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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 《맛집 폭격》

에스컬레이션 되는 전쟁의 실체를 바라보는 유니크한 시선...

by 우주에부는바람

본격 문학의 문체를 견지하고 있으면서도 장르 문학의 상상력을 차용하는 작가의 소설 작법은 여전히 흥미진진하다. 또한 이와 같은 내용과 형식의 테두리 안에서 작가는 끊임없이 우리 사회의 어떤 약한 고리 혹은 악한 시스템에 대해서 지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일본의 사회파 추리 소설에 빗대어 배명훈의 사회파 경계 소설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소설은 우리 나라와 대양 건너 멀리에 떨어진 나라 사이에 벌어진 (유사) 전쟁을 다루고 있다. 두 나라는 서로가 파견된 제3국에서 상대방의 나라의 군인들을 죽이게 되었고 (실제로는 전쟁에 참가한 양국의 전쟁 용역 업체 사이의 충돌이 있었고 그로 인해 양국의 군인들도 죽게 되었던),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실제로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실질적인 전쟁이 일어날 수가 없었지만) 서로를 향하여 미사일을 날리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 사소한 사고에서 시작된 폭력이 또 다른 오해와 불신을 낳으며 서서히 보다 더 큰 폭력을 불러오는 점증 현상... 기껏해야 무역 보복 정도밖에 할 게 없다고 생각하고 서로 비난에 비난을 거듭하며 각자 자국의 여론을 공격적인 형태로 몰아가는 동안,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저 깊은 심연 어딘가에서 전쟁의 불길이 서서히 힘을 키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이 임계점을 넘는 순간 불길은 미사일이 되어 도심 한 가운데에 실제로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때 비로소 사람들은 깨달았다. 보이지 않는 그 어딘가에서 폭력이 서서히 점증되어가는 에스컬레이션 과정이 이미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에스컬레이션 위원회는 그 일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p.17)

그리고 이러한 미사일 전쟁의 와중, 이곳에는 에스컬레이션 위원회라는 기구가 만들어지고, 그곳에 우리의 주인공 민소가 있다. 양쪽 나라의 미사일 공격은 더 이상 확전이 되지 않을 정도로만 이루어지고 있는데, 바로 그 균형점을 찾을 수 있도록 피해 상황을 살피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바로 에스컬레이션 위원회의 역할이다. 하지만 이러한 미사일 공격이 일상화되면서 에스컬레이션 위원회의 역할은 점차 줄어들게 된다.

“... 사람들은 그냥 전쟁을 안고 살았다. 전시와 평시는 생각만큼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았다. 일부러 찾아오는 외국인은 별로 없었지만, 일부러 떠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그대로 버티고 사는 사람들. 인간은 의외로 나무에 가까웠다. 아무 때나 버리고 떠나도 되는 데가 도시일 것 같았지만, 그렇게 쉽게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p.35)

이처럼 에스컬레이션 위원회가 유명무실 해지는 즈음에 민소는 뭔가 미사일 타격 지점에서 이상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비행기 사고를 당한 옛 연인이라고 할 수 있는 송민아리와의 추억이 있는 맛집들에 대해 폭격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민소는 그제야 송민아리가 무기체계 코디네이터였으며 거대한 민간군사업체의 팀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녀가 비행기 사고로 그녀의 팀원과 함께 사라진 이후 첫 번째 미사일 공격이 있었다는 사실도...

그러니까 민소는 양국의 미사일 공격이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그리고 그 각본의 실행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바로 송민아리가 소속된 거대 기업이라고 직감한다. 그러니까 맛집에 대한 폭격은 어쩌면 전향한 (전쟁을 도모하는 자사의 기업 목적을 거부하게 된) 송민이라가 민소를 향하여 보내는 이 미사일 공격의 숨어 있는 발사 지점에 대한 힌트였던 것이다.

“... 정부는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통제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는데, 물론 그 정책은 심각한 반대에 부딪혀 표류하고 있었다. 국민의 기본권이나 자유를 꽤 과감하게 제한하는 조항들이 포함된 정책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긴급한 상황’일 때 정부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지만, 그러는 와중에 정부는 끝끝내 현재 상황이 전쟁이나 혹은 그에 준하는 ‘긴급한 상황’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p.71)

이처럼 영화적 상상력으로 무장하고 있는 소설의 숨겨진 의도는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정부라는 것의 실체에 대한 폭로이기도 하다. 그들은 전쟁의 발발에 책임을 지기 싫고 (그래서 미사일 공격을 민간 기업에 맡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인들의 사상을 방기하면서까지 현재의 상황을 유지한다. 그리고 소설은 해피 엔딩이 아니다. 송민아리의 힌트가 민소의 목숨을 (위협하기도 하고) 구하기도 하였으나 결국 전쟁은 일어나고, 민소 그리고 민소와 이 모든 음모론의 실체 발굴을 함께 한 윤희나는 요리를 시작한다.


배명훈 / 맛집 폭격 / 북하우스 / 255쪽 / 2014 (2014)

ps. 소설은 꽤나 정치적이다. 아니, 유행하는 말로 바꿔보자면 정치공학적이다. 도처에 그러한 정치공학적 언술들이 포진하고 있다. 아래와 같은...

『“고위 공직자들이 사과 같은 거 할 때 정확히 누구한테 사과를 하는지 잘 들어봐.”

“국민들한테 하는 거 아니에요?”

“자세히 들어봐. 방금, 들었어? 국민들한테 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게 심려를 끼친 데 대해서 사과하는 거잖아. 항상 그래. 굳이 콕 집어서 국민들게 심려를 끼친 데 대해서만 사과를 해. 사람한테 사과하는 게 아니라 심려한테 사과한다는 말이야.”

“그게 무슨 뜻이에요?”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에 그런 게 나와. 사람을 설득할 때 어떤 방식으로 말할 것인가. 이성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윤리나 도덕성에 의지하거나 감성에 호소하거나.”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요?”

“그래, 그거. 저런 데 나와서 연설하는 사람의 말은 그 셋과 관련이 있어야 된다는 거야. 그런데 신기한 건 어느 시대 어떤 집권 세력에 속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합리성이나 도덕성에 문제가 생겨도 흠집이 안 나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는 거지. 그게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 아무튼 결과는 그래. 그 사람들 반대 세력들은 지금 하는 말이 몇 년 전에 자기가 한 말과 어긋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지지 세력을 잃고 낙마를 하거든. 아주 사소한 거라도 윤리적인 문제가 불거지면 말할 나위도 없고. 그런데 이 집권 세력에 속한 사람들은 똑같은 문제가 발생해도 끄떡을 안 해. 그럼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하겠어? 자기네를 포함해서 모두에게 적용되는 합리성이나 도덕성 이슈 같은 걸 나라 전체에 퍼뜨리는 거야. 그럼 반대 세력들은 틀림없이 낙마하거든. 극소수만 빼고. 그러고 나면 로고스와 에토스에 대해서는 절대 책임을 안 지는 뻔뻔한 우량종만 살아남는 거야.”

“끔찍하네요.”

“끔찍하지. 그런데 그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게 딱 하나 남아 있거든.”

“파토스요?”

“그렇지 국민 정서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 정치가가 대량생산되는 거야. 저쪽이나 이쪽이나 똑같아.”

“그럼 어떻게 되는데요?”

“국민을 로고스나 에토스 상태에서 끌어내 파토스 상태로 바꾸는 거지. 거대한 정념 덩어리가 되게 하는 거야.”』 (pp.14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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