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집어든 쿠바로부터 조금 뒷걸음질 치며...
팔십년대에 대학을 다닌 많은 사람들에게 쿠바는 성공한 혁명의 나라였다. 팍스 아메리카나에 잘도 대항하는 (그것도 바로 코앞에서) 나라였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 쿠바는 CSI 마이애미 편에 간혹 등장하는 다양한 범죄의 피해자이거나 가해자인 젊고 미끈한 인물들의 나라였고, 구시대적인 고문이 자행되는 미군의 관타나모 해군 기지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였다. 물론 전 시기에 걸쳐 쿠바는 체 게바라, 라는 한 인물로 집약되고 소비되는 나라였다.
“쿠바 어디를 가더라도 체 게바라와 마주치게 된다. 마치 이곳이 체의 나라인 것처럼. 체 게바라는 아바나를 장식하는 최고의 오브제이며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다. 성공한 혁명의 아이콘인 체 게바라는 현재도 끊임없이 복제되고 재창조되고 있는 중이다. 59년이 지난 쿠바 혁명은 낡은 형식으로 남아 있지만 체는 영원히 죽지 않는 신화가 되었다. 쿠바 혁명은 팔십 대의 노인인 피델처럼 늙고 지쳤다. 늙지 않는 건 오직 체 게바라의 미소뿐이다.” (pp.82~83)
거슬러 올라간다면 바로 그곳에서 글을 쓴 헤밍웨이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고 (작가는 2011년 12월 31일 토요일, 헤밍웨이의 술집으로 유명한 라 보떼기따 델 메이오La Bodeguita del Medio를 방문한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그 멋진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제 쿠바는 팔십년대의 우리가 생각하던 공간은 아니다. 당시의 쿠바가 일종의 발 디디기 힘든 성역이었다면, 이제는 조금의 노고를 감수한다면 발 정도는 디딜 수 있는 성지와 같은 느낌 정도가 되었다.
“... 짧은 여행은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쿠바 여행에서만은 절대적인 단점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영화와 음악으로 접한 환상과 거짓 이미지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또 다른 판타지를 쿠바라는 이름에 덧입히는 것이다... 감성으로 덧씌운 쿠바는 더 이상 쿠바가 아니다. 쿠바는 여행자 각자가 원하는 모습을 개인에게 맞춰서 보여주는 데 탁월하다. 해풍에 부식된 건물 속에서 마치 유령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조차 눈길을 끈다. 각자에게 맞게 맞춤 유령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쿠바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매력적이다. 아름다운 여자들과 매력적인 살사와 음악과 말레꼰은 메마른 일상생활에 지친 사람들의 아련한 감성을 이끌어내고, 감성은 다시 재생산되고 재생산된 감성과 이미지는 사람들보다 먼저 낡아간다.” (p.284)
그리고 이제 한 권의 여행 산문집으로 살펴본 쿠바는 좀더 구체적인 공간으로 다가온다. 강제로 외국계 회사를 퇴출시킬 수 있는 나라이면서 동시에 외국인에게 몸이나 사랑을 팔고 돈을 챙기는 나라이기도 하고, 의료와 교육이 무료인 나라이면서 하루에 한 개씩 빵이 배급되는 나라이다. 노후 대비라는 개념이 없고, 또한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천성을 가진 나라이다. ‘이루어지지 않는 일도’ 없고 ‘그렇다고 꼭 이루어지는 일도’ 없는 애매한 나라이다.
“현재에 머물지 못하는 결과로 생겨나는 진정한 삶과의 괴리는 이곳에서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 따위가 스며들 틈조차 보이지 않는다. 궁핍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생각할 어떤 여유조차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즐기는 그들의 천성은 타고난 듯했다.” (p.111)
이 애매하고 모호한 나라를 방문하고 돌아와 한 권의 산문집으로 가리키고 있는 작가의 손끝은 그래서 계속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 쿠바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작가는 오락가락 한다. 하나의 실에 꿰지 못하고 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하나의 실에 꿰려다가 엉성해졌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실에 꿰기는 하였으나 어울리지 않는 색과 모양의 구슬들을 꿰어 놓아 어색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모든 욕망의 맨얼굴을 마주칠 수 있는 곳이 바로 쿠바다. 진실이 화창한 햇살 아래 일시에 드러날 때, 배려의 가면을 벗어버리고 오직 자신의 욕망에 열중할 때, 꼭꼭 숨겨두었던 비루한 자신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원초적이고 원색적이며 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사는 곳 쿠바! 쿠바에 가면 티끌 하나 없이 말끔한 쿠바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다... 나는 결코, 쿠바에 애인을 홀로 보내지 않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쿠바라는 치명적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p.156)
최근 문학회 선배와 쿠바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마침 서점에 들렀다가 불쑥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사실 책을 읽고 났더니 쿠바를 가보고 싶다는 열망이 오히려 조금 줄어들었다. 혹시 쿠바를 방문하게 된다면 그것은 쿠바라는 공간과의 대면이 아니라 쿠바라는 공간을 동경하였던 나의 과거와의 대면이기도 할 터인데, 그것이 좀더 두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참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공간이고, 사람이다...
배영옥 / 쿠바에 애인을 홀로 보내지 마라 / 실천문학사 / 288쪽 / 2014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