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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선의 법칙》

인간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악의가 담겨 있지는 않은 어떤 선들...

by 우주에부는바람

‘선의 법칙’이라는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착하다 할 때의 선, 인가 아니면 점과 선 할 때의 선인가... 작가는 제목의 한글에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의도적인 것인지 의도적인 것은 아닌지 알 수 없다. 책을 읽고 나면 아마도 제목의 선이, 줄을 의미하는 線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시키는 어떤 우연들을 ‘법칙’이라는 제목으로 아우를 수 있을까 의아하기는 하다.


“... 한 가지 일이 아니라 몇 가지 일이 연쇄되어 아빠와 157번지에 나쁜 운수를 구축해나갔고 그 결과로 사고가 일어났다... 윤세오는 그 연쇄 중 하나를 찾아냈다...” (p.45)


소설은 두 명의 인물이 번갈아 등장하는 구조를 취한다. 앞 자리에 윤세오가 있다. 스물 일곱 살의 여자인 그녀는 아버지와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아버지의 심부름을 다녀오다가 불에 타고 있는 중인 자신이 집을 발견하게 된다. 그날의 불로 아버지는 죽었고, 경찰은 그날의 불은 윤세오의 아버지가 가스선을 부러 절단하여 생긴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을 그저 자살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지...


“엄마와 서로 몸을 기대고 있는 동안 신기정은 동생을 위해 가장 먼저 했어야 할 일을 깨달았다... 동생이 지금 이 자리에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없으리라는 사실에 슬퍼하는 일, 삶의 마지막 순간 홀로 있었을 동생을 애틋해하는 일이었다. 지금 엄마가 그러는 것처럼, 미안함이나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동생이 그리워서, 그것이 애도의 첫 번째 순서였다.” (p.267)


윤세오에게 아버지의 죽음이 있었다면 또 한 명의 화자라고 할 수 있는 신기정은 이복동생 신하정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떨어져 살았던 신하정과는 드문드문 연락을 취할 뿐이었다. 하지만 신기정은 동생의 죽음의 연유를 따져볼 생각을 하고, 동생의 통화 내역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신기정은 윤세오의 전화번호를 찾아낸다. 전화번호를 찾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윤세오를 직접 찾아나선다.


“피곤해서 선량하게 느껴지는 모습과 달리 이수호는 선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선하지 않아 피로해진 사람이었다...” (p.77)


신기정이 윤세오를 찾아 다닌다면 윤세오는 이수호를 찾아다닌다. 윤세오의 아버지는 사채업자 사무실에서 채권 추심을 위해 나오는 이수호의 방문을 앞두고 집에 불을 질렀다. 그리고 죽었다. 그런가하면 윤세오는 과거 한 때 다단계 업체의 합숙소에 신기정의 동생을 끌어들였다. (직접 그렇게 한 것은 아니지만 윤세오가 끌어들인 부이가 신하정을 끌어들였으니 최초의 원인제공자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윤세오와 신기정은 연결되어 있다.


“... 처음 고시원에 묵을 때는 자주 문 잠그는 일을 잊었다. 집이 아니라 방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자고 일어나 아침에 문을 열 때면 간밤에 문을 잠그지 않은 채로 잤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악하곤 했다...” (p.190)


하지만 이 연결들이 아주 부드럽지는 않다. 작위적이라고 몰아붙이려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싶다. 윤세오와 이수호, 윤세호와 조미연과 부이, 부이와 신하정, 신하정과 신기정이라는 작은 연결들이 윤세오와 신기정이라는 커다란 줄로 통합되는 과정이 복잡하다. 그런데 그 복잡함에는 적절한 이유들이 없다. 그러다보니 커다란 줄을 만들기 위하여 영문도 모른 채 끌려 들어온 모양새다. 마치 무얼 하는지도 모른 채 추심업체에 들어간 이수호나 어린 시절의 친구 조미연을 따라 다단계 합숙소에 들어간 윤세오를 닮았다.


“... 누구의 잘못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어떤 선택을 했고 뭔가를 잃었고 실패했을 뿐이다.” (p.216)


그러고보니 그들 사이를 연결시키고 있는 인연의 끈들에 공통적인 것은 악의가 담겨져 있지는 않았다는 사실 정도가 아닐까. 악의가 담겨 있던 것은 아니라는, ‘누구의 잘못으로 시작한 일’은 아니라는 설명으로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희석된다는 점에서 善의 법칙이라고 읽어볼까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소설에는 善이든 線이든 그 뒤에 ‘법칙’이라는 단언이 붙을만한, 그렇게 수렴될만한 무언가가 들어 있지는 않다. 어딘가 허전하다. 우리들 관계라는 것이 원래 그렇게 허전하고 허무한 것이 아니겠느냐, 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편혜영 / 선의 법칙 / 문학동네 / 267쪽 / 201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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