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의 '취향'을 향하여 한발 다가가 들여다 보기를 원한다면...
*2015년 6월 19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이제 한 달쯤 되었을까, 함께 일하게 된 스태프의 복식 취향이 꽤나 특이하다. 그러니까 일종의 로리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코스프레 경연장 같은 곳에 등장하여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을 그런 스타일이다. 검정색과 흰색, 혹은 핑크색의 옷들을 주로 입고, 양산을 까먹지 않으며, 가방은 빨간색 하트 모양, 신발은 빤짝거리는 걸로.... 설명하자면 대략 이러한데, 그러니까 <불량공주 모모코>의 모모코를 떠올릴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저자인 박상미의 문장이 마음에 들어서, 이 작가의 다른 책들을 봐야겠다 생각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보니 자꾸 이 스태프가 떠올라 피식거렸다. 로리콘 스타일의 복장을 입고, 노이즈 가득한 슈게이징 음악을 좋아하며, 하드고어 고딕 이미지나 스너프 필름에 열광할 것 같은 (이 부분은 아직 정확하지 않다) 취향이라니... 그래 그건 네 취향이야, 라고 애써 모른 척 하였지만 여하튼 바에서 일을 하는 동안 거참 (물론 지금까지 내 주변인들을 한정하여서 보자면) 보기 드문 취향일세, 라고 혼잣말 하며 신경을 쓰기는 썼나보다.
여하튼 책은 이처럼 살아가면서 우리가 도리 없이 가지게 되고, 은연중에 (우리의 스태프는 대범하게) 표출하게 되는 취향, 그 중에서도 (부제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미술, 패션, 인테리어 취향에 대한 탐구를 목적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어울리는 단어를 골몰하다, 그러니까 미술이나 철학에서 말하는 ‘taste취미’와 ‘안목’이라는 단어 사이를 헤매다 결국 ‘취향’을 책의 제목으로 삼았다.
뉴욕에서 거주하던 당시에 (그녀는 《뉴요커》라는 책을 출간했을 정도의 뉴욕통이지만 2010년 이후 서울에 살고 있고, 서촌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며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작성된 글들이다 보니 뉴욕에서 만난 사람 혹은 공간이 글감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고, 또한 갤러리에서 일을 하거나 직접 그림을 그리고자 하였던 탓에 미술관이나 화가 (여기에 디자이너를 비롯한 패션 관련 인물들을 더하여) 또한 자주 글에 등장한다. 책에 실린 글들에는 다양한 사물과 인물이 등장하고 이들이 ‘취향’이라는 단어로 잘 붙잡혀 있다. 읽고 있을라 치면 고급한 잡지의 조금 긴 에디토리얼을 읽는 것처럼 우아하면서도 편안해진다고나 할까.
책은 ‘변하는 취향’, ‘말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취향’, ‘취향은 어디에서 오는가’ 라는 세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까 ‘취향은 변하는 것이고, 취향은 말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것인데, 그런데 도대체 그 취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지?’ 쯤으로 이 책이 탐구의 대상인 ‘취향’을 향하는 궤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다시 동료인 스태프의 ‘취향’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지금 말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이 친구의 ‘취향’을 보고 있는 중이고, 저 취향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궁금해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 스태프와 좀더 시간을 함께 한다면, ‘변하는 취향’까지 볼 수 있게 되겠지...
이래저래 엉뚱한 소리들을 늘어놓았지만 책은 재미와 의미, 라는 양 측면에서 잘 조율되어 있다. 심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우습지도 않다. 언제 어디서나 ‘취향’을 생각하며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우리들이, 그럴 바엔 자신의 ‘취향’에 대해 할 걸음만 더 다가가 눈 크게 뜨고 바라봐볼까, 생각하면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아래의 내용들을 참고하면서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 새삼스런 얘기지만 미술관의 일이란 우리가 작품을 감상하는 적절한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적당한 공간, 온도와 습도, 조명, 그리고 맥락. 어떤 전시를 하는 것 자체가 이 세상 속에 특정 작품들이 설 수 있는 맥락을 제공하는 것이고, 각각의 작품들은 그 속에서 어떤 식으로 기획된 전시라는 맥락을 갖는다. 어떤 전시냐에 따라, 관객들이 작품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작품의 존재와 의미는 변한다. 그렇게 해서 변용을 거친 작품은 다시 작품을 보는 관객과 전시와 세상의 각도를 조금 틀어놓기도 하는 것이다.” (pp.56~57)
“... 결국 사람이 특별한 존재가 되는 건 그 사람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가 특별하게 인식하고 기억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의 머릿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pp.82~83)
“‘힙스터’란 부스스한 머리에 후즐근하게 빈티지한 옷을 입고 다니는, 젊거나 젊어 보이는 어떤 부류를 일컫는다. 예를 들어 서른 살이면 백화점에서 산 양복을 입고 회사에 다니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인 데 반해, 이 힙스터들은 빈티지 풍 티셔츠와 낡은 디자이너 청바지에, 컨버스 운동화를 신고 거리를 아무 때나 배회하는 것이다. 기성세대와 주류 문화에 상반되는 이미지를 중시하는 것으로 봤을 때 비트 세대나 히피와 유사한 맥락의 카운터컬처 그룹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아무도 스스로를 힙스터라 내세우지 않는 것을 보면 좀 다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남들을 힙스터라 불러도 자신을 가리켜 힙스터라 하진 않는 것이다. 힙스터임을 자랑스러워하며 함께 모여 시를 읽지도, 노래를 부르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는 장소들이 있다. 채식주의 음식점, LP를 파는 레코드 가게, 애플 스토어, 스타벅스와 차별적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는 작고 개성적인 동네 카페, 노엄 촘스키의 책들을 진열한 작은 서점, 동네 자전거 수리점, 그리고 물론 빈티지 옷 가게. 그러니까 힙스터는 비슷한 소비 취향으로 느슨하게 묶이는, 도시의 주변적 존재들이랄까.” (pp.86~87)
“... 한 마술사에 의하면 관중의 수준이 높을수록 속이기 쉽다고 한다. 문화적인 경험이 많을수록 기대 수준도 높고 선입견도 많아서 속일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맞는’ 결과를 얻으려는 의지가 높아서 오히려 자발적으로 속임수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 (pp.93~94)
『“패션이, 외모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당신 블로그의 덕분인지 요즘은 멋쟁이 아닌 사람이 드물 정도예요.”
“하하. 난 멋진 것보단 흥미로워 보이는 게 더 중요한 거 같아요. 흥미롭게 보인다는 건 그 사람을 한 번 더 돌아보게 한다는 걸 의미해요. 그건 성격이 될 수도 있고, 어떤 내면적인 게 될 수도 있고, 헤어스타일이 될 수도 있어요... 근데 내 생각엔 전체적인 자세나 태도와 큰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의 외모를 보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나요?”
“2005년 11월에 블로그에 올렸던 흑인 아저씨의 사진을 혹시 기억해요? 내가 그 아저씨를 불러 세웠을 때, 아저씨는 기운이 없는지, 슬픈 일이 있었는지 몸이 구부정했어요. 그런데 카메라를 들이대자 그는 손으로 옷깃을 잡으며 가슴을 곧추세웠어요. 좀 전까지만 해도 느낄 수 없었던 위엄에 가득 찬 포즈였지요. 위엄과 품위, 사람의 외모에서 그런 게 느껴질 때 가장 감동받는 것 같아요.”』 (p.120, 스콧 슈만과의 인터뷰 중)
“한때 ‘난 취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유행인 적이 있었어요. 그 말에는 자아가 만들어내는 사소한 위계들을 넘어 세상에서 마주치는 의미들을 차별 없이, 진정하게 받아들이자는 의도가 담겨 있었죠. 하지만 내 생각엔 그 반대가 맞다고 생각해요. 사물을 깊이 있게 차별해서 지각하고 보는 경험은 일생 동안 축적이 되고 결국 독특한 어떤 것을 만들어내게 되지요. 그게 취향이에요. 그리고 취향이란 그 사람의 감성의 풍향계라 할 수 있어요. 한 사람의 미적 방향성을 나타내주는 지표 같은 거라는 얘기죠.” (p.133, 시인 빌 벤튼 과의 인터뷰 중)
『내가 티네에게 물었다. 취향이 뭐라 생각하느냐고. 뭐든 조심스러워하는 티네인데 오래 걸리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생각의 흐름을 막지 않고, 영감을 주고, 내가 하는 일을 도와주는 환경이지.”
취향 그 자체라기보다 ‘좋은 취향’에 대한 생각이었다. 어떻게, 뭘 더 물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브루스가 옆에서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끼어든다.
“취향은 남보다 나은 것better이 아니라 좋은 것good을 의미하지. 이롭고 도움을 주는 것. 물론 좋은 취향은 언제나 나쁜 취향보다 나은 것이지만...”』 (p.164, 나와 브루스와 티네)
“... 스스로 ‘나는 까다롭다’고 말하길 좋아하고, 막상 취향의 수준을 보여주어야 하는 순간엔 헤매면서, 애매한 상황에서 까탈을 부리고 그러는 사람들. 마치 까다로움을 따라 하면 그 고급 취향을 닮을 수 있다는 듯 말이다. 찡그려서 미인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안타까운 일이지만 서시가 미인이기 때문에 찡그려도 참아줄 수 있고 그게 예뻐 보일 때도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취향이 있고 까다로움이 있는 거지 까다로움만 부린다고 저절로 취향이 생기는 건 아니다.” (p.228)
“유행의 사이클... 그 시대보다 10년 앞서면-추잡한, 5년 앞서면-뻔뻔스러운, 1년 앞서면-과격한 현재-보기 좋은... 그 시대보다 1년 지나면-촌스러운, 10년 지나면-끔찍한, 20년 지나면-우스꽝스러운, 30년 지나면-재미있는, 50년 지나면-고풍스러워 흥미로운, 70년 지나면-고풍스러워 매력적인, 100년 지나면-낭만적인, 150년 지나면-아름다운” (p.228, 제임스 라버, 『취향과 패션』, 1945)
“취향이란 사회적 위치를 보장받고자 개인이 발전시키는, 사물을 감식하는 실질적인 분별력이다.” (p.233, 피에르 브르디외)
박상미 / 취향 미술, 패션, 인테리어 취향에 대한 내밀한 탐구 / 마음산책 / 270쪽 / 2008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