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누군가 내게 "괜찮아 보여요"라고 말할 때, 나는 문득 멈칫할 때가 있다. 그 말은 위로였을까, 아니면 예의였을까? 혹은 진심 어린 격려였을까?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진실과 거짓 사이를 오가며 말한다. 그중에서도 하얀 거짓말, 즉 "상대방을 배려하거나 갈등을 피하기 위한 선의의 거짓"은 사회 곳곳에서 흔히 발견된다.
"이 음식 정말 맛있네요."
" 그 발표 잘 들었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듣는 사람은 위로를 받고, 말하는 사람은 갈등을 피한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정말로 하얀 거짓말은 "필요한 덕목일까?"
하얀 거짓말은 인간관계의 마찰을 줄여주는 완충장치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전할 때보다, 감정을 고려해 표현을 순화하거나 살짝 굽혀 말하는 것이 더 유연한 관계를 만든다.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고 "그림 참 창의적이네"라고 말하는 것, 병상에 있는 가족에게 "금세 나아질 거야"라고 격려하는 것 등은 모두 상대를 배려하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모든 배려가 결국 옳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하얀 거짓말도 '거짓'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이 반복될 때, 관계는 점점 허공에 떠 있게 된다.
나를 늘 칭찬만 해주는 사람이 어느 순간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지나친 긍정은 신뢰를 앗아갈 수 있다.
더 나아가 하얀 거짓말은 누군가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 수 있다. 잘못된 정보가 되돌릴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직장에서 상사가 부하 직원의 부족한 업무 능력을 돌려 말하거나, 사실과 다른 긍정적인 평가만 할 경우, 그 직원은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채 기회를 잃는다.
아이의 성장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진심 없는 칭찬은 자존감을 보호해 주는 듯 보이지만, 정작 현실을 직시하고 노력하게 만드는 힘은 약하다
그렇다면 해답은 "무조건적인 정직"일까? 그렇지도 않다. 진실은 전하는 방식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상처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공감'과 '진심'이다.
하얀 거짓말 대신, 진실을 담되 따뜻하게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노력한 흔적이 보여서 인상 깊었어요"라는 말은 거짓 없이도 상대를 배려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얀 거짓말이 필요한가에 대한 물음은, 결국 우리가 어떤 인간관계를 원하는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평온 하지만 속이 비어있는 관계와, 때로는 불편하더라도 진심이 오가는 관계, 우리는 둘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진실과 배려는 양자택일이 아니다. 우리는 진심을 유지하면서도 다정하게 말할 수 있다.
거짓 없는 말에 온기를 담을 수 있다면, 하얀 거짓말은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