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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0. 2024

길리언 플린 〈나는 언제나 옳다〉

반전과 반전의 힘겨루기와도 같은...

  영화 〈나를 찾아줘〉를 신촌의 메가박스 아니면 상암동 CGV에서 보았다. 신촌의 메가박스였던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비가 내리고 있어 주차장의 차까지 가는 동안 비를 피하지 못했다. 모래내 고가도로를 지나 성산로로 접어들었을 때 그 비가 절정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기억은 아니었고, 영화는 생각만큼은 아니었지만 충격적이었고, 영화의 감독은 데이비드 핀처였고, 그 원작 작가가 길리언 플린이다.


  “... 슬프다는 건 대개 시간이 남아돈다는 뜻이다. 진짜다. 내가 자격증 있는 상담사는 아니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슬프다는 건 대체로 시간이 너무 많다는 뜻이다.” (p.21)


  〈나는 언제나 옳다〉는 길리언 플린의 단편 소설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데 큰 자질을 가지고 있는 작가답게 이 작은 단편 소설 안에서도 몇 번의 반전을 제공한다. 영화(적인 이야기 방식)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르겠으나 현대 소설에서 이야기를 잘 만든다는 것은 깜짝 놀라게 만드는 반전이 제공되느냐의 여부와 직결된다. 특히나 그런 면에서 길리언 플린은 이야기꾼이라고 부를만 하다.


  “동생을 겁에 질리게 하고 새엄마를 위협하는 아이. 내가 죽을 거라고 담담하게 말해주던 아이. 가족이 기르는 반려동물의 꼬리를 자른 아이. 거주자들을 공격하고 조종하는 집. 이미 네 사람의 죽음을 모고도 누군가 더 죽기를 원하는 집...” (p.64)


  소설은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 다니며 구걸을 했고 자라서는 손으로 남자들의 수음을 도와주는 일을 하였던 내가 이제는 가짜 심령술사로 자신의 역할을 확장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자신에게 점을 보러왔던 수전 버크를 따라 그녀의 으스스한 집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그녀의 의붓 아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의 삶은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수전이 그냥 이렇게 말한 거죠. 분위기를 잡고. 수전은 아줌마가 귀신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아줌마가 우리 집에 와서 보고 믿기를 원했죠. 수전은 다른 사람들 엿 먹이는 걸 좋아해요. 아줌마가 자기랑 친구가 되고, 자기를 염려해주길 바랐어요. 그러다가, 쾅! 아줌마가 죽는 건 본인이라는 걸 깨닫고, 또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일에 겁먹었다는 걸 깨닫고 충격을 받는 순간이 오길 기다렸죠. 아줌마의 ‘오감’이 아줌마를 속인 거예요.” (p.72)


  나는 그리 길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이미 여러 변곡점을 갖고 있다. 나는 이름도 생소한 병에 걸린 어린 소녀의 역할을 하였고, 남성의 배설을 도와야 하는 유사 성매매 여성이 되어야 했고, 심리적인 순발력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운명에 한 마디를 보태는 심령술사에 이르렀다. 나는 뻔한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이의 삶에 뻔한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었고 꽤나 먹힌다고 자부하였다.


  “사람들 마음을 끄는 아이였다. 물론 소시오패스 같은 느낌이 없지 않지만, 정말 호감이 가는 타입이었다. 나는 아이가 마음에 들었다. 이 똘똘한 아이와 함께, 세상 사람들이 책에서나 말하던 그곳으로 가고 있었다... 내가 실제로 사기를 당했든 아니든, 나는 사기를 당하지 않았다고 믿기로 선택했다.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속여서 수많은 일을 믿도록 했던 나다. 그런 나에게도 이번 일은 그야말로 생애 최고의 업적이 될 참이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합리적이라고 나 스스로 믿도록 만드는 것! 옳진 않더라도 나름 합리적인 일 아닌가.” (pp.86~87)


  하지만 그러한 자부심이 나를 오히려 곤혼스러운 상황으로 몰아 넣었다. 나는 수전 버크를 조종하고 이용할 목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상황으로 몰린다. 나와 수전 버크, 수전 버크와 수전 버크의 의붓 아들인 마일즈, 그러다가 마일즈와 나로 바뀌는 이 복잡한 상관 관계의 반전이 곧 이 단편 소설을 이끄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소설 자체이기도 하다. 반전과 반전의 힘겨루기와도 같은, 오묘한...



길리언 플린 Gillian Flynn / 김희숙 역 / 나는 언제나 옳다 (The Grownup) / 푸른숲 / 95쪽 / 2015, 202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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