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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막장 드라마를 가족 성장 소설로 풀어내는 일본 사소설의 한 방식...

by 우주에부는바람

소설에서는 1960년 가을에서 2006년 늦가을까지, 야나기시마 일가의 일원들이 스물 세 개로 이루어진 각 챕터에 나뉘어져 각자 주인공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할아버지인 다케지로와 러시아인인 할머니 기누를 필두로 하여 이 부부의 두 딸인 기쿠노와 유리, 아들인 기리노스케가 그 아래에 위치한다. 이중 맏딸인 기쿠노만 도요히코와 결혼하였고, 이들에게는 큰 딸 노조미, 큰 아들인 고이치, 둘째 딸인 리쿠코, 막내 아들인 우즈키를 두었다.


“... ‘하는 짓은 불량스러워 보이지만 성품은 결코 불량하지 않다’라는 것이 기쿠노에 대한 기시베의 평이다. ‘여하튼 유례없는 인물’이라고도 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놀라거나 감탄하는 일투성이였단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연인이 아니라 친구’가 되었으며, 그녀는 친구인 기시베의 아이를 가졌다.” (p.64)


커다란 정원을 포함한 서양식 저택에서 살고 있는 삼대의 이야기는 그러나 그렇게 가족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기쿠노는 결혼에 앞서 이 저택을 칠 년 정도 떠나 있었다. 그리고 기쿠노는 함께 일하던 유부남 기시베의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집으로 돌아왔고, 어린 시절부터의 정혼남이라고 할 수 있는 도요히코와 결혼하였다. 그리고 첫째 딸인 노조미를 낳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함께 하면서 고이치와 라쿠코를 낳았다. 하지만 막내 아들 우즈키는 두 사람 사이에서가 아니라 도요히코가 사랑에 빠졌던 여인 아사미 씨와의 사이에서 낳았다. 하지만 이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기쿠노의 여동생인 유리는 육 개월 가량의 결혼 생활 끝에 다시 이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이 잠시 동안의 결혼 생활 동안 말을 잃었었다. 그녀는 이후 다시는 남자를 사귀지 않았다. 언니의 큰 아들인 고이치를 아주 좋아하였고, 피아노를 쳤으며, 정년이 될 때까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외아들이었던 기리노스케 또한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자신만의 특이한 스타일을 죽는 순간까지 고수하였고, 큰 누나의 아이들을 몰래 데리고 나가 (아이들은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모두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였다) 세상 구경 시켜주기를 서슴지 않았다.


“... 라이스에는 소금을! ... 이건 우리 세 사람에게만 통하는 표현으로 굳이 번역하자면 ‘자유 만세!’다. 공기에 든 흰쌀밥은 그대로도 맛있어 보이는데 접시에 담긴 밥에는 왜 그런지 소금을 치고 싶어진다. 우리 셋 다 그렇다. 하지만 예의 없어 보이고 소금을 과잉 섭취하게 된다는 이유로 어릴 적에는 할 수 없었다. 따라서 ‘성인이 되어 다행이다, 자유 만세’라는 의미다.” (p.290~291)


제목에 들어 있는 ‘라이스에는 소금을’ 이라는 말의 의미도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는 세 남매의 대화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어쩌면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이라는 제목은 이 대가족이 서로를 껴안고 있는 상태에서 성인이 되어 가는 과정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어찌 보면 참으로 난감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얼토당토 하지 않은 난맥상을 보이는 가족이지만, 그래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기도 하다.


“우리는 셋이 손을 잡고 걸었다. 기시베 씨를 가운데 두고. 오르막길인 데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치하루 언니는 이따금씩 반걸음 앞서 나가 몸을 내밀어 나를 보았다. 잘 있는지 확인하는 듯이.” (p.242)


특히나 위와 같은 표현이 종종 나오니 철학적인 고민 대신 스르르 풀린 마음으로 이 가족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내용만으로 보자면 우리네 막장 드라마가 울고 갈 수준이겠으나, 과한 감정의 토로 대신 뭐 이런 것쯤이야, 하는 태도로 뭉친 가족들이 중심에 있으니 말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같은 것, 이제 그만 읽어야지 하면서도 또 이렇게 한 권 뚝딱 읽어버리는 것도 이런 허허실실의 태도가 마냥 싫지만은 않기 때문일테고...



에쿠니 가오리 / 신유희 역 /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抱擁,あるいはライスには鹽を) / 소담출판사 / 584쪽 / 201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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