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작은 재능들과 곧이어 고양되는 창의성들을 목도하기 바라며...
십여 년 전이던가, 어느 저녁 술자리에서 친구와 재능에 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대화는 친구가 자신의 재능 없음에 대한 한탄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리고 짧지만 길게도 느껴지는 (당시 우리 둘 사이에는 진지한 대화는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유지 중이었다) 대화 동안 나는 이런 요지의 말을 그 친구에게 하였다. 거칠게 간추리자면 재능에는 큰 재능과 작은 재능이 있는 것 같고, 큰 재능을 가진 사람이 드문 것은 사실이지만 작은 재능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라는 내용이었다.
“... 몰입하면 즐겁고 행복합니다. 강한 쾌감을 느끼는 거지요. 언제든 다시 하고 싶은 일이 됩니다. 반면 중독은 맹목적인 욕구나 습관의 노예 상태입니다. 하고 나서 후회하거나, 하고 싶지 않은데도 합니다. 통제가 되지 않는 거지요. 몰입하려면 노력이 필요합니다. 대상을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중독은 저절로 빠져듭니다. 헤어나오기 힘든 구렁텅이에 빠진 거지요.” (p.32)
그런가 하면 한 후배와의 대화도 떠올랐다. 이쪽에서 미대를 졸업하고 독일로 건너가 공부를 지속하였던 후배가 다시 돌아와 와우산 자락에 낸 작업실에서였다. 그녀와 예술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네가 하루에 정해진 몇 시간을 꼼짝하지 않고 앉아 (그러니까 작가는 엉덩이의 무게로 만들어진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그림만 그려낼 수 있다면 무언가가 되지 않겠냐고 후배를 힐난하였다. 그러자 후배는 이렇게 말하였다. 형, 그렇게 오랜 시간 꼼짝 않고 앉아 있을 수 있는 게 바로 재능이야.
“... 체제교육의 목적인 시스템이 잘 굴러가는 데 필요한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부모나 체제교육을 비난하자는 게 아니라 그 역할의 성격이 그렇다는 겁니다. 이런 환경은 체제유지를 위해 바람직한 행동의 표본을 끊임없이 제시하고 그러도록 부추깁니다. 그럼으로써 절대가치보다는 교환가치가 높은 일을 하는 데 더 관심을 가지게 만듭니다...” (p.41)
강창래의 책 《재능과 창의성이라는 유령을 찾아서》를 읽고 떠오른 두 가지 일화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주 흔하게 그리고 무람 없이 ‘재능’ 이나 ‘창의성’ 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 실체에 대해서는 오리무중인 것 또한 현실이니, 작가의 말마따나 ‘있지만 없는 것, 없지만 있는 게’ 유력한 유령에 ‘재능’과 ‘창의성’이 비유되는 것 또한 어색하지 않다. 작가는 그렇게 실체 없는 것에 나름의 실체를 부여하고자 애쓰고 있다. 유령을 포착하는 사진기와 같은 역할을 하고자 하였다.
“... 우리들 가운데 수많은 천재가 있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환경을 만나면 천재가 된다. 그러나 모험심이 약한 기질을 가진 천재들은 현실의 억압에 굴복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의 책임은 그런 천재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쉬운 환경을 만드는 데 있고, 그러면 두려움 없이 모험을 즐김으로써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낼 것이다. 그런 과정이 결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된다.” (p.141)
이 책은 강의가 끝난 후 나가려는 작가를 붙잡고 들러붙은 질문, “예술가가 되려면 재능이 꼭 필요한가요?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겁니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수강생과의 대화를 풀어 놓는 것으로 책은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게 책은 재능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되는 발견되지 못하고 발명되고마는 재능, 창의성의 기원, 개성, 창의성을 키우기 위한 방법으로 이어진다.
“... 연결, 공감, 추론, 예측, 상상력, 질문, 지식의 놀이가 독서라는 겁니다. 이 일곱 개의 키워드를 잘 들여다보세요. 여기에 ‘낙서하기’만 덧붙이면 창의성을 키우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p.211)
여러 방면의 지식을 탐구하고 이를 하나로 꿰어내는 능력을 지닌 작가의 글은 일단 쉽게 읽힌다. ‘재능’과 ‘창의성’에 관한 입문서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고, (작가가 원하는 대로) ‘재능’과 ‘창의성’에 고민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해설서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이와 함께 글과 함께 책에 실린 그림도 볼만하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는, 어쩌면 이 책의 시작을 알리는 질문의 당사자일 수도 있는, 주예지라는 학생의 그림이다.
강창래 / 재능과 창의성이라는 유령을 찾아서 / 알마 / 247쪽 / 2015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