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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 《피에로들의 집》

구어체가 현실이라면 그만 문어체로 적혀진 것만 같은 어떤 유사 가족 체험

by 우주에부는바람

나는 ‘서른여섯 살의 전직 연극배우이자 극작가’이다. 아니 그랬었다, 라고 말하는 것이 낫겠다. 엉뚱한 벗는 연극을 하나 만든 이후로 나는 이제 술이나 마시면서 세월을 흘려 보내는 중이다. 당시에 만나고 있던 여인 난희가 갑자기 사라진 다음부터 지금까지 쭉 그래왔다. 그러던 나는 어느 날 영화를 보러 갔다가 나이든 할머니로부터 이상한 제의를 받고, 그 마마라고 불리우는 할머니가 주인으로 있는 아몬드나무 하우스라는 빌라의 한 켠에 머물게 된다.


“... 갈증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가습기의 물이 줄어들 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온몸의 기력이 피처럼 빠져나갔다.” (p.14)


이것이 소설의 시작이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면서 아무런 희망도 갖지 못한 채 살아가는 젊은 내게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가 손을 뻗은 것이다. 그렇게 모든 기력이 사라져가던 나는 아몬두나무 하우스에 입주를 한 이후 조금씩 기력을 회복해간다. 아몬드나무 하우스의 일층에 마련된 북카페에서 차를 팔고 술을 팔고,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이미 입주해 있던 사람들과도 관계를 확장시켜간다.


주인 할머니를 이모라고 부르는 방송작가인 김현주, 그리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박현정, 입영을 앞두고 있는 윤태, 아직 고등학생인 정민까지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함께 살아가는 인물들은 다들 사연을 간직하고 있고, 내가 그 사연을 조금씩 알아가고 조금씩 그들의 현재에 개입하는 것이 소설의 줄거리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거주한 방이 그 전에 이곳에 살다가 자살한 스물여섯 상희의 방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까지를 포함해서 말이다.


가족 아닌 사람들보다 못한 가족 관계라는 것이 횡행하는 리얼한 현재에 비하여, 소설 속 아몬드나무 하우스의 인물들은 가족들보다 나은 의사 가족의 범주에 속한다. 그들은 리얼한 현실 속의 관계들로부터 배제된 편에 속하며, 그 과정에서 하나 같이 흔치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이런 사연들이 있기에 더더욱 서로를 향한 거리감을 좁힐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 나는 그녀가 내게 남긴 것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그녀를 통해 전 시대를 살아온 한 사람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고, 그 삶의 마지막 일부를 공유하기도 했다. 또한 그녀의 인생에 어둡게 도사리고 있던 회한과 분노와 광기 따위의 해묵은 감정들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중 어떤 것들은 내가 받아들이거나 미처 감당하기 힘든 것이어서 오랫동안 마음에 짐으로 남을 것 같았다. 어쩌면 그게 마마가 남긴 유산인지도 몰랐다.” (p.243)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의 사연은, 음, 추레한 리얼리티로 보인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나는 주변 인물들로부터 문어체로 말한다고 욕을 먹기 일쑤인데, 소설 속의 사연들에서 나는 이 문어체를 떠올리고 만다. 현실 속 구어체로 말하는 인물들 사이에서 문어체로 말하는 인물이 조금은 붕 떠오르고 말듯이, (소설 속 의사 가족의 리얼리티를 통해) 현실 속 가족에 대해 말하겠다는 작가의 의지는 그만 허공으로 떠오르고 만다.


이와 함께 소설의 마지막 부분 아몬드나무 하우스의 마마와 조카인 김현주의 출생의 비밀이 튀어나오는 과정에서 전개되는 현대사에 대한 설명 또한 소설의 전체 흐름에 제대로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느닷없기도 하거니와 별다른 장치 없이 구구절절 설명으로 이어지는 것도 그렇다. 아몬드하우스 나무의 그 사람들이 하나의 가족으로 엮여 서로를 보듬으며 앞으로도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은 알겠지만, 소설을 읽는 재미는 글쎄...



윤대녕 / 피에로들의 집 / 문학동네 / 249쪽 / 20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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