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살다 보면 마음에 금이 간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조심조심 꿰매어놓지만, 문득 바람이 스치기만 해도 다시 아프다. 그렇게 조용히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말없이 상처를 끌어안고, 아물지 않은 채 하루를 견디는 사람들. 나는 종종 그런 사람들에게, 그리고 과거의 나에게 묻는다.
"그 상처는, 과연 무엇을 준비하고 있었을까? 희망이었을까?"
많은 이들은 말한다. 상처는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이며, 고통은 더 깊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말이 너무 쉬운 위로로 들릴 때가 있다. 마치 상처가 곧장 희망으로 이어지는 공식처럼 이야기될 때, 나는 마음 한켠이 불편해진다. 상처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한때 상처를 부정하며 살았다. "별일 아니야', "지나가겠지", 그렇게 감정을 밀어내고 덮어버렸다.
눈물은 약하다는 신호였고, 괜찮다는 말은 내가 붙들 수 있는 유일한 체면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알게 되었다. 억눌러둔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말없이 마음의 밑바닥을 흐르며, 삶의 방향을 조용히 틀고 있었다.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감정을 회피할수록, 그 감정은 더 큰 힘으로 되돌아온다."
결국 회복이란, 고통을 부정하는 데 있지 않다. 상처받은 나를 정직하게 바라보고, 그 아픔을 느낄 용기를 낼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울지 않으려 애쓰기보다, 충분히 올 수 있을 때 마음은 조용히 숨을 쉬기 시작한다.
상처가 희망이 되려면, 그 사이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었을까?"라는 원망 대신, "나는 이 고통을 어떻게 견디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때론 그 물음 하나가 방향을 바꾼다. 그것이 바로 회복탄력성, 심리학이 말하는 마음의 복원력이다.
성장은 고통을 감춘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 할 때 조심스럽게 움튼다.
이처럼 상처란, 삶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한 번 멈춰 서서 나를 바라봐 줘"라고,
이제 나는 안다. 상처가 곧 희망은 아니지만, 희망은 상처에서 출발할 수 있다는 것을. 그 차이는 작지만 크다.
상처를 견디는 동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조건적인 긍정이 아니라, "그래도 너는 괜찮아"라는 조용한 자기 연민이다.
그 말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결심처럼 들린다. 다시 일어서보겠다는, 아주 작은 다짐.
지금도 나는 삶의 어딘가에서 새로운 흉터를 맞을 것이다. 그것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예전처럼 외면하거나 덮어주진 않을 것이다.
아프면 울고, 힘들면 멈추고, 그 안에서 천천히 걸어가자고 다짐할 뿐이다. 상처, 과연 희망을 준비하는 것일까?
이제 나는 이렇게만 답하고 싶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그 상처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희망은 내 안에서 조금씩 자라날 수도 있다.
그 가능성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오늘을 버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