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급 적용된 어둠의 성장기, 그러나 절망적이지 않은...
《펀 홈》은 미국의 만화가인 앨리슨 벡델의 그래픽 노블이다. 펀 홈Fun Home은 그의 집안이 장례식장을 운영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벡델의 가족들은 장례식장Funeral Home이기도 한 그들의 집을 줄여서 펀 홈이라고 불렀다. 죽음과 유머를 변형시키면서 결합시키니 충분히 그로테스크하다. 만화라는 형식을 띠고 있으나 이야기는 꽤나 무겁게 흘러간다. 납득을 바라지 않는 한 가족의 이야기인데, 그래서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아버지의 단점을 주줄이 늘어놓을 수 있는데도 아버지에게 계속 화를 내긴 어렵다...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까. 또 어머니보단 아버지에게 기대하는 바가 적기 때문일지도... 어머니가 날 씻겨 준 횟수는 수백 번도 넘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뇌리에 가장 뚜렷이 남아 있는 것은 아버지가 보라색 금속 컵으로 씻겨준 기억이다... 좋은 아버지였냐고? 글쎄, 적어도 곁에 있어 주긴 했지, 라고 말하고 싶은데 아버진 그렇지 않았다... 물론 아버지가 자살한 건 내가 스무 살이 다 돼서긴 하지만 아버지의 부재는 우리가 함께 있었던 모든 순간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팔다리를 절단한 사람이 사라진 부위에 여전히 통증을 느끼는 것과 정반대의 경우일 것이다...” (pp.28~29)
전개되는 이야기의 중심에는 나와 아버지가 있다. 나는 스무 살에 자신의 성 정체성이 레즈비언임을 아버지와 엄마에게 알린다. 나의 선언을 전달받은 엄마는 반대로 너의 아버지가 사실은 남자들과 바람을 피웠다고 나에게 알린다. 나는 커밍아웃이라는 중차대한 사건을 벌였지만 그것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없다. 자신의 아버지가 게이 혹은 양성애자였음을, 그리고 자신의 집에서 일하던 젊은 남성과도 관계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죽음은 본질적으로 어처구니없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우리 웃음도 반드시 부적절한 반응만은 아닐 것이다. 방금 전까지 여기 있던 사람이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것 아닌가. 황당하고 기막힌 일이다.” (p.53)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죽었다. 내가 아버지에게 나의 동성애 성향을 알리고 나서 사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길에서 트럭에 치어 숨졌는데, 나는 그것이 혹시 스스로 선택한 죽음은 아니었는지 의심한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퀴어한 죽음이라고 정의한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나는 커밍아웃이라는 비극적 사건의 주인공이어야 했으나, 아버지가 그 비극의 주인공 자리를 빼앗았다.
“아버지의 죽음은 새로이 닥쳐온 참사가 아니었다. 기나긴 세월에 걸쳐 서서히 벌어진 ‘오랜 참사’였다.” (p.89)
이성애자가 아니다, 라는 점에서 나와 아버지는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그만큼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나의 엄마이자 아버지의 아내였던 자리에 있는 헬렌 아우구스타 폰타나이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의 성향을 알았고, 세 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그 중 한 명이 레즈비언이라는 전갈을 보내는 순간, 자신의 남편의 성 정체성을 자신의 딸에게 폭로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녀는 교육자였으며 연극배우였다.
“네 엄마는 네가 선택을 열어 두길 바라는 것 같구나. 나도 그 입장에 동의하는데, 아마도 이유는 다를 거다. 물론 핑계처럼 들릴 테지만 누구를 위해서 그러겠니? 입장을 두둔하는 건 영웅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나는 영웅이 아니야. 그런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어?
몇 번인가, 나도 앞으로 나설 걸 그랬나 싶은 순간들이 있었단다. 하지만 젊었을 땐 진지하게 고려해 본 적이 없어. 사실 서른 전에는 아예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그때는 세상이 지금과 달랐던 게 사살이지 않냐. 마흔넷이 된 지금에 와서 젊을 때 그랬다고 해도 뭔가 좀 나아졌을 거라고 생각하기가 어렵다.“ (p.217)
나는 이 그래픽 노블이 나와 아버지 그리고 엄마이자 아내였던 한 여인의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아슬아슬하였던 한 가족이 알면서 모르면서 보낸 각자의 스무 해에 대한 기록으로 보이기도 한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았던 그 시간들을 무사히 통과한 작가 자신의 소급 적용된 어두운 성장기로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이것이 절망과 좌절의 기록으로 읽히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앨리슨 벡델 글 그림 / 이현 역 / 펀 홈 : 가족 희비극 (FUN HOME : A Family Tragicomic) / 움직씨 / 238쪽 / 2018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