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지 않은 소설이 폭풍처럼 지나갈 때 우리가 발견하게 될 '바람의 안쪽'
소설을 읽고 있자니 두 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샐리 포터 감독의 영화 <올란도>(1993)와 워쇼스키 형제(아니 이제는 남매를 거쳐 자매)의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2012)였다. 시공간이나 성별에 구애 받지 않고, 그렇게 억압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또 동시에 너무도 편안하게 (하지만 받아들이는 이들로서는 불편하지 않기가 힘이 드는) 영혼의 이합집산이 기능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을 영화와 비슷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인간이 누군가의 자식이듯이, 모두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죽음이다. 누군가의 삶이 너의 안에서 존재를 얻어 구현되며 반복되듯이 네 속에서 누군가의 죽음이 환생하여 다시 구현된다. 그 얘기는 물려받은 이번 생과 물려받은 나그네의 이번 죽음이 제2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네 안에서 이루는 결혼과 같은 것일 수 있다는 뜻이다......” (p.98)
동시에 보르헤스나 마르께스 그리고 특히나 이탈로 칼비노의 자작 시리즈가 떠올랐다. 소설 속에서 참수의 위협을 느끼는 레안드로스와 이탈로 칼비노의 몸이 반쪽으로 잘리는 주인공이 살짝살짝 겹쳐졌다. 참수는 (레안드로스와 헤라의) 두 부분으로 나뉜 소설을 관통하는데, 특히 소설의 헤라 편 마지막 부분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참수의 상황(어찌나 목이 잘 잘리는지 죽은 이는 삼일 째가 되어서야 자신의 목이 잘린 사실을 알아차리고 비명을 지르게 되는, 우리에게는 몸뚱이의 살점이 모두 발려진 채로 눈을 꿈벅거리는 생선 머리로 익숙한....)은 이미 레안드로스 편 초반부에 읽은 바 있음에도 소름이 끼친다.
“... 그는 레안드로스에게 입을 크게 벌리라고 말하더니 갑자기 그의 입에 침을 뱉었고, 이어 그 자신의 입을 크게 벌렸다. 레안드로스가 예언자의 입에 다시 침을 뱉어 되돌려주자 예언자는 레안드로스의 양쪽 뺨에 침을 뱉고 그 침을 넓게 펴 바른 뒤, 면도를 시작했다... 댁도 알다시피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점쟁이가 있소. 바로 비싸거나 싼 부류죠. 하지만 전자는 좋고 후자는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말길 바라오. 그건 중요한 게 아니오. 비싼 점쟁이들은 빨리 알아야 하는 눈앞의 비밀을 다루고 싼 점쟁이들은 천천히 다가오는 먼 미래의 비밀을 다루오. 그것이 그들의 차이라오. 가령 나 같은 경우는 싼 점쟁이요... 하지만 이들 두 부류의 예언가와 예언이 서로 아무 관련이 없다거나 서로 모순된다고 생각해선 아니 되오. 그 둘은 사실상 똑같은 하나의 예언이라오. 그것은 바깥쪽과 안쪽을 가진 바람에 비유될 수 있소. 바람의 안쪽이란 비를 뚫고 바람이 불 때 비에 젖지 않고 마른 상태로 있는 부분을 가리키는 것이오. 그런 식으로 대개의 점술가는 바람의 바깥쪽만 보지만 또 다른 어떤 점술가는 안쪽만을 보는 것이라오...” (pp.19~20)
환상적 리얼리즘을 연상시키는 특출난 특이함의 상황들은 그 외에도 여러 번 등장한다. 그때마다 이 발칸 반도 풍(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묘사에 깜짝 놀라게 되고는 한다. (‘말들이 그의 이름을 세 가지 언어로 힝힝거리며 울 정도로 영향력이 큰 사람‘과 같은 묘사는 유머러스하기까지...) 바람의 안쪽’이라는 제목에 대한 묘사 또한 그 유니크함이 황홀하다. 바람의 안쪽, 이라니, 바람의 안쪽과 바깥쪽을 나누어 생각할 작정을 할 수도 있다니 싶은 것이다. 그렇게 길지 않은 소설은 폭풍처럼 지나가는데, 독자인 우리는 그 안의 젖지 않고 지금까지 유지되는 어떤 땅을 발견하게 된다.
“강에는 일종의 ‘물의 글씨’ 같은 것이 있다. 모든 물은 그 물만의 필체를 갖고 있다. 강은 어떤 글자를 써놓곤 하며, 아주 높이 나는 새들만 볼 수 있는 메시지를 남긴다...” (pp.53~54)
사실 소설의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에는 큰 의미가 없다. (책을 사고 한참 동안 읽지 않고 있던 나는 책의 뒷날개에 적힌 위와 같은 문장을 보고 읽기로 결심했다)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를 기점으로 하여 흑해 연안과 터키 등지의 넓은 영역을 오가고, 18세기에서 20세기로 건너뛰는 주인공들의 행로는 한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저 그와 그녀는 자신에게 닥친 운명 혹은 예언을 가볍지 않게 받아들이고, 두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은 예언자이거나 예언의 상황을 수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 우리들의 앞뒤에 있는 모든 것들이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된단다. 예를 들어 너는 마음과 영혼의 차이를 알고 있느냐? 우리가 내면의 눈을 마음에 맞추면 우리는 바로 그 순간의 영혼을 보게 된단다. 우리의 영혼을 통하여 볼 때는 지금이 아니라 수천 년 전의 그것을 보게 된단다. 그 때문에 무엇인가를 응시하는 우리의 시선이 영혼에 도달한 뒤 그것을 관찰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영혼의 빛이 내면의 눈에 도달하여 그것을 환하게 비추는 데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단다. 하지만 때로 바로 그것이 오래전에 사라진 영혼을 볼 수 있는 방법이란다. 그것이 영혼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아울러 그것이 죽음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란 것은 너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죽음은 정확히 인간의 삶과 똑같은 시간 동안 지속되며 심지어 훨씬 더 길지도 모른다. 죽음은 인간의 삶보다 훨씬 더 어렵고 오래 지속되는 복잡한 사건이나 일이며 또 수고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너의 죽음은 너의 삶보다 두 배는 더 오래 계속될 수도 있단다......” (pp.89~90)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를 중심으로 예전에는 터키, 오스트리아, 러시아, 알바니아, 보스니아 등의 나라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거쳐, 현재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 코소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같은 나라로 나뉘어 있는 발칸 반도의 한 켠에서 레안드로스와 그의 친구 디오미데스, 그리고 그가 만난 여인 데스피나라는 과거 그리고 헤로와 그녀의 남동생 마나시아 부크르, 그리고 코발라 중위로 이어지는 현재는 소설을 모두 읽은 지금까지도 일종의 난맥상이다. 그럼에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인간의 논리적 수읽기로는 이길 수 없을 것만 같은 알고리즘, 알파고의 등장에 기가 꺾인 오늘이라서 더욱 그렇다. 어쨌든 우리에게는 영혼이 있나니, 바람의 안쪽이 있나니...
밀로라드 파비치 Milorad Pavic / 김동원 역 / 바람의 안쪽 (Jasmina Mihajovic) / 이리 / 223쪽 / 2016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