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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무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존재를 믿는 용기

by 송면규 칼럼니스트

1907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한 병원, 의사 던컨 맥두걸은 죽음을 앞둔 6명의 환자를 침대 위에 눕히고, 정밀 저울을 설치했다.


목적은 단 하나, 죽는 순간 인간의 몸무게가 변하는지를 확인하는 것. 그는 실험 결과, 환자가 사망하는 순간 "약 21g의 무게가 사라졌다"고 발표했다.


그는 그 무게를 "영혼의 무게"라 불렀다. 그런데 이 실험은 곧 과학계로부터 외면받았다. 표본은 적었고, 측정 방식은 부정확했으며, 통제 변수도 많았기 때문이다.


과학은 반복성과 객관성을 요구한다. 맥두걸의 실험은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이 숫자를 잊지 않았다.


어쩌면 맥두걸이 남긴 것은 하나의 과학적 발견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론적 상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싶은 마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존재를 종종 직감으로 느낀다. 사랑, 그리움, 양심, 기억, 영혼 같은 것들은 무게도, 색도 없지만, 분명히 우리 삶의 중심에 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그 존재의 '무게'를 더 깊이 느낀다. 육체는 남아 있지만, 더 이상 숨 쉬지 않는 몸 앞에 우리는 묻는다.


"그는 어디로 갔는가?"

과학이 말하듯, 단지 심장 박동이 멈추고, 세포 활동이 정지했기 때문이라고 믿기엔 어딘가 허전하다.


맥두걸의 21g 실험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그 숫자에 마음을 기대며 말한다. "그래도 뭔가 남아 있었던 거야."


그 믿음이야말로, 인간만이 지닌 가장 순수한 감정, 존재의 의미에 대한 사유 아닐까 싶다.


둘째, 그 21g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렇다면, 그 21g 안에는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 어쩌면 그것은 한 인간의 기억과 감정의 총합이었을지도 모른다.


부모를 향한 애틋함, 친구에게 흘린 웃음, 연인을 안았던 온기, 끝내 전하지 못한 사과, 불현듯 떠오르는 슬픔, 소중한 책 한 권, 오래 묵힌 꿈 하나•••


그리고 마지막 순간, "잘 살았어" 혹은 "좀 더 살아 볼 걸" 하는 속삭임까지. 우리는 그 21g을 통해 인생을 역으로 측정해 보기도 한다.


내가 살아온 시간은 무게를 가졌는가?

그 무게는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였는가? 내가 떠난 뒤에도 누군가의 삶 속에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을 수 있을까?


셋째, 죽음은 '끝'이 아니라 '이음'일 수 있다.


삶과 죽음을 단절된 개념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인간은 종종 그것을 이어진 흐름으로 이해하고 싶어 한다.


영혼이 21g으로 빠져나간다는 상상은, 죽음이 단절이 아니라 어딘가로의 이동, 새로운 여정의 출발일 수도 있다는 믿음을 낳는다.


종교는 그 믿음을 체계화했고, 문학은 그 신비를 서사로 옮겼으며, 예술은 그 무형의 세계를 형상화해 왔다.


죽음의 순간조차 고요히 받아들이는 사람, 혹은 마지막까지 손을 꼭 잡아주는. 사람은 이 믿음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숫자는 과학적 실험 결과가 아니라, 삶과 죽음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었다. 그래서 21g은 '떠남'이 아니라 '남겨짐'을 뜻하기도 한다.


넷째, 삶의 무게는 얼마나 되는가?


어쩌면 진짜 질문은 이것일 것이다. "당신은 지금, 무엇으로 당신의 삶을 채우고 있는가?" 우리는 종종 몸의 무게는 신경 쓰면서, 삶의 무게는 간과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존재는, 그의 몸무게보다도 훨씬 무겁다. 어떤 이는 한마디 말로 세상을 바꾸고, 어떤 이는 짧은 존재로도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삶의 무게는 나의 선택, 태도, 사랑의 깊이, 용기의 크기로 정해진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모여, 마지막 21g 안에 압축되어 담기는 것이다.


결국, 21g이라는 숫자는 오늘도 과학의 한계 밖에서 우리에게 말을 건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당신은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 숫자는 단지 죽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을 더 깊이 살아야 할 이유"를 우리에게 말해주는, 가장 작은 울림이자, 가장 무거운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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