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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아무도 보지 못한 숲》

모호함을 안착시키지 못한 미스터리가 그저 애매하게...

by 우주에부는바람

소설을 읽다보면 자꾸 딴 생각을 하게 되곤 한다. 소설의 몰입을 소설 속 캐릭터가 방해하는 식이다. 소설가가 창조한 소설 안의 어떤 인물이 내가 겪은 소설 바깥의 어떤 인물이 자꾸 오버랩 되면 그렇게 되고 만다. 나는 소설을 읽고 있지만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소설 바깥의 인물을 복기하고 있기 일쑤이다. 그리고 이 다툼의 승자는 소설 내부의 캐릭터인 경우도 있고, 소설 바깥의 인물인 경우도 있다.


“... 윤과 만나는 5개월 동안 미수는, 윤의 삶을 자주 물속처럼 들여다보곤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방 한 칸에서 혼자 살고 있고, 오늘 반드시 처리해야 할 업무도 없으며, 그 어떤 사회적 공동체에도 꼭 필요한 사람으로 소속된 적 없는 그의 현실은 곧 미수의 것이기도 했다. 평일엔 무의미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잠이 들고 주말엔 가급적 약속을 삼간 채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하고 왁자지껄한 파티 없이 생일이나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그의 하루하루 역시, 미수의 일상을 그대로 되비추며 고요하게 일렁였다...” (pp.58~57)


그러니까 이런 식의 일상을 보내는 그녀를 나는 알고 지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난데없이 자신의 위와 같은, 그러니까 너무 투명해서 들여다보는 것이 불가능한 자신의 일상을 접고 발칸 반도로 떠났다. 그곳에서 그녀가 보낸 엽서에는 중국 인형의 얼굴을 닮은 산양 한 마리가 프린트되어 있었다. 나는 그녀를 안다고도 모른다고도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간혹 엽서가 날아왔고, 그녀는 엽서의 말미에 자신의 이니셜 M을 소심하게 적어 놓고는 하였다. 나는 지금도 그때도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


“...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미수에 대해 아는 거라곤 직업이나 나이, 혹은 최종 학력과 고향처럼 공식적인 서류에 기록되는 정보들에 지나지 않았다. 간혹 함께 저녁 식사를 하거나 전화 통화를 하며 표면적인 안부를 주고받는 친구들도 생겼지만 그들이 미수에 대해 아는 것 역시 선호하는 음식, 체질에 맞지 않는 술의 종류, 채식주의자의 여부 등과 같이 고백의 과정 없이도 알아낼 수 있는 범위에 불과했다.” (pp.74~75)


민음사에서 나온 젊은 작가들의 경장편 시리즈를 간혹 읽는데 유니크한 맛이 없다. 젊은, 신예와 같은 접두사를 붙이고 있으니 내용이든 형식이든 그 젊은, 신예와 같은 접두사에 어울릴 법한 무언가를 기대하게 되는데, 매번 실패하고 만다. 조해진이라는 작가의 단편소설집은 아주 좋았지만, 이번 경장편은 그것들에 버금가지 못하고 있다. 미수와 현수, 소년과 M, 윤과 미수라는 등장인물들의 대립 관계들은 모호하고, 그 모호함은 미스터리로 발전하지 못하고 그저 추상적일 뿐이다.


남매지간이었지만 죽음 혹은 거짓 죽음으로 갈라진 미수와 현수, 한 오피스텔에 살고 있으면서 미수 혹은 M과 그녀를 관찰하는 소년, 같은 직장에 있으면서 서로를 알아보고 연애를 하였던 미수와 윤, 그리고 소년과 소년이 되고자 하는 또 다른 소년 현수... 과거 어느 시점에 있었던 사망자가 다수 발생한 사건과 그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어 흔적이 사라진 아이, 그리고 그 아이를 둘러싼 인물들의 현재를 그리고 있지만 그것이 또렷하지 않다.


“보스에게서 현수와 관련된 서류를 받은 그날부터, 아니 M의 방을 드나들게 된 이후부터, 소년에게는 새로운 미션 하나가 배당된 셈이었다. 녀석의 모든 아이템을 뺏어 와 아예 녀석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소년의 새 미션이었다. 게임이 끝나면 소년은 녀석이 되어 있을 것이고, 녀석은 예전의 소년처럼 자취도 없이 삭제될 것이다. 유쾌하지 않은 반복이긴 하지만 그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p.88)


소설은 그러니까 현대 사회에서 희미하기만 한 인간의 정체성을 그려내고 있다. 이 거대해진 도시에서 우리들 인간의 흔적이라는 것은 아슬아슬하게 발견될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그 흔적조차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미스터리한 방식으로 소설의 얼개를 짜는 것에 능숙한 작가는 이 희미한 흔적 쫓기를 소년 그리고 현수를 통해 유지하고 있지만 그것이 성공적이었는지 의문스럽다.



조해진 / 아무도 보지 못한 숲 / 민음사 / 188쪽 / 201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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