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에 걸친 즉흥으로 거듭되는 예술의 돌아오지 않는 어떤 운명...
‘1650년 봄, 생트 콜롱브 부인이 죽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유명한 비올(viole, 비올라 다 감바 viola da gamba를 그렇게 부른다. 다리 사이에 놓고 연주하는 비올라가 바로비올이다.) 연주가인 생트 콜롱브는 아내가 죽고 난 후 (그 이전에도 그러했겠지만) 더더욱 세상과 담을 쌓는다. 자신의 두 딸, 그리고 몇몇 지인을 제외하고는 만나지 않는다. 왕의 부름도 거절하고, 작은 단위의 연주회를 아주 간혹 열 따름이다.
“그는 사람들이 묘사하는 것만큼 그렇게 차가운 사람은 아니었다. 감정 표현에 서툴렀을 뿐이다... 용모를 보자면, 그는 키가 크고, 가시처럼 바싹 마르고, 피부는 마르멜로 열매처럼 노르스름하고 까칠했다. 등을 늘 꼿꼿하게 세우고 있었고, 시선은 늘 어딘가를 응시했으며, 양 입술은 꽉 다물고 있었다...” (p.13)
소설 속 생트 콜롱브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죽은 아내, 남겨진 두 딸, 그리고 음악만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들 중 다시 그의 주의를 더 끄는 것을 꼽자면 죽은 아내와 음악이고, 다시 한 번 체로 거른다면 음악만이 남게 될까. 이 셋은 그러나 경쟁적인 것은 아니다. 죽은 아내를 위하여 작곡한 음악을 연주할 때면 아내가 나타나기도 하고, 그는 두 딸과 함께 연주를 하기도 한다.
“그는 악보를 참조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손은 악기 지판을 자유자재로 옮겨 다녔고, 그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음이 서서히 올라갈 때, 문 옆에 매우 창백한 여인이 나타났다. 그의 연주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아무말 없이 입가에 미소를 띠고 그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더니 그를 보며 활짝 웃었다. 그녀는 생트 콜롱브 씨의 악보대를 조용히 돌았다. 그리고 탁자와 작은 포도주 병 바로 옆 구석에 있던 궤짝 위에 앉아 그의 연주를 들었다.” (p.35~36)
하지만 어느 날 그저 음악을 해야 하겠기에 음악을 할 뿐인 이 칩거하는 장인에게 열 일곱 살의 마랭 마레가 나타난다. 마랭 마레는 그를 스승으로 삼고자 하고, 스승은 그의 재주를 거두지만 결국 제자는 떠난다. 궁중의 악사가 된 제자를 스승은 견딜 수 없다. 그리고 스승의 딸 마들렌은 그 제자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이 제자는 떠난다. 스승으로부터도 마들렌으로부터도...
“... 나는 작곡을 하지 않네. 난 절대 악보를 쓰지 않아. 내가 가끔 하나의 이름과 기쁨을 추억하며 지내는 것은 물, 물풀, 쑥, 살아 있는 작은 송충이 같은 헌물일세... 활을 켤 때 내가 찢는 것은 살아 있는 내 작은 심장 조각이네. 내가 하는 건 어떤 공휴일도 없이 그저 내 할 일을 하는 거네. 그렇게 내 운명을 완성하는 거지.” (p.75)
세월이 흐르고, 제자는 궁중의 악사로 승승장구하지만 스승의 연주를 잊지 못한다. 마레와 헤어진 마들렌은 홀로 늙어갔다. 그리고 어느 날 마레의 연주를 구한다. 그가 자신에게 들려주었던 ‘꿈꾸는 소녀’라는 곡을 듣기를 청한다. 마들렌의 청에 따라 마랭 마레와 스승 생트 콜롱브가 곡을 연주한다. 그리고 얼마 후 마들렌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두 사람의 연주를 들은 후이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 (p.112)
소설 속 생트 콜롱브는 쉽사리 연주하지 않는다. 속세의 성공을 거둔 후에도, 아니 그럴수록 마랭 마레는 그런 스승의 연주를 더욱 갈구한다. 3년 동안 생트 콜롱브의 오두막에 몰래 숨어든다. 그리고 스스로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견한 생트 콜롱브는 마랭 마레를 불러 들여 자신의 연주를 들려준다. 아니 두 사람은 함께 연주한다. 제자는 그제야 다시 오지 않을 것이 분명한 세상의 아침을 닮은 음악을 접한다, 스승 또한 마찬가지이다.
파스칼 키냐르 Pascal Quignard / 류재화 역 / 세상의 모든 아침 (Tous Les Matins du Monde) / 문학과지성사 / 2013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