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말을 하고, 또 듣고 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 말은 끊임없이 쏟아지고, 정보는 실시간으로 주고받아진다.
커뮤니케이션의 속도는 빨라졌고, 접속의 밀도는 더욱 촘촘해졌다. 그러나 이처럼 말이 넘쳐나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침묵'이다.
1. 말의 과잉, 사유의 빈곤
SNS와 뉴스, YouTube와 댓글, 실시간 채팅까지,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정보와 의견에 노출된다.
문제는 그 대부분이 '깊이'보다는 '속도'에, '맥락'보다는 '자극'에 방침을 둔다는 데 있다.
말은 많지만, 그 안에 사유는 적다. 빠르게 반응하고, 쉽게 말하지만, 충분히 생각하지 않는다.
급하게 표현된 감정은 갈등을 키우고, 말의 과잉은 때로 진실을 가린다. 과잉 소통의 시대에 침묵은 단지 말의 부재가 아니라, 생각의 공간이며 관계의 여백이다.
2. 침묵은 도피가 아니다
우리는 종종 침묵을 '소극성'이나 '비겁함'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진정한 침묵은 오히려 용기가 필요하다.
나의 입장을 당장 드러내지 않는 것, 쉽게 판단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 감정을 누르고 귀 기울이는 것, 이러한 침묵은 비겁함이 아니라, 깊이와 품격의 표현이다.
특히 소음과 논쟁으로 가득 찬 공론장에서 침묵은 하나의 윤리적 선택이기도 하다. 말이 많을수록 책임은 가벼워지고, 말이 적을수록 책임은 무거워진다.
침묵은 자신의 말에 무게를 두는 방식이며, 생각이 행동보다 앞서도록 기다리는 태도이다.
3. 침묵은 관계를 보호한다
침묵은 단절이 아니다. 오히려 관계를 보호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불필요한 설명을 줄이고, 감정적 언어를 자제하는 침묵은 상대를 향한 배려이기도 하다.
때로는 말보다 조용한 존재감이 더 깊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특히 위기의 순간, 갈등의 국면에서 침묵을 "피하기 위한 회피"가 아니라, 깨지 않기 위한 노력이 될 수 있다.
4. 침묵은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이다
무엇보다 친목은 내면의 회복을 위한 시간이다. 고요 속에서 우리는 나를 바라보게 된다. 바쁜 일상,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묻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침묵은 외부로 향하던 관심을 거둬들여, 자신을 점검하고 재정비하는 내면의 거울이다.
5. 지금 우리에겐 침묵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말이 아니라, 말 사이의 공백을 존중할 때이다. 정치도, 사회도, 개인의 삶도 너무 많은 말로 지쳐있다.
진실은 언제나 고요한 얼굴을 하고 다가오고, 관계는 말보다 눈빛과 시간 속에서 자란다.
침묵은 위기 속에서 책임 있는 성찰을 낳고, 혼란 속에서 방향을 되찾는 첫걸음이 된다. 말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침묵은 가장 지혜로운 언어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말이 아니라, 더 깊은 침묵일지도 모른다. '가파도' 오솔길을 걸으며 잠시 침묵에 잠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