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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누적되면

살며 생각하며

by 송면규 칼럼니스트

'경험이 누적되면 생각이 달라진다."

이 단순한 문장이 내게는 오랜 세월을 통과해 얻은 하나의 삶의 정리처럼 다가온다.


젊은 시절에는 '올바름'과 '정답'이라는 단어에 몰입했다. 정확한 이론과 빠른 판단이 유능함의 증표였고, 어떤 일에 대한 나의 확신이 곧 진실이라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인생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옳고 그름의 경계는 흐릿하며, 확신은 때로 위험하다는 것을.


나는 오랫동안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강의 내용이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렸고, 수업에 빈틈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질문을 받으면 정답을 줘야 하고, 오류는 즉각 바로 잡아야 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해가 거듭될수록 점점 더, 나는 내 강의에서 '그런 의미도 있을 것 같다'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 부분은 복잡한 맥락이 있으니 단정하기 어렵다"거나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식의 말들이 늘어났다. 경험이 누적되면서 나는 진실이란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과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열리는 문화라는 것을 깨달았다.


비단 강의실뿐 아니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다. 젊을 때 나는 사람들을 평가하고 분류하는 데 익숙했다.


성실한 사람, 게으른 사람, 똑똑한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하지만 살아온 날들이 쌓이자, 그 이분법적 분류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 알게 됐다.


누군가가 지각을 반복하는 이유는 단지 무책임해서가 아니라, 매일 아침 육아와 병간호를 병행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말이 느린 학생은 게으른 것이 아니라, 언어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두 배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던 걸 수도 있다.


이처럼 경험은 판단을 유예하게 만들고, 사람의 사정을 헤아릴 줄 아는 눈을 길러준다. 이것은 이론으로는 배울 수 없는, 삶이 건네는 조용한 가르침이다.


경험이 누적된다는 것은 단지 나이를 먹는다는 뜻이 아니다. 반복되는 실패와 성공, 고통과 기쁨의 상황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과 온도를 익히는 일이다.


예컨대, 예전 같았으면 감정적으로 반응했을 어떤 상황에서도, 이제는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게 된다.


급하게 결정을 내리지 않고, 때로는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걸 알게 된다. 세상은 서두르지 않아도 될 일들로 가득하고, 참는다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강인함의 표일 수도 있다는 사실도 경험이 가르쳐주었다


나는 이제 누군가 내게 조언을 구할 때, 섣불리 답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질문을 함께 되묻고, 그 사람의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답이 솟아오르도록 돕는 것이 더 깊은 배려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경험이 누적되면 말은 줄어들고, 경청은 늘어난다. 확신보다는 여백이, 정의보다는 이해가 중요해진다. 이제는 생각한다


젊은 날의 내가 틀렸던 것이 아니다. 단지 모든 걸 알 수 없었다는 것을 몰랐을 뿐이다. 그 시절에는 그 시절 나름의 빛이 있었고, 지금의 나는 그 빛을 돌아보며 새로운 눈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결국 경험이란, 우리를 조금 더 유연하게, 조금 더 단단하게, 그리고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다.


경험이 누적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간이 완성되어 가는 또 하나의 이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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