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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구속된 전직 대통령을 바라보며

권력의 끝은 왜 늘 추락인가

by 송면규 칼럼니스트

이재명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가장 먼저 착수한 과제 중 하나는 "내란 혐의"에 대한 진상 규명 아닌가 싶다.


특별 검사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재임 말기에 모종의 비상계엄 시나리오를 검토했다는 문건을 바탕으로 수사를 확대했고, 끝내 그에 대한 재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을 결정했다. 직권남용 권리 행사 방해, 특수공무 집행 방해, 군형법 위반 등 중대한 혐의가 그의 이름 앞에 붙었다.


윤 전 대통령은 모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정치적 보복이라는 강한 어조의 반박도 이어졌다. 하지만 법원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국민 다수는 이제 그의 말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힘 있었던 자"의 언어가 더는 통하지 않는 시점이다.


퇴임 후에도 정치 무대 한복판에 서 있던 그가, 이제는 구속된 피의자로 전락한 현실이야말로 그 모든 말의 무게를 앗아간다.


이번 사건에서 국민의 감정이 가장 크게 동요한 지점은 비상식적인 "비상계엄"이라는 단어였다. 촛불 혁명 이후 대한민국이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갔다는 믿음이 있었던 터다.


그런데 그 믿음을 무너뜨릴 법한 문건이 실제 존재했고 그것이 대통령실 주도로 검토됐다는 정황이 드러났을 때, 많은 시민은 충격과 배신감을 동시에 느꼈다.


아무리 가설적이고 계획 단계에 불과하다고 해도, 헌법 질서를 무력화할 의지가 일부라도 존재했다면, 그것은 명백한 민주주의 파괴 시도다.


윤 전 대통령은 누구보다 '법'과 '정의'를 입에 달고 살았던 인물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검찰총장으로서 청와대를 겨냥한 수사를 밀어붙였고, 그 기세로 대권까지 거머쥐었다.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한다"라는 원칙은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원칙이 일관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집권 이후에는 권력의 칼날이 야당과 언론, 시민사회로 향했고, 정적 제거에 법치가 악용된다는 비판이 거세졌다.


결국 그 칼날이 이제 자신을 향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러니하면서도 어쩌면 예고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많은 국민은 더 이상 대통령의 재구속이라는 뉴스를 놀라워하지 않는다. 박근혜, 이명박, 이제 윤석열까지.


이 땅에서 대통령직이란 과연 명예로운 자리인가, 아니면 추락을 예약한 자리에 불과한가? 대통령에 대한 잇단 구속은 단지 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이는 한국 정치가 여전히 제왕적 대통령제의 구조 속에서 권력 집중과 남용을 반복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법 위에 군림하는 자리에 놓이면, 누구라도 오만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 윤 전 대통령은 그 함정에 빠졌고,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희생양이라 주장한다. 정적들이 정권을 잡자, 보복을 시작했다는 식의 주장은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국민 다수에게는 공허하는 반향으로 들린다.


과거 자신이 문재인 정부를 향해 들이댔던 검찰권의 칼날을 생각해 보면, 지금의 항변은 지나치게 이중적이다.


국민은 공정한 잣대를 원하지, 진영 논리에 기대어 억울함을 호소하는 전직 대통령의 눈물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결국,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구속은 상징적이다. 그것은 개인의 몰락이 아니라, 이 땅의 권력이 얼마나 쉽게 타락하고, 얼마나 허약한 도덕 기반 위해 세워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거울이다.


"힘 있는 자의 말"이 언젠가 "자기주장"으로 전락하는 순간, 권력은 더 이상 권력이 아니다. 김동길 박사의 말처럼. "힘없는 자의 주장은 자기 독백에 불과하다". 윤 전 대통령의 주장 역시, 지금은 힘을 잃은 언어에 불과하다.


이 땅에서 대통령이란 직책은 여전히 "정치적 고지"가 아니라 "법적 함정"처럼 보인다. 왜 우리는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는 일에 익숙해져야 하는가.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권력을 둘러싼 구조적 무책임과 권력남용의 관행이다. 법 위에 군림하겠다는 착각이 반복되면서, 대통령의 권위는 추락했고, 국민은 깊은 냉소 속에 정치 전반을 외면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재구속은 단지 법적 절차의 일환이 아니다. 그것은 지난 정권의 오만과 착각에 대한 냉혹한 청구서이며, 한국 정치가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비극의 전조다.


권력은 끝까지 조심해야 하며, 지도자는 물러나서도 존경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또 한 명의 지도자를 비참하게 떠나보내고 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는 한, 한국 정치의 미래는 여전히 어둡다.


이번 사건은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보복의 굴러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정치의 책임 부재, 권력의 통제 실패, 제도의 미비,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빚어낸 복합적인 산물이다.


우리 정치 전체가, 특히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국민 앞에서 어떤 책임으로 끝맺음을 해야 하는지 묻지 않으면, 안타깝지만 이 악순환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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