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무성 《Paint It Rock 3 페인트 잇 락》

잊고 있던 청취의 순간들을 떠올리는데 이만한 책도 없으니...

by 우주에부는바람

동생과 함께 사는 동안에는 무작위로 음악을 들었다. 이태리로부터 들여온 데빌 돌과 같은 프로그레시브 음악에서부터 스피츠나 도쿄 소울 넘버 원과 같은 제이팝까지 일맥상통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음악들이었다. 동생이 군대에 가고 우리집이 하이텔 친구들의 아지트가 된 즈음에는 주로 모던 록을 들었다. 너바나를 비롯해 오아시스나 블러, 스웨이드 등이 주요 레퍼토리들이었다. 술을 먹으며 음악을 듣다보니 점점 볼륨을 키웠고, 이웃 주민의 신고로 종종 경찰관이 벨을 누르고는 했다.


“모던 록은 1980년대 중반 이후의 록, 뉴웨이브 이후의 새로운 록을 통칭하는 용어다. 얼터너티브, 네오 펑크, 인더스트리얼, 브릿팝이 모두 모던 록의 범주 안에 들어 있다. 미국의 경우는 이른바 ‘시애틀 그런지’에서 촉발된 얼터너티브 록이 이 용어를 대신하였고 이에 대치되는 영국의 모던 록은 브릿팝으로 대변된다... 스웨이드, 오아시스, 블러, 슬리퍼 등이 그 주역들이며 이들은 스래시메탈의 날카로운 피킹이나 그런지 록의 찌그러진 기타 사운드가 아닌, 팝적인 감성과 멜로디를 중시한 록을 선보였다.” (p.267)


페인트 잇 락 세 번째 권에서 드디어 팔십년대에 접어들게 된다. 내가 막 음악을 듣기 시작하던 무렵이다. 당시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서는 점심 시간에 학교 방송으로 팝송을 틀어주고는 했다. (그때 최초로 귀를 사로잡았던 음악은 서바이버의 아이 오브 더 타이거였던가...) 그 이후 마이클 잭슨과 신디 로퍼, 마돈나 등의 주류 팝을 들었고, 이후 월간 팝송 등을 읽으며 6,70년대의 록과 메탈을 겨우겨우 찾아서 들었다.


“팝의 르네상스인 1980년대는 록이 가장 친절했던 시대였다. 아니, 현실과의 타협을 통해 또 다른 생존권을 획득했다는 표현도 괜찮겠다. 동시에 록과 팝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록에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록의 후레자식이었던 펑크와 그것을 숙주로 태어난 뉴웨이브, 디스코가 여전히 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었고 24시간 내내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음악 전문 채널 MTV가 개국했다.(1981년 8월 1일)” (p.28)


그렇게 시대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오락가락하던 음악 청취의 역사를 그나마 시대의 흐름에 맞추기 시작한 것이 바로 모던 록 때부터다. 조금 늦은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시애틀 그런지 (너바나를 비롯해 펄잼, 앨리스 인 체인스, 사운드가든을 시애틀 그런지 4인방이라고 부른다) 와 브릿팝 (카디건스나 켄트와 같은 스웨디쉬팝도 좋아라 한다)을 듣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페이트 잇 락 세 번째 권에서 드디어 그 시절과 조우를 하게 되었다.


“... ‘얼터너티브’라는 용어 자체가 애매하기 짝이 없지만 대중음악에서만 보자면 주류 음악(메이스트림 팝)의 흐름에 대립되는 대안음악을 의미한다. 즉, 비주류 스타일의 음악이다. 소규모 독립적인 인디 음악이라고 해서 모두 다 지부류라고 볼 수는 없으니 오해는 없기 바란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장르라기보다는 그것을 하는 태도나 방식으로 이해하는 게 맞다. 물론 독자적인 예술성을 추구하는 얼터너티브의 정신은 펑크(특히 뉴욕 펑크)로부터 이어져온 것이지만 포스트 펑크와 사이키델릭, 헤비메탈에서 모던 록 등 어떤 형식이라도 모두 얼터너티브의 범주 안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런데 소위 얼터너티브 록 밴드들의 연주에는 공통적인 느낌들이 존재한다. 예컨대 단순성(backing 위주의 기타), 전통적인 악기 편성(기타, 베이스, 드럼), 두드러지는 그루브(groove), 실험성 등등. 일정한 모양새로까지 구체화되어가고 있다.” (p.205)


그러나 어쨌든 팔십년대는 팝의 시대이니 책에 실린 뮤지션들의 면면들 중 얼터너티브 락 뮤지션들은 끝자락에나 위치한다. 대략 훑어보면 다음과 같다. 브루스 스프링스틴, 티어스 포 피어스, REO Speedwagon, 저니, 이엘오, 토토, 아시아, 스틱스, 포리너, 다이어 스트레이츠, 시카고, 보스턴, 슈퍼트램프, 더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 예스, 존 앤 반젤리스, 더 무디 블루스, 반 헤일런, 본조비, 데프 레퍼드, 메탈리카, 메가데스, 건즈 앤 로지스, 아이언 메이든, 판테라, 프랭크 자파, 로이 부캐넌, 스티비 레이 본, U2, R.E.M,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너바나, 커트 코베인, 드림 시어터, 그린데이, 오아시스, 더 스미스, 라디오 헤드, 스웨이드, 블라시보, 뮤즈, 나인 인치 네일스...


“솔직히 너바나의 음악이 대단히 훌륭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커트 코베인의 자살 때문에 과열된 신화는 아닌지도 따져볼 만한 일이다. 그러나 확실한 건, 너바나의 음악을 너바나가 아닌 누군가가 재현한다면 그 맛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들의 음악이 그저 단순하고 빤한 쓰리 코드 형식에 불과하겠지만 그 노래 속에 담겨 있는 거친 에너지와 영혼 접근적인 서술은 커트 코베인이 아니라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음악이 흥미로운 예술이다. 단순한 이야기라도 그럴싸한 포장이 아닌 삶의 진정성을 담아낸다면 그것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헤비메탈 시대에 안녕을 고했던 결정적 한 방. ‘Smells Like Teen Sprit'은 록의 역사를 얼터너티브와 모던 록의 시대로 바꿔놓은 대표적 송가였다.” (p.249)


이와 함께 책에는 소프트록, 팝 메탈, 텍사스 블루스 록, 얼터너티브 록, 모던 록, 브릿팝과 같은 장르들이 설명과 함께 포함되어 있다. 80년대로부터도 삼십여 년이 훌쩍 흘러버린 지금은 (그러니까 책에 실린 60년대, 70년대, 80년대만큼의 시간이 흘러간 셈이다) 훨씬 분화된 서브 장르들이 존재하지만 (록 음악에 한정하자면) 그 뿌리들은 이 세 권의 책에 대략 실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사실 세 권의 책을 순식간에 읽었다. 아마도 (새롭게 등장하는 노래들을 찾아서 듣느라) 잊고 있었던 청취의 순간들을 떠올리는데 이만한 책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남무성 / PAINT IT ROCK 3 : 남무성의 만화로 보는 록의 역사 / 북폴리오 / 310쪽 / 201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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