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과 자조와 한탄으로 얼룩진 우리네 한국살이를 뒤로 하고...
한국이 싫어서, 라는 제목이라니... 노골적이지만 거부하기 힘들다. 어제 티비를 보는데 우리나라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한국을 탈출하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전문직 종사자들이라면 우리나라 내부에서도 꽤나 괜찮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부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 한국으로 통칭되는 이곳에서의 삶 전반에 기대를 걸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택한 것은 ‘핀란드’이다.
“... 내가 호주에서 산다고 해서 죽기야 하겠어? 기껏해야 괜찮은 남자를 못 만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사는 거지. 그런데 호주에서는 알바 인생도 나쁘지 않아. 방송기자랑 버스 기사가 월급이 별로 차이가 안 나.” (p.161)
하지만 ‘핀란드’와 같은 북유럽 국가로 탈출하는 것은 언감생심인 부류라면 어떨까. 어쩌면 소설 속 ‘호주’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꿈꾸는 북유럽의 하위 버전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어중간한 증권사에 다니던 계나는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한국을 떠나 호주를 향한다. 기자가 되기 위해 언론 고시를 준비 중인 남자 친구 지명이 말렸고, 재개발 지역에 남아 신규로 지어질 아파트 딱지를 기다리는 가족들도 말렸지만 그녀는 떠난다.
“... 높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바닥에 닿기 전에 몸을 추스르고 자세를 잡을 시간이 있거든. 그런데 낮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그럴 여유가 없어. 아차, 하는 사이에 이미 몸이 땅에 부딪쳐 박살나 있는 거야. 높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낙하산 하나가 안 펴지면 예비 낙하산을 펴면 되지만, 낮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한테는 그럴 시간도 없어. 낙하산 하나가 안 펴지면 그걸로 끝이야. 그러니까 낮은 데서 사는 사람은 더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조심해야 해. 낮은 데서 추락하는 게 더 위험해.” (pp.124~125)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이 한국에서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나중의 행복을 위하여 지금의 행복을 저당잡히는 삶을 견딜 수 없었다. 이미 낮은 데서 살고 있는 그녀의 가족들은 그래서 더 아슬아슬한 삶을 살아야만 했고, 그보다는 나았던 지명의 가족들은 그녀와 만난 자리에서 그녀를 없는 사람처럼 대했다. 이곳에서 그녀는 미래를 도모할 수 없었고, 그러기도 싫었다.
“... 나는 행복도 돈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행복에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있는 거야. 어떤 행복은 뭔가를 성취하는 데서 오는 거야. 그러면 그걸 성취했다는 기억이 계속 남아서 사람을 오랫동안 조금 행복하게 만들어 줘. 그게 자산성 행복이야. 어떤 사람은 그런 행복 자산의 이자가 되게 높아... 어떤 사람은 정반대지. 이런 사람들은 행복의 금리가 낮아서, 행복 자산에서 이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이런 사람은 현금흐름성 행복을 많이 창출해야 돼...” (pp.184~185)
물론 호주에서의 삶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닭장 같은 셰어 하우스에서 기거하며 영어를 마스터했고 회계학을 공부했다. 이후에는 자신이 직접 닭장처럼 만든 셰어 하우스를 운영하다 베이스 점프를 하는 친구 때문에 한 번, 위조 수표를 사용한 계약자 때문에 또 한 번 위기를 겪는다. 이러한 위기 후 한국에 들렀을 때는, 이제 고시를 통과해서 어엿한 기자가 된 지명과 동거를 하기도 하지만 결국 다시 호주로 돌아간다.
“내 고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그래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 줄 구성원을 아꼈지. 김연아라든가, 삼성전자라든가. 그리고 못난 사람들한테는 주로 ‘나라 망신’이라는 딱지를 붙여줬어. 내가 형편이 어려워서 사람 도리를 못하게 되면 나라가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가 국가의 명예를 걱정해야 한다는 식이지...” (p.170)
얼마 전 티비 프로그램에서 한 정치 평론가가 내뱉은 이게 나라냐, 라는 말이 한동안 인구에 회자되었다. 그보다 오래 전 미생이라는 드라마에 나왔던, 회사는 전쟁터이지만 밖은 지옥, 오과장의 대사가 유행하기도 했다. 이런 미디어 속 언설이 아니어도, 우리는 도대체 이 땅에서 무얼 기대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자주 한탄하고는 한다. 소설은 이러한 짜증과 자조와 한탄의 한 자락을 담아내고 있다.
장강명 / 한국이 싫어서 / 민음사 / 202쪽 / 2015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