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을 곧이 곧대로, 그래서 조금 맥쩍은...
얼마전 소설가 강석경이 경주에 관하여 쓴 산문집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것이 나쁘지 않았던 탓에 이 책도 덥석 집어 들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저자가 출입한 몇몇 절 그리고 저자가 직간접으로 접한 불자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절로는 통도사, 송광사, 해인사, 화운사가 나오고 인석 스님, 혜인 행자, 동주 스님, 선일 스님, 송천 스님, 화공 스님, 덕민 스님, 종표 스님과 불자 자연과학자인 박문호 씨가 등장한다.
“먼지까지도 정화시킬 것 같은 여자의 기도는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를 감화시켰다. 종교 그 자체 같은 진실의 힘이었다.”
책을 열면 본문의 시작에 앞서 위와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젊은 시절 나 또한 저런 모습에 감화를 받고 싶어서 혹은 그저 절을 품은 산이 좋아서 종종 여행을 떠나고는 했다. (물론 그때도 지금도 나는 어느 한 종교에 귀의를 하지는 못하였다) 구십 년 대 초이던가 한 번은 지금의 아내와 함께 송광사를 찾은 적이 있다. 한여름이었고 숨쉬기도 힘들었던 그날, 우리는 공부하는 스님들로 조용한 경내를 조심스럽게 훠이훠이 한 바퀴 돌고 조용히 내려왔다.
“인간은 구하다 구하다 죽어요. 기러기는 날다가 날다가 죽어요. 돈, 명예, 사람, 건강, 어떤 것을 구해도 남는 것이 하나도 없어. 그러니 다음 생에 또 구해요. 생사윤회야. 중생은 구하는 데 머물고 부처님은 깨닫는 데 머물러요.” (pp.41~42)
책의 구성이 그렇다 보니 스님들의 말씀이 자주 등장한다. 위는 통도사 화엄산림법회에서 종범 큰스님의 법문 중 일부이다. 하지만 책에는 이러한 큰스님의 말씀과 함께 학인 스님들 그러니까 제대로 중이 되기 위하여 공부를 하는 분들에 대한 내용도 꽤 비중 있게 등장한다. 새벽 2시 50분 기상, 2시 56분 30초까지 기상 후 행전 착용과 잠자리 정리, 새벽 3시 정각 목탁 소리와 함께 하루를 시작, 3시 18분 45초 가사 장삼 착용, 3시 20분 관음전 댓돌 출발, 3시 26분 법당에 착석, 아침 예불과 공부, 간경, 발우 공양과 율력 후 7시 7분 상강례 계송, 7시 15분 30초에 관음전 출발, 7시 30분부터 9시 50분까지 수업, 점심 고양 뒤 12시 30분부터 15시 20분까지 오후 수업, 수업 후 복귀 16시 57분 인원 점검 후 각자 소임, 저녁 공양과 예불 뒤 하루의 공부 마무리, 씻고 돌아와 20시 27분 30초에 이부자리를 편 후 그날의 잘잘못을 반성하는 소공사 시작, 21시 삼경에 종이 3번 울리면 소등... 해인사의 학인 스님들의 대략적인 하루 일과이다. 초단위로 짜여 진 계획표라니...
“학인 스님들은 이처럼 하루 18시간 규율에 짜여 생활한다. 신참 치문반은 꼭 해야 할 말 외에는 묵언해야 하고 컴퓨터 사용도 제한받는다. 공중전화를 할 때도 2명이 같이 간다. 이부자리 정리부터 옷 입기, 공양, 예불, 울력, 전화받는 법, 방에 들어갈 때의 말 등 5백 가지의 습의를 익혀가야 한다...” (p.165)
출가에 대하여 막연히 갖고 있던 인상은 책에 등장하는 학인 스님들의 일과표로 인해 꽤나 구체적인 것이 되고 만다. 세상에 저런 규율 속에 몇 년을 버티고, 그러고도 공부가 모자라 나라 안팎을 혹은 전 세계를 떠돌고, 그렇게 돌아와서 또 산사에 둥지를 틀고 깨달음을 위하여 정진하는 일을 세속의 잣대로 판단하는 일은 아무 소용이 없다. 아, 그쯤 해야 아래, 화공 스님의 말에 내포된 것과 같은 통찰의 힘을 갖게 되겠구나, 넘겨 짚을 수 있을 따름이다.
“경제가 제일이 아닙니다. 지혜롭게 살면 만족할 줄 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얼마 전 한 종교학자가 쓴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선과 악을 말하면서 착한데 못사는 사람이 있고, 악한데 잘사는 사람이 있다고 비유해요. 인과응보란 그런 게 아니에요. 그건 마음의 개념이지 물질의 개념이 아니에요...” (p.244~245)
하지만 전반적으로 책 자체는 티비에 등장하는 다큐멘터리의 해석본을 보는 것 같아서 맥쩍다. 절을 품은 산, 산에 안긴 절을 들여다보는 작가의 시야 그리고 그 시야로부터 비롯된 어떤 사색을 기대하였는데 책의 내용은 그것과는 거리가 있다. 각각의 스님들에 대한 인상 비평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였으나,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들리는 것을 곧이곧대로 옮겨 적는 것에 그치고 있어 아쉽다.
강석경 / 저 절로 가는 사람 / 마음산책 / 272쪽 / 2015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