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또다른 그때 그 시절을 후일담으로 들여다보게 되
*2015년 12월 22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80년대 말에 대학에 들어갔다. 문학회에 가입하였는데 당시 대부분 대학의 문학회에서는 사회과학 학습이 진행되었다. (물론 시도 쓰고 소설도 썼다) 사회과학 학습은 운동권을 재생산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었다. 책을 읽고 모여 토론하고 매일 정문 앞에서 또는 길거리에서 보도블록을 깨고 화염병을 만들고 돌을 던지고 화염병을 던지고 다시 모여 토론하고 책을 읽었다.
“... 기억은 버릴 수 없는 것이니까. 사진처럼 편리하게 구겨버리거나 도려낼 수도 없다. 기억은 스스로 사라진다. 파괴는 불가능하고 분실이 최선이다. 왜 잊으려고 애쓰는가?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잊었음을 깨닫는가? 되찾을 때가 왔기 때문이다. 기억의 종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 우스개와 같다...” (p.9)
기억에 남는 일은 많기도 하고 동시에 그것이 여태 남겨 놓았어야야 할 기억인가 싶기도 하다. 당시는 한총련이 생기기 이전 전대협의 시절이었다. (협의회는 연맹보다 그 연대의 점도가 낮은 표현이리라 생각되지만 과연 그런지 모르겠다.) NL과 PD가 본격적으로 다투는 시절이었다. (과거 CA 나 그 이후 ND 와 같은 소수 정파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선배들이 NL과 PD로 나뉘면서 그중 한 쪽을 따라야 하는 일이 생기고는 하였다. (학습 커리큘럼이 분화되었다. 학생운동사를 다루는 책 또한 양쪽 진영에서 따로 나왔다. 사회과학서를 출판하는 출판사들 자체가 NL과 PD로 나뉘었다)
“... NL, 전학협, 연대회의, 세 정파의 합동 술자리가 열리고 있었다. 그들 사이의 작고 보잘것없는 전선보다 훨씬 크고 심각한 전선이 발 앞에 그어졌기에, 잠시 모두가 전우가 되었다...” (p.171)
서로 다른 정파에 속한 남녀가 연애를 하기도 하였다. (소설에서는 진우와 수리가 그렇다. 지금 생각해보면 로미오와 줄리엣이 따로 없다.) 나는 NL에 가까웠고 당시 연인이었던 지금의 아내는 PD에 가까웠다. 우리는 간혹 치열하게 다투고는 했다. 그러한 사상적 대립을 제외한다면 우리는 그다지 싸울 일이 없었다. NL과 PD가 뒤섞인 채 동아리연합회 차원의 농활을 가기도 하였다. 다음날 새벽부터 농사일을 해야 했지만 어떤 사안의 결론이 나지 않으면 헤어질 수 없었다. 새벽까지 백자나 청자 담배를 피우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대화하였다. 졸음으로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고 언성이 높아지는 순간 잠시 정신을 차렸다. 어쨌든 쪽잠 후에 우리는 다시 논밭으로 나갔고 농활을 끝냈다.
“규범과 인간 사이의 간극. 우리는 많은 것을 규정했다. 너무나도, 너무나도 많은 것을 규정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는 우리가 규정하는 것들만큼 간단했던 적이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는가?” (p.421)
소설 《디 마이너스》는 내가 학교를 떠난 후, 그러니까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까지의 대학 내 운동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전히 후배들은 선배에게 이끌려 운동권에 투신하고, 또 성장하여 선배가 된다. NL과 PD 중 PD가 분화하여, 운동권은 NL과 전학협과 연대회의가 다투는 중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매일 같이 돌을 던지고 화염병을 던지던 우리들과는 달리, 단 한 번의 화염병 투척으로도 모든 것이 뒤바뀔 수 있다는 현실이다.
“전쟁이란 결국 보병과 보병의 싸움이다. 전쟁의 무수한 가능성 중에 실현될 수 없는 단 한 가지 양상이 있다면, 그것은 증오가 없는 전쟁이다. 그런 싸움은 전쟁이 아니라 스포츠다.” (p.437)
노태우에서 군사 정권은 막을 내렸고, 김영삼을 거쳐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었지만 소설 속 태의, 진우, 미쥬, 수리, 대석 형 그리고 문 경사들은 여전히 싸우는 중이다. 생각해보니 80년대의 운동권을 다룬 90년대의 후일담 소설, 후일담 소설은 그것으로 끝이 난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나보다. 해소되지 않은 모순들이 여전하니, 그 모순에 대해 공부하고 나름의 해결책으로 움직이는 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 우리가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선호하는 것들이 아름다워졌다. 하지만 이 논리에는 구멍이 있다. 우리가 왜 무언가를 선호하게 되었는지를 다시 설명해야 한다. 그냥 이렇게 반대로 말하는 쪽이 훨씬 편하다... 아름다움이 너무 드물기에 우리는 그것을 좇는다. 아름다움은 우리를 대번에 홀린다. 세상에 거의 없는 것이기에...” (p.500)
내일 모레 대학 시절의 그 선배들과 송년회를 하기로 하였다. 간혹 만나지만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를 우리는 하지 않는다. 아니 그때 그 시절의 이런저런 일탈의 기억들을 끄집어내기는 하지만 무브먼트의 행위들에 대해서는 잘 거론하지 않는다. 현재의 이런저런 난맥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는 하지만, 그것과 우리의 무브먼트를 연결짓지는 않는다. 사실 우리는 일상으로 흡수되어버린 지 오래이다. 스펀지처럼 선배들의 이야기를 흡수하였던 그때 그 시절만큼이나 철저하게...
손아람 / 디 마이너스 / 자음과모음 / 526쪽 / 2014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