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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 《네메시스》

선한 인간이 갖는 죄책감의 무게는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이 좋을지...

by 우주에부는바람

*2015년 11월 1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내 몸에 문제가 생긴 것은 오년 전쯤이었다. 여러 가지 검사와 치료 과정을 거치면서 병명을 알게 되었고 그 병으로 인하여 생기는 증상을 완화시키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필립 로스의 소설 (그의 마지막 소설이라고 한다, 그는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하고, 이 소설 이후 더 이상 발표되지 않았다.) 《네메시스》에 등장하는 폴리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소아마비라고 부르는 그 병에 비한다면 경미한 병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는 1940년대 중반, 미국의 한 지방을 무대로 하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인 캔터 선생은 시력이 나빠 전쟁에 참가하지 못한 채 지금은 체육 선생님으로 지역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유대인으로 혈기왕성한 이십 대의 청년이다. 자신을 낳으면서 어머님이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도둑놈이지만 외조부모의 사랑 속에서 반듯하게 자랄 수 있었다. 지금은 홀로 남은 외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고, 사랑하는 여인이 있고 그 가족으로부터도 사랑을 받고 있다.


“... 그는 삶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우리 모두가 환경의 힘 앞에 이렇게 무력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여기 어디에 하느님이 개입하고 있단 말인가? 하느님은 왜 한 사람은 손에 라이플을 쥐여 나치가 점령한 유럽에 내려보내고 다른 사람은 손에 라이플을 쥐여나치가 점령한 유럽에 내려보내고 다른 사람은 인디언 힐 식당 로지에서 마카로니와 치즈가 담긴 접시 앞에 앉아 있게 하는가? 하느님은 왜 위퀘이크의 한 아이는 여름 동안 폴리오에 시달리는 뉴어크에 놓아두고 다른 아이는 포코노 산맥의 멋진 피난처에 데려다놓는가? 이전에는 부지런하게 열심히 일하는 것에서 자신의 모든 문제의 해법을 찾았던 사람에게는 지금 일어나는 일이 왜 지금처럼 일어나고 있는가 하고 물었을 때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았다.” (pp.156~157)


하지만 그가 돌보고 있는 아이들 중 몇몇이 폴리오에 걸리면서 이 반듯한 청년 캔터 선생은 점차 힘들어하기 시작한다. 그는 종교적인, 신의 섭리에 대해서까지 의심하고 번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힘겨움은 그가 애인의 제안을 받아들여, 폴리오에 침범당한 놀이터가 있는 유대인 지역 위퀘이크를 떠나, 애인이 교사로 있는 포코노 산맥의 인디언 힐 캠프로 떠나며 보다 심화된다. 하지만 그곳에까지 환자가 생기고, 캔터 선생 자신도 병인을 가지고 있었음이 밝혀지고,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 너는 늘 이런 식이었어. 너는 뭘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보지를 못해. 한 번도! 너는 늘 네 책임이 아닌 것까지 책임을 지려고 해. 끔찍한 하느님이 책임을 지거나 끔찍한 버키 캔터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는데 사실 책임은 둘 중 누구에게도 있지 않아...” (pp.260~261)


아무것도 밝혀진 것은 없지만 캔터 선생은 스스로를 병을 확산시킨 주범으로 몰아간다. 그는 자신이 돌보아야 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병이 퍼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그 지방으로부터 도망을 친 것이라고 스스로를 몰아가고, 산속 캠프에까지 병을 끌어들였다고 단정 짓는다. 결국 자기 자신이 소아마비로 인해 몸의 한 쪽이 마비된 이후에는 결혼을 약속하였던 여인의 간곡한 만류에도 스스로를 모두들로부터 격리시켜 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그는 사람들, 자신을 사랑하던 여인과 그의 가족, 자신을 영웅으로 생각하였던 아이들로부터 사라져버린다.


“... 그는 대체로 재미가 없는 사람이었으며, 의사 표현은 정확했지만 재치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평생 풍자나 아이러니가 섞인 말은 해본 적도 없었고 우스개나 농담을 던지지도 않았다 - 대신 가혹한 의무감에 시달리면서도 정신의 힘은 거의 타고나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 시간이 갈수록 그의 불행을 강화하고 치명적으로 확대하는 이야기에 아주 심각한 의미를 부여해 큰 대가를 치렀다... 버키 같은 사람의 죄책감은 남이 보기에는 터무니없지만, 사실 불가피한 것이다... 그는 절대 자신의 한계를 믿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체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엄격한 선善을 천성적으로 짊어지고 있어, 자신에게 어떤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반드시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불구인 남편을 얻는 것을 막는 대서 가장 큰 승리감을 맛보며, 그녀를 포기함으로써 자신의 가장 깊은 욕망을 부인하는 것은 영웅적 행동이 된다.” (pp.274~275)


소설을 모두 읽었지만 사실 전달하고자 하는 어떤 메시지를 캐치하는 것이 어렵다. 세계대전, 폴리오라는 전염성 질병, 유대인 혹은 유대인 지역이라는 특이성, 인간의 운명과 신의 섭리라는 종교적 반목, 행복과 불행의 자기 결정성 등등 무수한 이슈들을 끌어낼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그것들을 하나로 꿰어내는 것은 포기하고 말았다. 그저 내가 가지고 있는 사소한 병과 그 병증으로 인해 드문드문 등장하는 신체적 그리고 심리적인 피로감을 종종 떠올리며 읽었다.



필립 로스 Philip Roth / 정영목 역 / 네메시스 (Nemesis) / 문학동네 / 286쪽 / 201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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