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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황량함의 비현실성이 아름다움으로 화할 수 있다면...

by 우주에부는바람

배수아는 어느 날 몽골 소설가 갈잔 치낙의 《귀향》을 읽는다. 그리고 갈잔 치낙을 만나기로 작정하고, 그에 관하여 검색을 하던 중 그가 매년 소수의 유럽인들 중 소수의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땅인 몰골, 그 중에서도 알타이-투바, 로의 여행을 주선한다는 내용을 발견한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 여행에 동참하기로 마음먹고,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그 여행에 동참하게 된다. 그리고 이 여행기, 작가의 말에 의하면 ‘여행기라고 불리기에는 어떤 요소가 너무 부족하거나 혹은 너무 넘치게 될 것’인 이 글을 작성하였다.


“친애하는 친구에게, 이 엽서의 그림을 보면 아마도 짐작하겠지만, 나는 지금 몽골 울란바토르에 있답니다. 내일이면 나는 알타이로 떠납니다. 비행기를 타고 두 시간 이상 가야 하는 몽골의 서북쪽 국경 지대입니다. 그곳이 어떨지, 아직은 나도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요. 당신이 이 엽서를 받을 즈음이면 나는 전기도 전화도 주소도 없는 알타이 산맥 유목민 거주지에 있게 될 겁니다. 그곳에서 3주일 동안 보낼 거예요. 지난 몇 달 동안 당신이 내게 보여주신 배려와 친절은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서. 울란바토르, 몽골, 2009년 7월 14일.” (pp.41~42)


목적지인 알타이-투바 땅으로 들어가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인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작가는 자신의 수첩에 적혀 있는 여섯 명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쓴다. 그리고 곧이어 도착한 사람들, 일곱 명의 스위스인, 두 명의 오스트리아인, 한 명의 한국인, 열두 명의 독일인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알타이로,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투바 땅으로 향한다. 갈잔 치낙은 바로 그곳 투바의 부족장이기도 하다.


“... 이 투명한 곳은 어디란 말인가. 누가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는가. 누군가 거짓말을 하고 있어, 지금 투명한 내가 이곳에 있다고 말하는구나. 나는 지금 생애 최초로 나에게 주어진 객관의 세계가 아니라 나 자신의 상상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p.76)


간혹 텔레비전을 통하여 소개되던 아름답거나 황량한 풍경, 아니 그 황량함의 비현실성이 아름다움으로 화하는 묘한 풍경들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작가가 발을 디딘 투바 땅이 아마도 그런 지역일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책에 실린 몇 장의 사진만으로는, 혹은 나름 성의껏 설명되고 있는 묘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상상의 이미지이다. 구체화되지 않는 추상의 그 땅을 향한 독자의 시선은 그렇게 ‘투명한 곳’이라는 작가의 표현을 통하여 그대로 투과하고 만다.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 이외에는 거의 가지지 않은 유목민의 특징은 비교하지 않는 가난이었다. 나는 그것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예를 들자면 내가 처음 알타이로 가서 남몰래 큰 충격을 느꼈고, 충격을 느낀 사실이 스스로 한동안 매우 부끄러웠던 한 가지는, 구멍 뚫린 낡은 옷을 아무런 문제없이 입고 다니던 유목민들의 모습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그들에게 옷이란 예의나 외모의 치장,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자연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 (p.210)


그곳에서 만난 소수의 사람들과의 일화들이 크게 자극적이지 않아서 오히려 읽기에 좋다. 자신의 사적인 경험을 대서특필로 이어가는 여행의 이야기들을 닮지 않아서 그런 듯 하다. 책을 읽은 후 기억에 남는 것은 그곳에서 만난 그곳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그곳에서 만난 이곳의 사람, 그러니까 그 여행에 참가한 이방인 그룹의 일원들 중 몇몇이다. (혹은 여행 이후에 떠올린 몇몇 생각들이다, 라고 여긴다) 그중 한 명인 오스트리아에 사는 마리아이고, 작가는 그곳에서 돌아온 이후 빈에서 다시 마리아와 만난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마리아, 너는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 중 가장 열렬한 그리움의 열광자이다. 그리움만으로 너는 거의, 알타이에 있다.” (p.220)


빈에서 마리아와 만나 작가는 다시 알타이를 생각한다. 그리고 책의 첫머리에 작가는 2009년 이후, 2010년과 2011년에도 (마리아와 함께) 이 투어에 참가하였다고 적었다. (그러나 이 책에 실린 글들은 2009년의 첫 번째 여행 직후에 씌어진 것들이다) 그리고 작가는 2011년의 마지막 투어 이후 다시는 알타이로 가지 않으리라, 라고 다짐하였는데,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왠지 그 마음을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배수아 /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 난다 / 233쪽 / 201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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