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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인 200만 시대

점, 얼마나 믿어야 할까?

by 송면규 칼럼니스트

"요즘 점집 다녀왔어."

이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오히려 사람들은 카페나 모임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점집 이야기를 꺼낸다.


연애, 직장, 건강, 가족 문제 등 인생의 갈림길 앞에서 '조언' 대신 '점괘'를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최근 한 보도에 따르면, 국내 무속인의 수가 약 2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법적으로 등록된 숫자는 이보다 훨씬 적지만, 실제로 활동하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그만큼 된다는 이야기다.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이 현상은 우리 사회의 집단 심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고구려 벽화 속에서도 무당의 모습이 보일 만큼, 무속은 한국인의 삶 깊은 곳에 뿌리내려 왔다. 그만큼 무속은 한국인의 오랜 전통이다.


굽이진 산과 물줄기가 많은 이 땅에서, 사람들은 자연의 이치와 조상의 뜻을 헤아리며 삶의 방향을 찾아왔다. 무속은 단지 길흉화복을 묻는 행위가 아니라,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마음을 다잡고 위로를 얻는 방식이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무속을 단순한 미신으로 치부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곧 한국인의 심성 깊숙한 곳에 자리한, "삶을 해석하는 방식"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요즘 다시금 점집과 무속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전통의 부활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늘날 무속과 점이 다시 인기를 끄는 데는 다른 사회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불안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현실, 수시로 바뀌는 사회 환경과 경쟁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확실한 말 한마디"를 갈망한다.


불안한 마음이 클수록, 사람은 확신을 찾으려 하고, 그 확신의 형태가 점괘가 되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전통적으로 무속과 거리를 두던 20~ 30대 청년층에서도 점집 방문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이 어렵고, 직장에 들어가도 미래가 불투명하며, 연애와 결혼, 주거 문제까지 겹쳐 삶의 방향성이 흐려진 시대,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이 선택이 맞는 걸까?" 같은 질문을 던지며 젊은 세대는 점을 통해 '확인'을 받고 싶어 한다.


"그냥 해봐라"라는 말보다, "지금 운이 들어왔어"라는 말이 더 위로가 되어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점은 믿을만한가?


'점'은 대부분 애매하고 해석의 여지가 많은 말들로 구성된다. "앞으로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다" , "지금은 큰 결정을 미룰 때" , "곧 좋은 기회가 온다"는 식의 일반화된 표현들은 누구에게나 통할 수 있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바넘효과(Barnum Effect)"의 대표적인 예다.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이야기라고 느끼면, 그것이 진실이라 믿으려는 경향을 갖는다.


결국, 점은 그 자체가 정확하다기보다,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점의 남용은 자기 책임을 외면하게 만들 수 있다.


삶의 주도권을 외부에 넘기는 순간, 우리는 자기 삶의 결정권자가 아닌 "수동적 존재"가 되기 쉽다. 잘 되면 "운이 좋았고", 안 되면 "때가 아니었다"는 식의 해석은 자기 성찰의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


삶의 중요한 결정에서 점에 의지하게 되면, "내 선택"을 "남의 해석"에 맡기게 되고, 이는 곧 자율성과 성장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점을 무조건 부정할 필요는 없다. 점은 오히려 내면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점을 보는가"이다. 그저 재미 삼아 보는 것이라면, 오히려 점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자각하게 해주는 거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거울을 현실 도피의 도구로 삼는 순간, 삶은 점괘에 끌려다니는 방향 없는 배가 되고 만다. 불확실성의 시대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더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 삶은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여정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가는 여정이다.


점이 나에게 용기를 줄 수는 있지만, 방향은 내가 정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점괘를 받아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오늘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나의 선택에 책임질 용기를 가졌는가?"이다.


'점'은 질문이지, 답이 아니다. 답은 언제나, 나의 삶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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