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희한하고 어두운 이야기가 날렵하게 소각되며...
오래 전 부모님이 대전에서 서울로 이사를 하였다. 짐을 정리할 때 서울에 살던 내가 내려가 돕게 되었다. 아버지는 잡동사니가 들어 있는 박스를 공터에 들고 나가 태울 것과 남길 것을 나누는 중이었다. 어린 시절 나의 통지표며 생활기록부며 상장 그리고 사진 앨범들이 박스 안에서 나왔다. 이거 어떻게 할래? 아버지가 물으셨고 나는 필요 없다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다른 버려질 짐들과 함께 나의 통지표며 생활기록부며 상장들 그리고 사진 앨범들을 태우기 시작하였다. 나는 이미 대답하였지만 일순 망설였고 아버지도 불에 넣기 전 멈칫하였던 것도 같다.
“진짜 허파에 바람 드는 병이 있단 말이야? ... 해미가 물었다... 키가 크고 마른 젊은 남자애들이 걸리는 병이라는데, 유전적인 경우도 있대... 지창씨는 사뭇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네 할아버지도 고생 꽤나 했잖아.” (P.10)
내 통지표에 기록된 성적은 나쁘지 않았고 상장도 꽤 여러 장이었다. 그 날 그 장면은 그러니까 나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의 소각, 이라는 의미가 연출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내 허파에 들어 있던 바람이 태워지는 광경의 목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장면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우연이었는지 얼마 후 나는 길었던 백수 생활을 청산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일이라는 것을 하면서 생활하고 있는 중이다.
“죽음은 당연하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안 된다. 여러 명의 의지가 하나의 죽음을 이끌어낸다. 누군가의 의지와 누군가의 동의와 누군가의 묵인.” (p.64)
소설 《소각의 여왕》을 읽으면서 오래 전 장면이 떠올랐다. 고백하자면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소설의 제목을 ‘소설의 이유’라고 여겼다. 실은 소설의 제목이 아니라 소설을 쓴 소설가의 이름이 이유였고, 내 마음대로 그것을 뒤섞은 탓이리라. 그러면서 동시에 왜 그때 아버지는 나의 과거를 소각하기로 하였을까 (물론 나의 필요 없다는 대답이 도화선이 되었지만, 그것을 태워도 좋을 무엇으로 여긴 것은 아버지였다.) 자못 궁금해진 것이다.
“... 해미가 하는 일은 시체에서 나오는 분비물과 냄새만 없애는 게 아니었다. 무너진 사람들의 잔해를 치우는 일이기도 했다. 지창씨는 무너질 것 같으면서 무너지지 않았다. 그를 그렇게까지 만드는 게 바람 때문이라면, 그것은 정말 무서운 바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174)
소설 속 해미와 아버지인 지창씨 사이에도 이처럼 알 듯 모를 듯 한 장면이 여럿 있기도 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속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겉돌기 일쑤다. 짐작하거나 내색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당시의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것과 비슷하기도 하다. 그렇게 소설은 내게 잘 모르겠는 ‘소각의 이유’인 채로 쭈욱 읽혔다고나 할까.
“안 보이길래 그냥 가버린 줄 알았어... 해미가 말했다. 그는 테이블에 앉아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해미가 포터를 끌고 카페에 갔을 때 그는 없었다. 해미는 전화를 걸었다. 하군은 어디에도 가지 않고 카페에서 그녀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군은 해미에게 지금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해미는 텅 빈 카페 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모르겠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p.114)
고물상인 아버지와 죽은 이의 유품을 정리하는 딸, 버려진 가전제품에서 순도 백프로의 원재료를 뽑아내는 기계를 만들어내려는 아버지와 죽은 이의 방에서 죽은 이의 냄새를 완벽히 없애는 딸... 어디에든 있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이면서 동시에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아버지와 딸의 관계... 제법 희한하고 어두운 이야기를 날렵하게 쓴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날 나는 나의 과거가 완전히 소각 될 때까지 아버지 곁을 묵묵히 지켰다.
이유 / 소각의 여왕 / 문학동네 / 234쪽 / 2015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