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궤를 흐트러뜨리고 그 안으로 밀어 넣는 관념적 너스레...
「절반 이상의 하루오」
“... 세상의 모든 목적지들이란 어떻게 태어나는 것일까. 사람에게 목적지가 필요한 게 아니라 목적지가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닐까. 인간이 떠나고 돌아오는 게 아니라 떠날 곳과 돌아올 곳이 인간들을 주고받는 게 아닐까...” (p.15) 나와 그녀가 인도를 여행하는 중에 만났던 일본인, 일본인 친구보다 다른 나라 친구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하였던, 외할아버지가 미국인이고 어머니는 오키나와 태생이었던, 하루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본인이라고 할 수도 없고 일본인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절반 이상의 하루오는 어딘지 다른 하루오’라고 농담하던 하루오에 대한 이야기이자 나와 그녀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나의 아버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딘가에 적을 두고 있다고 할 때의 그 ‘적’이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온전히 그 ‘적’에 해당하는 것도, 그렇다고 그 완전히 자유롭다고도 할 수 없는 것 아닐까. 그것을 몸소 보여준 하루오 같은 인물도 있는 것이지만 어쨌든 우리도...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
1434년 작 얀 반 에이크의 그림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지오반니 아르놀피니와 그의 부인의 초상)>이라는 유명한 (제목은 모를 수 있지만 보면 누구든 아 이 그림, 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그림을 토대로 하여 뿜어내는 작가의 상상력 같은 것일까... 월수금 오후 2시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아파트를 청소하는 일을 하는, 까칠한 이혼녀인 나와 그 집주인인 그 사이의 일방적인 교감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올드 맨 리버」
이태원에 살고 있는 스물넷 알렉스, 어린 시절 미국의 가정에 입양되었다가 지금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알렉스의 이야기이다. 알렉스의 양아버지 니콜라는 중영 비행기의 베테랑 승무원이고 니콜라의 아내는 일찌감치 죽었고, 그래서 알렉스는 그의 양어머니의 얼굴을 모른다. 니콜라의 부모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마케도니아 출신이었다. 니콜라의 부모는 동갑이었고 히피였다. 알렉스는 미국에 있을 때 베트남 출신의 리엔을 세탁소에서 만나서 잠시 사귀었다. “... 리엔이 청소하러 오는 밤 9시 반과 그 시간의 코인 세탁소에 대해 알은 장황하게 이야기했다. 코인 세탁소라는 곳은 하나의 우주 같아. 이 세상이 코인 세탁소의 일부가 아닐까 그런 착각이 들 정도라니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모든 이들이 똑같은 자세로 똑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거야...” (p.95) (아, 이 대목에서는 일본 영화 <란도리>가 잠시 떠올랐고...) 그리고 지금 알렉스는 이태원에 살며, 친부모를 찾는다는 인터뷰로 티비에 출연하기도 했고, 때때로 히스 레저를 떠올리며, 히스 레저의 팔에 있던 문신 Old Man River 와 관련한 인터뷰의 말을 기억한다.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릴까요? ... 내가 그렇게 말하면,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합니까? 정말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을 생각합니까? ... 그럴 리가.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라고 내가 말하면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기린에 대한 모든 것을 생각합니다. 마치 내가 이렇게 말한 것처럼 말이죠. 이제부터 기린에 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라고요.” (p.111) 진실의 말과 거짓말, 운명의 오해 혹은 이해될 수 업는 운명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것은 작가가 떠올리지 말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하지만 결국 가닿을 수밖에 없는 진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누군가 나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라고 말할 때 우리가 빠질 수밖에 없는 논리적 함정 같은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 모두의 정귀보」
‘무명이었다가 사후에 유명해진 화가 정귀보’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한 정귀보에 대한 글의 청탁을 받은 내가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정귀보의 전생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죽기 하루 전의 정귀보가 된 듯이, 나는 도토리묵(주인장이 서비스로 준 것이다)과 파전을 앞에 두고 막막한 감정에 잠겨 있다... 나는 무언가가 내 안에서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정귀보의 인생에 대한 기나긴 글의 첫 문장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첫 문장에서 두 번째 문장이 나오고, 두 번째 문장에서 세 번째 문장이 이어지고, 세 번째 문장에서 또 다른 문장이 태어날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거기서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나오는 정귀보를 보게 될는지도 모른다...” (pp.180~181)
「칠레의 세계」
소설집의 후반에 실린 소설로 갈수록 이야기는 점차 난해해진다. 휘어지고 튀어 오르고 자꾸 멀리 떠난다. 인과 관계의 어느 지점인가에 2006년 겨울 죽은 늙은 독재자 피노체트가 있다. 또한 이야기가 통과하는 어느 구역에 나와 한때 연예인이었던 나의 아내가 있다. 13이라는 숫자는 이 구역에서만 통용되는 치트키 같은 것일는지도 모른다. ‘칠레의 세계’는 독자에게 따로 이해를 구하지 않는 세계이다.
「어느 날 욕실에서」
“... 침묵이 이어졌다. 이마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입안에서 침이 말랐다.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건 내 고질병이다. 혼자서 오래 침묵하기 경연대회 같은 것이 있다면 우승도 할 수 있을 텐데, 어찌 된 일인지 다른 사람과의 침묵은 10초도 버틸 수가 없다.” (p.223) 왠지 이 남자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견딜 수 없는 침묵 탓에 남자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이 욕실, 이라고 하지 않아도 좋을 말을 하게 된 것이다. 낡은 아파트이지만 욕실을 리뉴얼하기로 작정하는 것도 그것이 바로 욕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 욕실에 누군가가 죽어 있다.
「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방」
소설가가 집, 상트페테르부르크 바실리 섬 스례드니 15번가 98번지 5층 7호에 있는, 을 비운 사이 그 집에 기거하게 된 나의 이야기, 혹은 그 집에서 내가 맞닥뜨리게 된 유령에 관한 이야기이다. “... 알고 보니 자신이 유령이었다는 이야기의 사회적 버전을 혹시 아는가? 인민의 적을 퇴치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처단해야 했던 혁명가의 이야기 말이야. 자본주의를 증오했는데, 알고 보니 자신이 주식 투자자였다는 남자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악몽이란 언제나 그런 식이지.” (p.284)
작가의 소설들이 평범하지 않다. 일상의 궤를 흐트러뜨리고 그 자리에 자신이 품은 생각을 스리슬쩍 밀어 넣는다. 관념적인 너스레가 강한 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작가의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소설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서 도형을 만들어가는 것이 좋다. 소설을 읽는 동안 그 도형은 각을 늘려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몇 각형이 될지 알 수 없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 그 모서리들을 만들고, 마지막 순간 그것들을 하나로 뭉뚱그려 둥글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이장욱 / 기린이 아닌 모든 것 / 문학과지성사 / 291쪽 / 2015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