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사리 걷히지 않는 참척의 고통, 그 너머 죽음을 향하여 열리는...
*2016년 2월 2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자는 김경욱이다. 2000년에 접어든 이후 꾸준히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에 이름을 올렸던 작가가 드디어 대상 수상자가 되었다. 초기 소설집에서 커트 코베인이나 장국영 등 영화배우의 이름을 소설의 제목으로 차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소설 내부에서도 영화적 상상력을 차분히 발휘하였던 작품을 발표하고는 하였다. 작가는 영화라는 매체와의 교차점에 대한 탐구를 버렸지만 여전히 꾸준하게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김경욱 「천국의 문」
“사람들은 왜 기를 쓰고 먼지를 닦아낼까요? 먼지는 우리가 결국 먼지로 돌아간다는 진실을 환기하기 때문이죠. 먼지에서 먼지로, 빛에서 빛으로 사실 별이란 우주먼지 덩어리죠. 별과 사람은 구성 성분이 같다는 거 알아요? 우리가 어둠을 두려워하는 것은 빛으로 돌아간다는 진실을 일깨우기 때문이에요. 어둠을 두려워할 때 우리가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빛인 셈이죠.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p.20) 이상문학상 수상작으로는 그 무게감이 좀 떨어지지 않나 싶지만, 이즈음 우리 소설의 무게감이라는 것이 갖는 평균점을 생각해보자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요양원에 있는 아버지를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딸의 시점으로 그려진 소설은 죽음에 대한, 혹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읽힌다.
김경욱 「양들의 역사」
김경욱이 수상작과 함께 실은 자선 대표작이다. 이렇게 치이고 저렇게 치이고, 내부로부터 그리고 외부로부터 치이는 우리가 겪은 그 이렇고 저런 사건사고들이 조심스럽게 다뤄지고 있다. 그 조심스러움은 한국인이지만 일본인 행세를 하는 주인공인 택시 손님이라는 설정으로 조심스럽게 소설에 안착되어 있다.
김이설 「빈집」
“소파에 앉아 둘러본 새 아파트는, 흡사 인테리어 잡지책에서 막 오려낸 사진처럼 말끔하고 정갈해 보였다. 수정은 그 순간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행복해서가 아니라,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낀다면 바로 이 순간에 느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완벽한 그림이 아닐까? 다른 여자들도 이런 순간이면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수정은 슬며시 눈을 감았다.” (p.126) 새 아파트에 입주한 젊은 주부, 아직 아이를 갖기 전인 삼십대 중반의 여성이 갖게 되는 심리를 그려냈다. 우리 내부에 있는 흔하디 흔한 욕망과 그 욕망의 허위성에 대해 지극히 일반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김탁환 「앵두의 시간」
책에 실린 다른 소설들이 거의 정확히 단편 소설의 분량인데 반하여 김탁환의 소설은 중편 분량이다. 어린 시절 병을 앓은 이후 시골에서 앵두 나무를 키우며 지내는 외삼촌, 치숙은 쓰는 인간이고 읽는 인간이고 보는 인간이다. 소설은 그러한 외삼촌과 연을 맺고 지내는 나의 이야기이다. “헛돌고 있지 않아? 네가 조선시대에 밝은 건 대학원에서 조선 후기 소설을 전공했기 때문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주객을 바꾸지 마. 조선시대를 쓰려고 소설가가 된 게 아니잖아? 물론 인간에 대한 고민을 푸는 장으로 과거의 어느 시기를 고를 순 있겠지. 조선시대도 좋고 고려시대도 좋고 삼국시대든 고조선이든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그 역은 곤란해. 조선시대가 그렇게 중요했다면 소설이 아니라 연구를 했어야지. 문헌을 뒤지고 논문을 썼다면 그래도 몇 걸음 정돈 학계에 기여를 했을 거야.” (p.196) 치숙 癡淑, 의 의미를 뒤지다 채만식의 소설 《痴叔》을 알게 되었다. 부정적인 것으로 보이는 아저씨를 통하여 나를 비판하고 있다는 소설 《痴叔》 과 <앵두의 시간> 속 癡淑 을 슬쩍 겹쳐놓아보고 싶어졌다.
윤이형 「이웃의 선한 사람」
“... 저는 제 머리 뒤쪽의 미래를 이미 알고 있어요. 총알의 방향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알죠. 그래서 상상할 필요가 없어요. 몸의 방향을 바꿔야겠다는 생각도 안 들어요. 거기서 방향을 바꾼다면 사람이 어떻게 되겠어요? 이미 봐서 아는 일들만 계속, 계속, 계속 다시 봐야 한다면 결국 정신을 놔버리지 않겠습니까?” (p.243) 나의 딸을 구해준 남자, 이웃집의 선한 사람은 미래를 볼 수 있는 자이다. 그는 나의 딸과 스치고 나서 나의 딸의 미래를 보았고 바로 그 장소에서 나의 딸을 구했을 뿐이다. 소설에 실린 몇 편의 소설에서 세월호 사건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 이 소설에도 그 그림자가 살짝 겹쳐지고 있다.
정찬 「등불」
<이웃의 선한 사람>이 세월호의 그림자가 살짝 드리운 소설이라면 <등불>은 보다 명확하게 그 그림자와 겹쳐 놓은 소설이다. (컨테이너에서 합숙을 하던 유치원생들이 화재로 사망한) 씨랜드 사건에서 어린 딸을 잃은 남자, 시간이 흘러 화물 트럭을 모는 그 남자가 들른 밥집, 아기를 키우며 지내는 여자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는다. 남자와 함께 트럭을 탔던 그 여자와 그 여자의 아기는 그 배에 타기는 한 것일까... 등불, 보이지 않는 이 절망의 시대...
황정은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어린 아들을 사고로 잃은 부부, 그들은 지금 유럽을 여행 중이다. 자식을 앞세운 참척의 고통, 이라는 측면에서는 이 소설 또한 세월호를 떠오르도록 만든다. 숲으로 떠난 여행, 그리고 갑작스러운 사고 이후 야유회에 사용될 물건들, 그렇게 아이를 들쳐 업고 뛰어내려온 이후 다시 들르지 않은 그곳, 유적처럼 남아 있을지 모를 물건들에 대한 이미지가 꽤 깊숙이 새겨진다. 이러한 잃음들은 이들의 여행까지 따라온 것만 같다. 그렇게 이 부부는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서로를 잃어버리고 있다.
김경욱, 김이설, 김탁환, 윤이형, 정찬, 황정은 / 천국의 문 : 2016 제40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 문학사상 / 324쪽 / 2016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