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인내가 아니고, 고통이다?
기다림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단지 어떤 대상에 도착하거나, 어떤 사건이 발생하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기다림은 우리 존재의 깊은 차원에서 벌어지는 감정적, 철학적 경험이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을 견디는 일이자, 오지 않은 미래를 향해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기다린다. 어린 시절엔 엄마의 손길을 기다리고, 아버지의 퇴근을 기다리며 하루를 마감한다.
학교에 다니면 방학을, 시험 결과를, 그리고 친구의 전화를 기다린다. 청춘이 되면 사랑을 기다리고, 기회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바란다.
성인이 된 후에도 기다림은 끝나지 않는다. 이직의 기회를, 아이의 성장을, 부모님의 병이 호전되기를 기다리고, 삶이 조금은 나아지기를 바란다.
이처럼 기다림은 인간 삶의 저변에 흐르는 본질적 정서다. 하지만 기다림은 본디 불안과 함께 온다. 따라서 기다림의 본질은 '기대'가 아니라 '불확실성'이다.
기다리는 것은 "기다리는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내포한다. 우리는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는 미래를 향해 마음을 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다림은 고독하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함께 있어도, 결국 기다림은 자기 혼자의 시간이다. 누군가의 돌아옴을 기다리는 시간, 어떤 확신이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 그 모두를 혼자 견뎌야 한다.
기다림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그것이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조급함에 익숙하다. 인터넷 검색 몇 초로 거의 모든 정보를 얻고, 음식도 3분 안에 조리가 된다.
기다리는 시간은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은 속도가 아니라 '숙성'으로 다가온다.
사랑도, 신뢰도, 치유도, 배움도 시간이 걸리는 일들이다.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안다. 걷지 못하던 아이가 어느 날 툭, 한 발을 떼는 기적을.
그 순간은 단숨에 온 듯 보이지만, 실은 수개월의 기다림과 눈물과 미소가 쌓여온 시간의 결정체다. 자녀의 사춘기 또한 마찬가지다.
변화와 침묵의 시간, 그것을 밀어붙이기보다 묵묵히 곁을 지키며 기다리는 부모만이, 아이와 다시 이어질 수 있다.
기다림은 사랑의 다른 얼굴이다. 문학도 예술도 기다림에서 태어난다. 시인은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소설가는 인물의 목소리가 스스로 말하기를 기다린다.
음악가는 한 음의 침묵을, 화가는 하얀 캔버스 위에 영감을 기다린다. 작품은 작가가 무언가를 만들기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그 형상을 드러낼 때 완성된다.
창작이란 기다림과의 대화이기도 하다.
자연은 기다림의 교사다. 겨울에 나목은 말이 없다. 봄이 언제 올지 모르고, 꽃이 필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는 것, 그것이 기다림이다.
시간에 몸을 내어 맡기고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자세, 인간은 종종 잊는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지만 결코 멈추지도 않는다는 것을.
인간의 성장도 그와 다르지 않다. 기다림은 때때로 '치유'의 시간이기도 하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고 약을 먹지만, 결국 회복을 가능케 하는 것은 '시간'이다.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다. 조급하게 덮으려 하면 도리어 더 깊은 흉터가 남는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아픔과 함께 존재하는 법을 배우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픔도 점차 스스로 자리를 잃는다.
기다림은 상처를 덮는 붕대와 같다. 중요한 것은,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다. 무작정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 속에서 나 자신을 가꾸고, 스스로를 지키는 일, 그것이야말로 능동적 기다림이다.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누군가의 안부를 물으며, 매일의 일상을 충실히 살아 내는 사람은 결국 원하는 것을 만나게 된다.
아니, 원하는 것이 오지 않더라도 더 단단한 자신을 만나게 된다. 기다림은 결과보다 과정이다. 도착하지 않아도 괜찮다.
누군가가 돌아오지 않아도, 어떤 일이 기대처럼 펼쳐지지 않아도, 기다렸다는 그 시간 자체가 우리를 다듬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기다림이 우리를 더 너그럽고 깊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면, 우리는 이미 그 기다림 안에서 성장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그리고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가? 그 기다림은 말이 없지만,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너는 지금도 잘하고 있다. 조급해하지 마라. 시간은 네 편이다." 기다림의 시간은 인생의 공백이 아니라, 내면이 가장 풍요로워지는 은밀한 축복의 시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