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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노 디아스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

달라도 너무 달라 초현실주의적으로 느껴지는 도미니카노의 연애담이랄까...

by 우주에부는바람

제목 그대로이다. 단편집에 실린 소설들은 어떻게 그들이 그녀들을 잃었는지를 다룬다. 소설들에서 나 혹은 너는 유니오르이고, 유니오르의 형인 라파, 그리고 두 아들의 엄마인 비르타, 이들의 아버지였던 라몬이 가족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연작인 소설들이 어떤 일정한 흐름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야말로 그들이 그녀들을 어떻게 해서 잃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데만 집중하고 있을 따름이다.


읽다보면 연애의 스타일이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달라서 초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하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작가의 장편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이 생각난다. 그런데 왜 작가의 첫 번째 책이자 단편집인 《드라운》은 읽다 말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자신할 수 있는 것은, 책을 읽고 나면 도미니카 출신 남자들에 대해서는 아주 확실한 편견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해와 달과 별들」

“그때 나는 끝났다는 걸 알았다. 처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때가 바로 끝이다.” (p.43) 나는 마그다를 사랑하고 그녀와 오랜 시간 아주 잘 지내왔다. 하지만 나와 바람을 피운 카산드라가 마그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모든 것이 망가졌다. 이미 카산드라와는 끝난 지 한참 뒤였으니 더욱 억울하다. 나는 관계를 회복시키려 애를 쓰고, 그 일환으로 도미니카로 (나는 도미니카 출신의 이민자이다) 여행을 가지만 헛수고이다.


「닐다」

나의 형 라파의 여친인 닐다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부터 한 동네 친구였던 닐다는 어느 날 가슴이 커지고 엉덩이도 커지고 집과 학교를 들락날락 하다가 어느 순간 라파의 여자가 되어서, 라파와 내가 함께 쓰는 방에서 수시로 라파와 섹스를 한다. 하지만 형은 한 여자에게 안착하는 타입이 아니고, 게다가 암에 걸렸다. 닐다와 형은 헤어졌고, 형은 죽었고, 나는 형만큼이나 막 나가는 시절을 보내고, 어느 날 우연히 닐다와 마주친다. 그리고 나와 닐다는 두 사람이 만났던 어떤 날을 떠올린다. “우리가 만났던 날 기억해? 그녀가 묻는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린다... 넌 야구를 하고 싶어했어... 여름이었지, 내가 마한다. 넌 탱크톱을 입고 있었고... 내가 너네 팀에 들어가려면 웃옷을 하나 입어야 한다고 했어. 기억나? ... 기억나, 내가 말한다.” (p.65)


「알마」

알마는 나의 여자친구이다. 하지만 락스미라는 여자애랑 잔 이야기를 내 일기장에서 읽게 된 이후 나는 그녀를 잃게 된다. “고개를 숙이고 남자답게 받아들이는 대신에 너는 일기장을 집어들지, 아기가 똥 싼 지저구를 집듯이, 방금 싼 콘돔을 두 손가락으로 집듯이. 너는 문제의 문단들을 흘깃 넘겨다보는 거야. 그리고는 그녀를 건너다보고 네 가식적인 낯짝이 죽는 날까지 기억하게 될 미소를 짓는 거야. 베이비, 너는 말하지, 베이비, 이건 내 소설의 일부야.” (p.74)


「오트라비다, 오트라베스 (다른 생을, 다시 한번)」

라몬은 직장 상사였다. 도미니카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나는 (소설집에서 유일하게 유니오르가 아닌 다른 이가 나로 등장한다. 소설은 내가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 미국에 먼저 와 있던 나의 아버지 라몬에 대한 이야기이다) 라몬과 관계를 맺고 있다. 라몬은 자신의 아내와 헤어질 것처럼 말하지만 그의 아내에게서는 편지가 온다. 라몬은 드디어 결심을 하고, 두 사람이 살 집을 구한다. 그의 아내에게서는 편지가 오지 않는다. 나는 임신을 한다. 하지만 그의 옛집에서 새로운 두 사람의 보금자리로 아내의 편지가 전달된다. 나는 그날 밤 라몬에게 편지를 건넨다.


「플라카」

“우리는 지도 가게 반대편에 주차하고 서점으로 들어가. 대학이 가까운데도 손님은 우리뿐이야. 우리와 다리가 셋인 고양이. 넌 복도에 자리잡고 앉아서 상자들을 뒤적이기 시작하지. 고양이가 냉큼 네게 다가가. 나는 역사책들을 뒤적이고.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서 나만큼이나 오랫동안 서점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야...” (p.119) 그러나 이런 플라카와도 나는 헤어진다.


「푸라 원칙」

나의 형 라파는 죽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런 라파는 푸라와 만나는 중이다. 마미는 이런 푸라를 못마땅해한다. 그런 마미가 못마땅하여 라파는 집을 떠나 푸라에게로 간다. 형은 가끔 와서 마미의 돈을 집어간다. 마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형은 그 사이 죽는다. 푸라는 형이 자신에게 빌린 돈이 있다고 한다. 마미는 그런 푸라에게 돈을 준다. 실린 소설들 중 가장 슬프다. 가장 슬픈 장면은 죽어가는 형과 내가 나눈 이런 대화였다. “... 내가 자기 모나크를 운전하는 동안 라파는 뒷좌석에 널브러져 있었다. 나 지금 죽어가는 거 같아, 그가 말했다... 죽어가는 거 아니거든? 하지만 진짜 골로 갈 거면 이 차는 나한테 줘라, 알았지? ... 내 애마는 아무한테도 안 줘. 이 안에 탄 채로 묻힐 거야... 이 똥차에? ... 넵. 내 티브이하고 권투 글러브도... 뭐 파라오냐? ... 그는 허공에 엄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넌 노예니까 트렁크에 묻혀라.” (pp.138~139)


「겨울」

나와 라파, 그리고 마미는 이제 막 미국에 도착한 참이다. 그리고 겨울이다. 도미니카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날씨다. 세 사람은 아파트에 갇힌 채 겨울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세상과의 통로는 아버지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마미는 이것을 참을 수 없다. 어느 날 마미는 집을 박차고 엄청난 눈이 내린 바깥으로 나선다. 나와 형이 따라 나선다.


「미스 로라」

형이 죽고 일 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슬프다. 엉망진창인 나는 앞집에 살고 있는, 미스 로라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미스 로라는 나를 원했고, 나는 거기에 응하였다. 매일매일 그녀를 찾아간다. 미스 로라는 내가 다니는 학교 선생님이 된다. 나는 미스 로라가 아닌 또래의 여자애들을 사귀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그녀는 나를 도우려고 하였고, 나는 대학을 졸업했다. 나의 졸업식에서 미스 로라를 본 것이 마지막이다. “나중에, 너와 무헤론(아주 매력적인 여자)이 헤어진 뒤에 너는 그녀의 이름을 컴퓨터에 입력해보지만 그녀는 뜨지 않는다. 한번은 도미니카에 내려갔을 때 너는 라베가로 차를 몰고 가 그쪽에서 이름을 대고 물어본다. 사진도 보여본다, 사립탐정처럼. 너와 둘이 찍은 사진이다. 둘이서 한번 해변에, 샌디 후크에 갔을 때다. 둘 다 미소를 짓고 있다. 둘 다 눈을 감았다.” (p.230)


「바람둥이의 사랑 지침서」

내가 바람을 피우는 걸 여자가 알게 된다. 그녀는 내 약혼자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육 년이라는 기간에 걸쳐 오십여 명의 여인과의 사이에 있었던 일이, 그 여자들과 주고받은 이메일이, 고스란히 그녀의 수중에 들어갔다. 두 사람은 헤어졌고, 나는 뉴욕을 떠나 보스턴에 있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로 하고, 그리로 이사했다. 일 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용서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고, ‘그녀는 용서하지 않는다’. 헤어지고 이 년이 지났고 나는 몸이 불었고 옛 여인들과의 관계를 모조리 끊었다. 결별 삼 년 차가 되었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외로울 때마다 달리기를 하다 족저근막염에 걸렸고 요가를 하다 추간판이 파열된다. 그 사이 몇몇 여자와 만난다. 그 중 학부 법대생도 있었지만 그녀도 결국 떠난다. 사 년 차가 되었다. 옛 여인들에게서 청첩장이 날아온다. 법대생인 여자 애가 임신을 했다며 찾아온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떠난다. 그 사이 친구 앨비스는 도미니카에 자신의 아이가 있다며 나를 여행에 동참시킨다. 하지만 그 아이는 앨비스의 아이가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 오 년 차가 되었다. 나는 잊고 싶어서, 불운을 쫓고 싶어서 아파트를 새로 얻는다. 법대생으로부터 청첩장이 날아온다. 그리고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도대체 헤어진 여인을 잊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공식은 여러 가지다. 사귄 햇수 곱하기 일 년. 사귄 햇수 곱하기 이 년. 그냥 의지력 문제다. 끝났다고 네가 결정하는 날 끝나는 거지. 절대 잊히지 않아.” (p.280)



주노 디아스 Junot Díaz / 권상미 역 /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 (This is How You Lose Her) / 문학동네 / 295쪽 / 201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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