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팝송>을 읽던 시절의 흥분은 사라졌어도 흥겨움은 여전하니...
<PAINT IT ROCK>은 록의 역사를 짚어보겠다는 거대한 야심을 품고 있는 만화책으로 이것은 그 첫째 권이다. 이러한 만화는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의 시대적 배경과 비트족의 등장이라는 상황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러니까 록 음악이라는 것이 시대의 어떤 요구에 의하여 등장하게 되었는가를 간략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그리고 이어 록 앤 롤이라는 용어의 등장 배경에 대한 그림으로 본격적인 만화는 시작된다.
“앨런 프리드(로큰롤이라는 명칭을 대중화시킨 인물로 알려진 미국의 DJ)는 영화 <록, 록, 록>에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 Rock and Roll is a river of music that has absorbed many stream (로큰롤은 맑은 시냇물이 모여서 만들어진 강입니다.) Rhythm and blues, jazz, ragtime, cowboy songs, country songs, folk songs, All have contributed to the big beat(리듬앤블루스, 재즈, 랙타임, 카우보이 송, 컨트리 송, 포크 송 등 이 모두가 로큰롤의 강한 비트에 기여했습니다).” (p.43)
책에는 록의 역사에 이름을 아로새긴 수많은 뮤지션과 밴드가 등장한다. 각각의 챕터에 뽑혀진 이름들만 살펴보아도 대충 이렇다... 척 베리, 패츠 도미노, 제리 리 루이스, 칼 퍼킨스, 밥 딜런, 우디 거시리, 비틀즈, 야드버즈, 롤링 스톤스, 더 후, 비치 보이스, 마마스 앤 파파스, 더 러빈 스푼풀, 사이몬 앤 가펑클, 닐 영, 크로스비 스틸 앤 내쉬, 실 앤 크로프트, 조니 미첼, 더 밴드, 크림, 그레이트풀 데드, 제퍼슨 에어플레인, 지미 핸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스펜서 데이비스 그룹, 블라인드 페이스, 트래픽, 라이트닝 홉킨스, 프랭크 자파, 도어즈, 벨벳 언더그라운드, 제네시스, 핑크 플로이드, 킹 크림슨, 록시뮤직, 뉴 트롤즈, ELP, 예스, 프로콜 하럼, 릭 웨이크먼, 브라이언 이노, 레드 제플린...
“비틀즈의 곡을 다 듣기 위해서는 정규 앨범 13장과 Past Masters(싱글만 모은 옴니버스) 두 장을 합쳐 15장의 앨범이 있어야 한다.” (p.90)
결국 이 많은 뮤지션들 중에서 이 책의 표지로 뽑힌 것은 비틀즈이다. 하지만 책의 제목인 Paint it rock 는 롤링 스톤스의 곡 Paint it black 에서 따왔다.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하며 서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명불허전의 두 밴드는 이 한 권의 책 안에서도 이렇게 저렇게 서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음악은 우열보다는 그 다름이 더욱 의미있는 것이니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은 이렇게 말한다.
“결국 비틀즈는 음악 그 자체로 논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60년대 내내 끝없이 비교되었던 롤링 스톤스가 블루스를 바탕으로 한 정통 로큰롤이었다면 비틀즈는 블루스의 한계를 넘어 수많은 장르로 창조된 다원적 록의 생성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물론 우리 누구도 함부로 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비틀즈의 창조성은 신 앞에 미약한 인간이기에 가능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 브라이언 윌슨(비치 보이스) (p.270)
책에서는 이러한 개개의 뮤지션이나 밴드뿐만 아니라 이러한 인물들이 만들었거나 영향받은 다양한 음악 장르나 일련의 사조가 등장하기도 한다...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포크, 머시 사운드, 브리티시 인베이전, 누벨바그, 서프뮤직, 포크 록, 브리티시 블루스, 브리티시 헤비 블루스 히피 무브먼트, 사이키델릭 록, 블루스 록, 프로그레시브 록, 헤비메탈, 아메리칸 하드 록... 그리고 간간히 이러한 사조들에 대해서는 만화 외적인 구성으로 조금 충실히 설명을 하기도 한다.
"비트족은 경쟁과 관리를 으뜸으로 하는 사회를 견디지 못해 일부러 방종한 생활과 행동으로 해방감을 얻으려고 했던 보헤미안 작가, 시인 등 ‘반체제’ 예술가들이었다. 히피 사조(1960년대) 이전인 1950년대에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몰려든 비트(기진맥진하다는 의미)족들은 관습적이고 획일화된 산업사회에서 이탈, 개인주의를 추구하였고 일부로 허름한 옷을 입고 원시적인 빈곤을 감수함으로써 개성을 해방하려고 하였다. 비트 운동은 결국 미국 사회에 대한 항의와 그곳에서 이탈하고자 하는 사회운동이기도 했다...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와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으며, 미국 현대문학의 한 조류였던 ‘길 잃은 세대(로스트 제너레이션)’의 뒤를 이었다.“ (p.249)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이러한 설명은 최소화하면서 지은이가 매우 충실히 캐릭터화한 역사 속의 인물들이 직접 등장하여 스스로를 희화화하는 방식을 통하여 특징적으로 자신과 자신의 음악을 설명하고 있다. 일련의 사조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도 시대상을 간략하게 반영하고 있는 그림체를 구사함으로써 읽는 이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조금이라도 록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다.
“60년대 중반의 영국은 모드(Mod) 사조가 크게 유행했었는데... 더 후의 이 노래가(The Who - My Generation) 젊은 모드족(Mods)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으면서 더 후는 ‘모드 밴드’로까지 불려지게 된다... 우리 모드족들은 오토바이도 작고 아담한 스쿠터만 탔어요. 닭벼슬에 애교 머리하고 몸집이 큰 오토바이 타는 그런 짓 안했어요. 그런 건 앨비스 프레슬리 좋아하는 무식한 로커족이나 하는 거요. 보시는 바와 같이 당시의 모드밴드들은 보두 짧은 바가지 머리를 하고 있네요. 마치 자로 잰 듯하군요. 확실히 구레나룻 로커족과는 다릅니다. 어느 시대나 음악과 패션은 유행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음악적으로 보자면 비틀즈는 모드와 로큰롤을, 애니멀스와 롤링 스톤스는 모드와 R&B를 합쳤고요. 후는 모드와 난리 블루스를 합쳤네요.” (pp.124~125)
하지만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깨알같은 정보들이라고나 할까... 프로그레스브 록계의 또라이 셋은 제네시스의 피터 가브리엘, 킹 크림슨의 로버트 프립, 록시 뮤직의 브라이언 이노라고 할 수 있고, 이들 그룹에 예스를 포함시키면 프로그레시브 빅4가 된다거나... 록의 3대 명반으로는 딥 퍼플의 <Live in Japan>, 올맨 브라더스의 <Fillmore East>, 레드 제플린의 <The Song Remains the Same>을 꼽을 수 있다거나 하는 식의 정보들이 무수하다.
“미국이 앨비스 프레슬리와 척 베리로 로큰롤을 만들었다면 록은 영국이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60년대 중반 이후 하드록 그룹들이 출현하면서부터는 로큰롤의 개념은 록으로 바뀌어버렸다... 로큰롤은 춤추기 위한 음악에 불과했지만 록은 감상용 음악으로 부각됐어요. 체감이 육체에서 정신 쪽으로 옮겨갔던 거죠. 에너지도 강력했고요.” (p.353)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월간팝송>과 같은 잡지를 한 페이지 빼놓지 않고 외우다시피 읽던 시절이 있었다. 이놈의 뮤지션들은 왜 그렇게 밴드를 옮겨 다니는지 책에는 간간히 그 밴드들의 족보가 그려져 있고는 했다. 물론 지금은 희미하게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책을 읽으며 그 족보들을 복기할 수도 있었는데, 그것이 큰 의미가 없음을 이제는 안다. 이제는 어느 저녁, 가끔 나가 주인 노릇을 해야 하는 술집 아카이브에 나가, 책에 있는 음악들을 틀어 놓고는 지긋이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것만이 중요하다...
남무성 / PAINT IT ROCK 1 : 남무성의 만화로 보는 록의 역사 / 북폴리오 / 361쪽 / 2014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