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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프니 듀 모리에 《자메이카 여인숙》

황야의 한 가운데에서 고딕풍으로 선전하는 미스터리...

by 우주에부는바람

예전에 나는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를 읽으면서, 토마스 하디의 《테스》가 떠오른다고 했다. 그리고 대프니 듀 모리에의 《자메이카 여인숙》을 읽으면서는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를 떠올렸다. 현재의 것을 읽으며 과거의 것을 떠올리고, 과거의 것을 읽으며 현재를 떠올린 것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이 연상 작용에는 고딕풍의 풍광들 그리고 강한 내면의 캐릭터로 구축되어 있는 여자 주인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알겠어요. 저는 원래 호기심이 별로 없어요. 남 얘기 같은 건 해본 적도 없고요. 이모부가 여관에서 뭘 하든, 또 누구하고 지내든 저와는 상관없어요. 저는 집에서 맡은 일을 할 거고 이모부께서 못마땅하게 여길 일은 결코 없을 거예요. 하지만 이모부가 페이션스 이모에게 조금이라도 나쁜 짓을 한다면 그 즉시 자메이카 여인숙을 나가겠어요. 치안판사를 찾아 여기 데리고 와서 법대로 처리할 거예요. 그럼 그때 저를 끝장나도록 혼내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p.37)


주인공인 메리 옐런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나고 자란 고장 헬퍼드를 떠나 이모가 있는 보드민, 그 곳에서도 황야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자메이카 여인숙에 방금 도착하였다. 하지만 그녀가 본 풍경, 그리고 그녀가 만난 이모와 이모부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주변에는 민가도 없는 그곳에 홀로 위치한 (지금으로 치자면 아주 허름한 고속도료 휴게소와도 같은) 여인숙도 그렇거니와 그녀가 알고 있던 생기 있던 이모와는 거리가 너무 먼, 백지 상태와도 같은 이모 그리고 그러한 이모 뿐만 아니라 이제 막 처음 마주친 자신에게까지 위협을 가하는 2미터에 가까운 거구의 이모부까지 모든 것이 절망적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힘을 내고 그곳에서의 생활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 그녀는 계속 앨터넌의 기묘한 프랜시스 데비 목사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자 문득 그가 자기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녀 자신은 하룻저녁에 자신의 인생 전부를 얘기했는데 말이다...” (p.161)


그런 그녀에게 최초로 힘이 되어 준 것은, 이모부의 뒤를 밟다가 길을 잃고 위험에 처한 그녀를 구해준 프랜시스 데비 목사이다. 백색증의 알비노인 목사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지만 그녀는 이 목사에게서 유일한 위안을 얻는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험한 일에 연루되어 있는 이모부 조스 멀린, 그리고 그와 함께 나쁜 행각을 일삼고 있는 일군의 사람들과는 그 외모부터 확연히 다른 목사에게만큼은 그녀도 무엇이든 말할 수 있다. 조스 멀린의 동생이지만 조스와는 어딘지 다른 구석이 있는 젬 멀린이 이성적인 존재로 그녀에게 각인된다면, 목사는 그녀에게 태생적으로 부족한 부성을 간직한 존재로서 다가온다.


“... 메리는 이제 더 이상 이모부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두렵지 않았다. 이제 그에 관한 한 증오와 혐오의 감정만 남아 있었다. 그는 인간의 자격을 잃어버렸다. 한낱 야행성 야수에 불과하니까. 그녀는 그 취한 모습을 보고, 그의 정체를 알았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가 무섭지 않았다. 그들 일당 전체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p.197)


군데군데 미스터리를 간직한 채 소설은 서서히 속도를 올린다. 해변가에 불을 피우고, 사람들을 실은 선박이 난파되도록 유인하고, 그렇게 부서진 배에서 떠밀려온 사람들의 물건을 훔치는 현장에 대한 이모부의 취중 묘사를 듣게 된 이후, 그리고 그 현장을 직접 목격하게 된 이후, 그녀는 자메이카 여인숙의 어두운 비밀을 폭로하기로 작정한다. 하지만 그 순간 소설은 또 다른 반전의 항로를 향하여 뱃전을 돌린다.


“... 내가 당신 이모부에게 일거수일투족 모든 행동을 지시했으며, 당신 이모부는 그저 허울만 두목이었다는 걸 알고 있지요. 나는 밤에 여기 앉아서 거기 당신 의자에 앉은 당신 이모부와 함께 우리 앞 식탁에 콘월의 지도를 펼치고 보았죠. 온 마을이 두려워하는 조스 멀린은 내가 이야기할 때 모자를 손으로 돌리면서 앞머리를 만지작거렸죠. 게임하는 아이처럼 당신 이모부는 내 지시를 받지 못하면 무력한 존재였죠. 그는 좌우를 분간 못 할 정도로 거만하고도 불쌍한 깡패였어요...” (p.399)


서스펜스 소설 혹은 미스터리 소설의 특징은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좀처럼 책을 손에서 놓게 되지 않는다는 것, 소설은 그러한 장르의 장점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스토리의 날렵함이 바닷가와 멀지 않은, 황야와 돌로 이루어진 산으로 주변을 이루고 있는, 낡은 자메이카 여인숙을 향한 작가의 꼼꼼하여 섬세하기 그지없는 묘사와 어우러지며 스타일리시한 소설이 되었다.



대프니 듀 모리에 Daphne du Maurier / 자메이카 여인숙 (Jamaica Inn) / 현대문학 / 450쪽 / 2014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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