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어릴 적 아버지는 "가까이 있지만 먼 사람"이었다. 같은 지붕 아래에 살면서도, 거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기란 어려웠다.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억누르고, 사랑을 표현하기보다는 책임으로 대신했던 세대, 아버지는 그렇게, "말보다 행동"으로 살아가는 존재였다.
아버지 세대에게 '부성'이란 곧 '인내'였다.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흔들려서는 안 되었고,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다.
자신의 욕구는 뒤로 미룬 채, 자식과 가족을 우선해 두는 것이 당연했다. 칭찬보다는 훈육, 공감보다는 침묵이 앞섰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 조용한 사랑을 우리는 오래도록 이해하지 못했다. "왜 아버지는 늘 무뚝뚝하실까"라는 질문을 마음에 품고 자랐다.
아버지의 침묵은 사랑의 부족이 아니라, 시대가 만든 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은 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아버지의 자리에서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가족 앞에서 지켜야 할 '척하는 평온'이 얼마나 외롭고 고된지"
이제 시대는 변했다. 부성의 모습도, 그 의미도 달라졌다. 더 이상 아버지는 말없는 존재가 아니다. 요즘의 아버지들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자녀와 감정을 나누며 , 가정 속에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자신을 표현한다.
과거에는 "가정 밖의 존재"였던 아버지가, 이제는 "가정 안의 동반자"가 된 것이다. 남성성의 정의가 강인함이나 희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시대, 아버지는 더 섬세해지고 더 유연해졌다.
그러나 그 변화는 단절이 아니라, 연속의 결과다. 우리 안에는 여전히 "우리의 아버지"가 살아 있다.
퇴근 후에도 묵묵히 소파에 앉아 말없이 TV를 보던 그 모습, 말수는 적어도 아이들의 방학과 성적, 몸 상태를 누구보다 먼저 챙기던 그 눈빛, 그 모든 기억은 지금의 우리를 구성하는 밑그림이다.
어쩌면 부성이란, 시대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사랑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과거엔 굳건함으로, 오늘날엔 공감으로. 변하지 않는 것은 그 안에 담긴 마음이다.
아버지들은 세월을 거치며 여전히 가정을 중심에 두고 살아간다. 다만 이제는 말하고, 표현하고,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시대가 된 것뿐이다.
아버지의 역할이 변하고 있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변화를 인정하고 환대하는 것이다.
오래된 부성에 감사하며, 새로운 부성을 응원하는 것,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도록, 그리고 아버지를 더 깊이 이해하고 존중할 수 할 수 있도록.
세월과 함께 부성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같다. 삶을 밀어내고 가족을 끌어안는 그 깊고 조용한 사랑, 그 사랑을, 이제는 더 이상 늦기 전에 말로 전하고 싶다.
"남자의 삶" 집필 마치고 동두천 계곡 산책하면서, 조용히 읊조려본다. "아버지, 그때는 다 표현 못했지만, 정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