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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경제학" 고찰

가난을 이해하는 새로운 눈

by 송면규 칼럼니스트

우리는 가끔 이렇게 생각한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복권을 자주 사고, 병원은 잘 가지 않으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데도 무심한 걸까?"


겉보기에는 비합리적이, 때론 무책임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생각 속에는 중요한 오해 하나가 들어있다.


가난한 개인의 게으름이나 판단력 부족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보지 못한 구조와 상황이 따로 있는 걸까?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하는 학문이 있다. 이름하여 "빈곤 경제학"이다.


첫째, "가난한 사람들은 왜 그렇게 행동할까?"에서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로.


빈곤 경제학은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보히지트 바네르지와 에스테르 뒤플로 교수가 중심이 되어 연구해 온 분야이다.


이들은 인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세계 여러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연구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단지 가난해서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선택의 폭 자체가 좁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예를 들어본다.


한 인도 농부는 하루 1~2 달러의 돈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그는 자녀에게 백신을 맞히기 위해 하루 일과를 멈추고, 병원까지 먼 거리를 걸어가야 한다.


거기서 긴 대기 시간과 의료진의 무성의 함을 감당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보면 하루 벌이가 사라지고, 가족의 식사도 줄어든다.


그러니 백신을 안 맞히는 것이 게으른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한 현실적인 판단일 수 있는 거다.


또 다른 예로, 누군가는 왜 자녀 교육보다 당장의 생계에 집중할까? 의아해 할 수 있다. 하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보다 오늘 하루 끼니 해결이 먼저인 상황에서는 먼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둘째, 가난은 "돈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선택지가 사라진 삶"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빈곤'은 단순히 통장에 돈이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빈곤 경제학은 가난을 더 깊이 바라본다. 가난은 "선택의 자유가 사라지는 상태"이다.


돈이 부족하면 병원을 가는 것도,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것도, 내일을 계획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당장의 생존이 우선이기에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기 힘들다.


이는 마치 좁은 길에서 선택지를 놓고 고민할 시간조차 없이 앞으로 밀려나는 상황과 비슷하다.


심리학적으로도 가난은 우리 뇌에 큰 부담을 준다. 미국의 연구에 따르면, 빈곤 상태에서는 스트레스와 걱정이 늘어나고, 집중력• 판단력• 기억력까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하루하루 생존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실제로 생각할 에너지조차 고갈된다는 것이다.


셋째, "도와주기" 보다 "이해하기"가 먼저이다.


정부나 단체가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려고 할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바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태도이다.


예를 들어,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이 많으니 무상교육을 확대하자" "의료 서비스가 부족하니 백신을 무료로 주자"는 식의 정책에 있다.


물론 이런 노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학교에 가기까지 거리 문제, 교사 부재, 성적을 내도 일자리가 없는 사회 구조 등이 함께 작용한다.


단순히 책상과 칠판을 놓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빈곤 경제학은 그래서 실험을 중요시한다.


현장에서 실제 정책을 적용해 보고, 어떤 방식이 가장 효과적인지를 꼼꼼히 측정한다.


예를 들어, 인도의 한 지역에서는 백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접종한 사람에게 쌀이나 렌틸콩 한 봉지를 선물했더니 참여율이 훨씬 높아졌다. 작은 보상이 큰 변화를 만든 것이다.


셋째 우리 사회 안에도 "보이지 않는 빈곤"이 있다.


빈곤 경제학은 단지 먼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도 "가난하지만 조용한" 사람들이 많다. 고시원에서 하루하루 버티는 청년, 알바 3개를 뛰며 자녀를 키우는 한부모 가정, 지병으로 병원을 자주 가야 하지만 의료비가 부담스러운 노인•••


이들의 삶도 역시 선택의 자유가 줄어든 빈곤 경제학 안에 들어있다. 빈곤은 단지 "돈이 없는 문제"가 아니라, 기회와 시간, 여유와 존엄이 사라지는 문제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지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들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삶의 조건을 조금씩 바꾸는 정책과 공감이 필요하다.


끝으로 묻고 싶다. 우리는 과연 "성공한 사람의 경제학"만 말할 것인가, 아니면 "가난한 사람의 경제학"도 함께 이야기할 것인가?


빈곤 경제학은 이렇게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게으르지 않다. 그들은 이미 자신이 가진 자원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삶을 향한 편견을 거두고, 그 안에 깃든 합리성과 존엄을 함께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향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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