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도 《우두커니 : 늙은 아버지와 사는 집》

너무 긴밀하고 간곡하게 동의되는 슬픔으로...

by 우주에부는바람

*2022년 12월 22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지난 월요일 아버지를 집으로 픽업하기 위하여 들른 투석 병원에서 아내가 골라 준 쿠키 세트를 수간호사님에게 전달했다. 투석이 끝나기 전 지루함을 참지 못하여 몸을 일으켜 앉아 있는 아버지에게 간호사들은 종종 사탕을 건넸다. 나는 그날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한테 사탕도 주시고 잘 돌봐주셔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간호사들에게 쿠키를 선물하였다고 알려드렸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가 V.I.P 대접을 받겠구나.” 흡족해하셨다.


“나는 당황했다... 말문이 막혔다... 영문도 모를 비난 섞인 말보다, 아버지의 얼굴에 몹시 놀랐다... 아버지의 얼굴이 아니었다.” (p.22)


《우두커니》는 (까페 여름에서 잠시 들춰보았다가 결국 구매하게 된) 치매 아버지를 다룬 만화이다. 아내인 심흥아가 이야기를 만들고, 남편인 우영민이 그림을 그리는데 이 합동 작업은 심우도라는 필명으로 이뤄진다. 《우두커니》는 실제 작가인 심흥아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한집에 살면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들을 토대로 한다. 다음 웹툰에서 2018년 3월에서 2019년 4월까지 연재되었고, 이후 2019년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혼잣말인지 잠꼬대인지 알 수 없는 아버지의 말소리가 자는 동안 중간중간 들려왔다... 창밖으로 어둠이 깔리면, 아버지는 머릿속이 캄캄해지고 그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 같다. 그곳에는 별도 달도 없는 모양이다.” (p.74)


책을 읽는 동안 몇 차례 눈물을 흘렸는데, 너무 긴밀하게 동의되는 슬픔 때문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지난 4월 코로나에 걸린 이후 인지저하가 시작되었고, 나는 그 시작에서 지금까지를 진행형으로 겪는 중이다. 동네 치매안심센터에서 테스트를 받을 때도, 병원에서 각종 검사 후 인지저하를 확인받을 때도 아버지와 동행하였다. 정신의 쇠락은 육체의 쇠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삼년째 폐암으로 투병 중이던 아버지에게서) 또다른 발원지의 희귀 암이 발견되었고, 기능을 잃은 신장으로 인하여 투석이 시작되었다.


“아빠가 언니와 엄마를 찾았다. 왜 안 오느냐고, 왜 연락이 없냐고, 화를 내셨다. 아마도 ‘보고 싶다’는 단어를 잊어버리신 것 같다.” (p.264)


그나마 나를 안심시킨 것은 아버지의 치매가 ‘착한 치매’라는 점이다. (책에는 ‘예쁜 치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책에서 지은이는 아버지의 무섭게 변한 얼굴을 여러 차례 언급하는데, 나의 아버지는 확실히 늙어졌지만 동시에 순진무구한 온화함이 생겼다. 아버지는 착하고 순한 아이처럼 되었다. 내가 아들로서 지금껏 들어보지 못하였던 고맙다, 미안하다와 같은 말들을 이제는 매일 듣고 있다.


“가로등 아래, 폭우 속에서도 고목처럼 꼿꼿하게 서계시던 아버지는.. 가느다란 빗줄기에도 힘없이 흩어지는 작은 꽃잎이 되어버렸다.” (p.154)


지난 달이던가 아버지는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으며 아, 행복하다 라고 정말 행복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엄마는 뭐가 그렇게 행복하냐고 물었더니, 아버지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당연히 행복하지, 라고 답했다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잠시나마 ‘흩어지는 작은 꽃잎’이 되어가는 아버지로부터 위안을 받게 된다.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흡, 하고 숨을 들이켰는데, 나중에 이 위안의 상황이 불현듯 나를 찾아오게 될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심우도 / 우두커니 : 늙은 아버지와 사는 집 / 심우도서 / 437쪽 / 20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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