 그곳을 다녔다. 차도가 없었다.
『어머니는 나를 당신의 거울로 생각했지만, 거기에 비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거울을 탓했다. 서른 살 때, 종종 분노에 차서 쓰기는 했지만 거의 보내지는 않았던 편지 중 하나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엄마는 내가 일종의 거울이 되기를 바라셨죠. 엄마가 보고 싶은 자신의 이미지, 완벽하고 온전히 사랑받고 언제나 옳은 모습을 비춰 주는 그런 거울 말이에요. 하지만 나는 거울이 아니고, 엄마 눈에 결점으로 보이는 것들도 내 잘못은 아니잖아요. 엄마가 계속 그렇게 나한테서 기적을 바라는 한 나는 절대 그것에 맞출 수가 없어요.” ... 나의 첫 책을 한 부 갖다 드렸을 때도 어머니는 그동안 당신을 찾아오지 않았다며 야단을 쳤다. 늦은 시간이었고, 그런 시간에는 환영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이미 예상했던 터였다. 더 이른 시간에 찾아갔더라도 아마 함께 있는 동안 나의 행동에서 어떻게든 트집을 잡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책을 아예 안 드렸다면, 또 하나의 잘못이 목록에 추가되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pp.42~43)
리베카 솔닛의 산문은 알츠하이머로 많은 것을 잃게 된 엄마, 그리고 그 엄마의 집에서 날아온 살구 덕분에 시작되고 있다. 오랜 시간 불화하였던 저자와 저자의 엄마는 뭉뚱그려져 한 권의 이야기가 되었다. 마침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들락거리는 동안 이 책을 읽었다. 나는 아들이고, 아들들은 좀처럼 엄마와 불화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버지와는 불화하는 편이고, 어머니의 병증으로 인하여 나는 오래전 시작되었고 아직 끝났다고 할 수 없는 아버지와의 불화를 떠올리고 말았다.
“나의 침실 바닥을 차지했던 산더미 같은 살구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수께끼였고 초대였다.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했다. 살구를 처음 우리 집에 들이던 날, 그 살구 더미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어떤 일에 대한 상징이었다. 1년이 지나자 그 불안정한 과일 더미는 당시 내 삶을 보여 주는 듯했다. 잘 구분해야 할 삶, 달콤한 부분만 남기고 상한 부분은 도려내야 할 삶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이 살구가 일종의 권유였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우리 집에 도착하면서 시작된 그 이야기를 하라는 권유 말이다. 마치 어머니의 선물처럼, 혹은 어머니의 나무가 남긴 선물처럼, 그 살구 더미는 그 시기의 혼란을 하나의 이야기 비슷한 것으로 만들어 내는 촉매제가 되었다. 덕분에 나는 이야기를 만들고 바꾸어 가는 일을 꼼꼼히 살피고, 그 사이사이에 침묵을 배치할 수 있었다...” (p.350)
나의 아버지는 성실하고 엄격하고 권위적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자식들은 무서워하였고 피하였다. 아버지와 자식들은 직접 대면하는 대신 어머니를 가운데 두고 소통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나의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와 자식들 사이에서 많은 고초를 당하였다. 어머니의 병증을 들은 다음, 의사들은 하나같이 불안 증세가 있는지를 먼저 물었다. 어머니의 병이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암시하였고, 나와 형제들은 그것을 아버지 탓이라고 여겼다.
『마침내 전쟁은 끝났다. 어머니는 자신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던 이야기를 잊어버렸고, 그 이야기가 사라지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내가 30대일 때 어머니와의 관계는 최악이었고, 나는 다시는 어머니를 보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관계의 후반기에 접어든 지금, 알츠하이머병이라는 새로운 길을 한참 달려온 지금, 어머니는 나를 보면 눈을 반짝인다. 나는 남동생에게 비꼬듯이 “우리가 꼭 가족인 것 같네.”라고 말했다. 단순히 어머니가 함께 있기에 조금은 편한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어머니는 스스로에 대해서도 더 편안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사람들이 영적인 훈련을 통해 얻으려고 애쓰는 상태, 즉 과거와 미래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온통 현재에만 집중하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성스러운 노력이 아니라 치명적인 질병의 일부로 찾게 된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 상태에 이르렀다.“ (p.328)
한동안 입원을 했고 큰 차도가 없었지만 지금 엄마는 퇴원했다. 엄마가 입원해 계신 동안 아버지는 매일 저녁 그곳에 들렀고, 엄마는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의 마음은 결혼 이후 내내 아버지의 기분에 연동되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동갑인 두 분이 일흔 여섯이 된 지금도 그렇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대신 자식들에게 마음 편히 기대시라고 엄마에게 말하였지만 쉽지 않음을 안다. 아버지가 좋은 기분으로 엄마와 많은 대화를 나누면 좋겠다. 엄마가 틈틈이 병증을 완화시키기 위한 운동을 하시는 동안 두 분은 원치 않아도 그리 하시게 될 것이다.
“가끔 멋진 일이 생기고 난 직후에 삶을 되돌아보면, 인생에서 운이 좋았던 일들이 산맥으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끔찍한 일이 생긴 후에 되돌아보면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다. 현재가 과거를 재배치하는 것이다. 삶 하나는 이야기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완성된 이야기를 전하기란 절대 불가능하다. 삶은 온갖 사연으로 가득한 은하수 같은 것이고 우리는 지금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그때그때 몇 개의 성운을 고를 수 있을 뿐이다.” (p.359)
이런 이유로 책을 읽는 동안 깊숙이 집중하지 못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읽어도 좋겠다, 라고 여기고 있다. 살구로 시작해서 살구로 끝나지만 그 사이사이에 무수한 이야기와 말들이 있다. (나는 가끔 책에서 골라낸 문장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어쩌면) 초라한 모녀 관계를 너무도 풍성한 사유 안에서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아마도) 초라한 나와 아버지 사이를 떠올리며 그것들을 읽었다.
리베카 솔닛 Rebecca Solnit / 김현우 역 / 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The Faraway Nearby) / 반비 / 380쪽 / 2016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