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졌다고도 달라지지 않았다고도 할 수 없는 시간 동안...
대학 1학년 때이던가 2학년 때이던가 선배 한 명이 은근히 나를 꼬셨다. 도서관에 독일어판 자본론이 있는데 아직까지 아무도 그것을 빌려 보지 않았으니 네가 그것을 빌리면 아마도 우리 대학에서 첫 번째로 그 책을 빌린 인물로 이름이 기록될 거라는 유혹이었다. 물론 그것은 네가 자본론을 읽고 공부하였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것이기도 하니, 나름의 뒷감당을 해야 할 것이라는 사실도 함께 알려주었던가... 그 때는 정말이지 그렇고 그런 시절이었다. 나는 마르크스를 마르크스라고 부르지 못하여 카를이라고 부르든 시절, 엥겔스를 프리드리히로 레닌을 블라디미르로로 스탈린을 조셉으로 표기된 책을 읽어야 했던 시절, 그 시절이 87년 민주화대투쟁으로 끝이 난 바로 다음 해에 대학에 입학하였다.
“... 자신의 노동력을 떼어 팔기 싫다면 자기 소유의 생산수단을 가지면 된다. 그 점을 깨달은 나는 제빵 기술을 읽혀 내 가게를 열고, 생산수단인 믹서와 오븐 등의 기계를 갖추었다. 또 가급적 근처 농가에서 재료를 구입하여 불안정한 시장에 좌우되지 않고 재료를 구하는 방법을 실천했다. 그렇게 조금씩 희한한 빵집의 스타일을 완성해갔다...” (p.52)
‘생산수단’과 ‘생산력’과 같은 단어들이 책 속에 들어 있는, ‘자본론’이라는 단어가 버젓이 제목에 들어가 있는 책을 오랜만에 읽게 되었다. 나는 올해 3월 이사를 하면서 대학 시절 읽었던 다수의 사회과학서적들을 폐기처분하였다. 아내와 나는 비슷한 시기 함께 사회과학공부를 하였고, 그래서 같은 종류의 책들이 두 권씩 있었던 탓이기도 하고, 너무도 강경한 어투로 그러나 제 것이 아닌 목소리로 이미 죽어버린 이론들을 뱉어내는 과거의 책들이 버겁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이스트를 사용해 누구라도 쉽게 빵을 만들 수 있게 되면 빵 값이 싸지고 빵집 노동자는 싼 값에 혹사당하게 된다. 또 공방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은 단순해져서 빵집 노동자는 아무리 오랜 시간을 일해도 빵집 고유의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다... 그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엄선한 재료를 사용해 정성과 수고를 들여 빵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정당한 가격을 매겨야 한다. 제빵사는 본인의 기술을 살린 빵을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 (p.70)
어쩌면 그렇게 버린 책들을 대신하여 이제는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와 같은 책을 읽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사회가 품고 있는 여러 모순들은 사라지지 않았고 보다 정교화 되어가고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을 통하여, 그리고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통하여 예견되었던 자본주의의 마지막은 오지 않았다. 인민의 평균적 삶은 나아졌을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전지구적 부의 팽창과 비견한다면 상대적인 후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삶의 질이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돈이 바로 그 척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척도를 돈 아닌 것으로 바꾸었을 때도 우리의 삶이 양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좋아졌다고 단언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시간과 함께 모습을 바꾸고,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간다. ‘발효’와 ‘부패’를 통해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현상은 균의 작용에 의해 일어난다... 재료가 사람의 생명을 키우는 힘을 갖추고 있으면, 균은 빵이나 와인처럼 인간을 즐겁게 하는 음식으로 그것을 변화시킨다... 이것이 바로 발효 작용이다... 한편 생명을 키우는 힘이 없는 재료라면, 균은 그것을 안 먹는 게 좋다는 신호를 사람에게 보낸다. 말하자면 재료를 무참한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때는 사람이 먹으면 해가 되는데 ‘부패’ 작용이 바로 그것이다... 발효와 부패는 모두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이 균의 작용을 통해 자연 속으로 편입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스트처럼 인공적으로 배양된 균은 원래 부패해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물질마저도 억지로 일정 기간 썩지 않게 만들어버린다. 균은 균인데 자연의 섭리를 일탈한 ‘부패하지 않는’ 물질을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균인 것이다... 시간에 의한 변화의 섭리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돈이다. 돈은 시간이 지나도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영원히 ‘부패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부패는커녕 오히려 투자를 통해 얻는 이윤과 대금업을 통해 발생하는 이자로 인해 끝없이 불어나는 성질마저 있다... 바로 이 부패하지 않는 돈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았다는 내용이 내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내용의 절반을 차지한다.” (pp.79~80)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는 바로 현대자본주의에서 돈이 가지는 영원불멸의 성질을 콕 집어낸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돈은 빵을 만드는 인위적인 균이 그런 것처럼 부패를 막는다. 부패야말로 자연을 선순환 시키는 본질 중 하나이고, 우리 사회를 순환시키는 것이 돈이라면 돈 또한 부패라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마땅한데, 현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물론 자연과 인위적인 사회라는 것을 곧바로 등치시키는 것이 적당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가 포함된 사회 또한 자연이라는 거대한 테두리의 바깥에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사람들은 돈이라는 이름의 비료를 대량으로 투입해 경제를 뒤룩뒤룩 살찌게 한다. 내용물이야 어떻든 이윤만 늘면 된다. GDP(국내총생산)만 키우면 된다, 주가가 오르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 비만이라는 병에 걸린 경제는 거품을 낳고, 그 거품이 터지면 공황(대불황)이 찾아온다. 거품붕괴는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 살쪄서 비정상이 되어버린 경제가 균형을 되찾는 자정작용이다... 그런데 부패하지 않는 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공황도 거품붕괴도 허용하지 않는다. 적자 국채를 발행하는 등의 재정출동이나 제로금리정책과 양적완화 같은 금융정책을 통해 돈이라는 이름의 비료를 대량으로 살포하는 수법을 써서 한없이 경제를 살찌우려고만 한다... 인위적으로 동원한 균이 부패하지 않는 음식을 탄생시키는 것처럼 인위적으로 동원한 돈은 부패하지 않는 경제를 낳는다. 자연의 활동에서 크게 벗어난 부자연스러운 악순환이다.” (pp.147~148)
저자는 이처럼 부패하는 (여기서의 부패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부정적인 의미의 부패와는 확연히 다르다. 이미 말한 것처럼 자연의 자연스러운 한 순환 고리로서의 부패를 말한다는 점을 책을 읽는동안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돈 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자신의 빵집을 운용한다. 그래서 저자인 와타나베 이타루는 ‘발효’, ‘순환’, ‘이윤 남기지 않기’, ‘빵과 사람 키우기’라는 네 가지를 핵심으로 삼는다.
“... 인간은 지역의 부를 모아 그 지역을 넉넉하게 하는 자원이다. 경제활동이 낳은 부는 자원으로서의 인간이 가진 기능과 자연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빵집을 통해 실현시키고자 하는 이상적인 경제의 모습이다... 시골빵집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천연균과 자연재배를 만났고 다시 한 번 지역통화라는 발상이 자연의 섭리와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우리는 지역통화 같은 빵을 만들고 싶다... 만들어서 팔면 팔수록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부자가 도고 지역의 자연과 환경이 생태계의 풍요로움과 다양성을 되찾는 빵... 우리는 지역통화라는 발상을 빵집 나름의 모습으로 수정, 발전시켜서 이윤이 아니라 순환과 발효에 초점을 맞춘 부패하는 경제에 도전 중이다.” (pp.177~179)
그리고 여기에서 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균이 물질을 분해시키는 과정에서 어떤 것은 발효의 과정을 또 어떤 것은 부패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생명력이 강한 것은 발효로, 그렇지 못한 것은 부패로 진행되는 것이 바로 정상적인 자연상태의 균의 힘이다. 하지만 인위적인 균은 원래 부패해야 할 것의 부패를 가로막고 억지 생명력을 부여하게 되는데 바로 그것이 바로 지금의 돈의 상황이고, 경제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인위적인 균에 의한 잘못된 (생명력이 없는 것에 억지 생명력을 부여하는) 발효 대신 자연스러운 균의 활동에 의한 올바른 (생명력을 갖지 못한 것은 그 힘을 잃고 사라지도록 하는) 부패를 지향한다. 그리고 이처럼 올바른 부패를 도모하기 위하여 지역이라는 작은 사이클을 활용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매일 돈을 쓰는 법을 바꿔보는 것도 경제를 부패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부패하지 않는 돈도 쓰기에 따라서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돈에는 미래를 선택하는 투표권으로서의 힘이 있다. 몇 년에 한 번 있는 선거의 한 표보다 매일 쓰는 돈이 현실을 움직이는 데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믿을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정당하게 비싼 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윤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환경을 조성하고 흙을 만드는 사람에게 돈을 쓰는 방법이다... 돈을 쓰는 방식이야말로 사회를 만든다... 자리가 잡히고 균이 자라면 먹거리는 발효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소상인과 장인이 크면 경제도 발효할 것이다. 사람과 균과 작물의 생명이 넉넉하게 자라고 잠재능력이 충분히 발휘되는 경제. 그것이 시골빵집이 새롭게 구워낸 자본론이다. 빵을 굽는 시골 변방에서 일어나는 조용한 혁명의 태동을 오늘도 느끼는 중이다.” (p.232)
사실 책을 읽고 나서 (어쩌면 작은 지역 경제 활동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동네 까페의 사장인 선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자가 말하는 지역통화라는 것이 갖는 허상에 대해, 이러한 저자의 개념이 전지구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경제 시스템에 어떤 균열을 내는 것이 가능하겠느냐 하는 허무감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급기야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지금까지 열심히 조장하고 고착화시킨 인간의 욕망이 이러한 저자의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을 불가능하도록 할 것이라는 비관과 그러함에도 이러한 책이 잘 팔리고 또 지식인 오피니언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출판사 사장들이 이러한 책을 좋은 책으로 손꼽는 것에 어떤 희망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낙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였던가...
여하튼 ‘자본론’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는 사회과학공부를 하던 그때 그 시절로부터 세 번이나 변한 강산만큼 바뀌었으나, 그 단어를 앞에 놓고 이야기하는 나와 선배라는 사람은 그대로였다. 우리는 그때 그 시절처럼 무릎을 맞대고 앉아 드문드문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서로의 생각에 조금씩 파열음을 내며 이야기하기를 아직 즐기고 있다. 달라졌다고 그러나 완전히 달라졌다고는 할 수 없는 지금 사회를 살아가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그러나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는 우리가 그날 나눈 이야기들을 좀 더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울 굽다》는 일독을 권할만한 책이다.
와타나베 이타루 / 정문주 역 /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田舍のパン屋が見つけた「腐る經濟」) / 더숲 / 235쪽 / 2014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