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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0. 2024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콩고의 판도라》

다양한 층위에 촘촘한 개연성으로 확보되는 끊임없는 반전...

  “하들링턴 씨, 좋은 작가는 고전 작가들이 열어놓은 여백을 걷더군요. 오로지 자신만의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또한 모방하고 싶은 책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그의 작품과 전혀 다른 작품에만 관심을 갖고요... 좋은 작가는 자신의 창작 세계에서 목표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런 책만큼은 절대 쓰지 않겠다는 목표 말입니다.” (p.485)


  소설이 막바지로 치닫는 어느 때에 토머스 톰슨은 같은 신문사에서 일하는 상사에게 위와 같이 말한다. 토머스 톰슨은 소설의 화자이면서 어쩌면 이야기를 채집하고 이야기에 속고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작가 자신과 꽤나 겹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렇게 《콩고의 판도라》는 모험 소설의 외피를 띠고 있으며 동시에 그것을 화르륵 불태워 벗어버리는 소설이기도 하다. 


  “콩고에서 어느 누구도 그렇게 기이한 언어는 들은 적이 없었다. 마치 입안에 돌을 가득 넣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무미건조하면서도 담담한, 열정 아닌 열정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었다. 딴에는 상대와 소통을 꾀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p.132) 


  그런가하면 작가는 문화인류학자이기도 한데, 바로 그러한 점이 그의 소설에서 신통하게 작용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지하로부터 지상으로 나오는 인간 아닌 존재들을 표현할 때 작가의 묘사 능력은 극대화된다. 인간과 비교가 되면서 동시에 인간을 벗어나고, 그렇다고 동물에 가까워서도 안 되지만 때때로 동물은 연상하게 되는 묘사가 이어진다. 소설을 읽는 동안 끊임없이 독자들은 이들 이질적인 존재들의 이미지화 작업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


  “암감은 고통과 맞서 싸우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내부에서 끄집어낸 고통을 마치 살아 있는 실체처럼 대하고 생판 모르는 남을 대하듯 그렇게 지켜보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고통을 이해하는 방식이 남들과 달랐다. 그것이 그녀만의 비밀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마커스는 그녀가 광산의 야영지에 있는 어느 누구보다도 훨씬 뛰어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p.187)


  특히나 그러한 이미지화의 작업은 암감에 이르러 극대화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성화되어 있는 지하 존재인 암감은 소설 이야기 속의 또 다른 화자인 마커스 가비와 사랑으로 연결되는 존재이면서도 소설 전체의 화자인 토머스 톰슨의 가슴 속에 사랑의 씨앗을 뿌리는 존재이기도 하다. 괴물화되어 있는 인간으로 등장하지만 결국은 인간 이상의 감정을 드러냄으로써 문화적인 충격을 준다.


  “우리 할아버지는 허튼 소리를 하지 않는 분입니다. 백인들은 항상 똑같다더군요. 처음에는 선교사들이 와서 지옥을 운운하며 공갈을 칩니다. 다음에는 상인들이 와서 모든 걸 훔쳐 가고, 그다음에는 군인들이 옵니다. 다들 나쁜 놈들인데, 나중에 오는 놈들이 앞서 왔던 놈들보다 더 잔인하다는 겁니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에요. 처음에는 텍톤이 왔지요. 그자는 우리에게 그들의 신을 믿도록 강요했어요. 그러더니 이번에는 장사치들이 왔고요. 자, 이제는 머잖아 군인들이 몰려올 텐데, 전 군인들이 오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요.” (p.225)


  또한 작가는 전작 《차가운 피부》에서와 마찬가지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섞어 버리는 데에서 특기를 발휘한다. 어쩌면 그 지점에서 묘한 쾌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상의 인간과 지하의 존재들 사이 뿐만 아니라 하인인 마커스 가비와 주인인 크레이버 형제, 마커스 가비와 흑인 페페, 심지어는 토머스 톰슨과 상사인 하들링턴을 비롯해 모든 관계들은 애초의 설정이 전복되고 만다.


  “... 이 책은 어느 사건을 분명히 깨닫게 해주었다. 마커스 가비가 겪었던 지하 세계의 심오함은 예술적 경지에 이르러 조화를 이루었고, 두 차례나 있었던 지하 세계를 향한 그의 고행은 숭고한 목적에서 비롯됐다. 이 책을 통해서 한 사람은 영국 문학을 한 단계 끌어올렸고, 다른 한 사람은 인류를 구원했다. 독자들은 묻고 싶을 것이다. ‘우리가 독서가 가장 정당한 세상을 만드는 데 공헌한 것이 아닌가?’하고. 만일 결백한 자가 형벌을 받게 된다면 이 사회에서 우리의 결백 또한 함께 죽는 것이다. 우리는 그 불행만큼은 피해야 할 것이다.” (p.454)


  소설을 읽는 동안 작가의 전채성에 내내 탐복하게 된다. 소설의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층위에도 불구하고 그 구조가 탄탄하기 이를 데 없다. 괴물과 인간, 이야기의 내부자와 외부자 등등을 연결하는 데 있어 탁월한 개연성이 활약하고 있다. 이러한 개연성 덕분에 소설의 어느 순간 폭발하는 반전이 더욱 힘을 발휘하게 된다.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은 소설을 읽었다.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Albert Sánchez Piñol / 정창 역 / 콩고의 판도라 (Pandora al Congo) / 들녘 / 536쪽 / 2009, 201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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